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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함께하는 연구
학이사: 함께하는 연구
  • 최남규 전북대
  • 승인 2003.1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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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규/전북대·중문학

최근에 철학관련 교수님들과 공동 연구를 한 결과,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학문의 세계가 넓다는 건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중국 언어학만 하더라도 이와 관련된 분야가 너무나 많다. 어법, 성음, 문자, 훈고 등, 이를 다시 시간적 개념으로 세분한다면 고대, 중세와 현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좀더 범위를 확대하면, 문학, 철학, 사학, 고고학과 같은 인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심지어 농업, 상업과도 관련이 깊다.

이렇게 많은 분야들을 혼자서 모두 다 이해하고 연구한다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관련 있는 분야들이 서로 지혜를 모아야만이 좋은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 하나 시도가 문자학적 개념으로 중국 유가 철학 개념의 형성과 변천을 연구한 것이다.

언어는 역사적 산물이다. 때문에 역사의 변천과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언어로 기록된 매개체를 통하여 사유체계를 전달받아 이해하고 이를 변화 발전시켰다. 언어는 서로의 약정속성이기 때문에 약속의 기원을 파악해야만 그 언어를 사용한 사유자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의 역사적 고찰과 어원을 이해하는 작업은 사유구조를 전개시키는 작업만큼 중요한 일이다.

동양과 서양간에는 문자를 이용한 철학개념의 표현도 다르다. 서양언어의 기본요소인 어소는 기호 혹은 기호 이상의 의리를 갖지 못하지만, 중국 문자의 어소는 부호 혹은 부호 이상의 의미를 수반한다. 중국문자에서 문자는 어소 그 자체가 하나 혹은 다수의 의미를 전담하는 완전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낱말로 구성된 문장보다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중국 고대문자는 더욱 그렇다. 중국 고문자는 그 문자 자체 내에 중국의 습속과 사상 및 문화 등 고대 사회 생활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따라서 가장 기초적인 중국철학 이해의 접근 방식도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는 수단인 문자의 어원에 대해서 고찰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 철학 개념의 어원을 밝힐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동일 시대의 철학자 혹은 서로 다른 시대의 철학자들이 어떻게 문자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용하였는가를 계통적으로 밝힐 수 있다.

중국 문자의 어원 연구는 그 방법상에 있어, 글자의 형태를 먼저 정확하게 변별해야 하며, 그 다음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많은 주석가들이 연구해 놓은 고문헌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는 한편, 고음을 파악을 위해 고음 연구가들의 성과를 참고해야만 한다.

위와 같은 개념과 연구 방법을 통하여 공동 연구자들은 일차적으로 心性情才 문제를 나름대로 재조명하였고, 禮·義·道·理·中·庸 등 26항목을 문자학적 근원을 통하여 유가 철학의 주요 개념 형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는 문자학적 연구 방법으로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 연구가 있었지만, 전면적인 어원고찰이 아닌 단편적이며, 국내는 이보다 더욱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학과 동양철학 공동연구'가 앞으로 더욱 활발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낳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이다.
첫째는 관심있는 공동 연구자들과 폭넓은 교류가 있어야 만 한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잠정적이긴 하지만 ‘문자학 연구소’를 설립하여, 공동 연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과 많은 대화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둘째는 연구 범위의 확대이다. 동양 유가 철학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노장 도가 철학은 물론 모든 경전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세 번째는 최근에 발견되고 있는 지하 경전자료를 병행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에 발견되고 있는 초나라 죽간 문자는 각 연구 분야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 1997, 2001, 2002년에 발표된 곽점, 상해박물관 초나라 죽서자료는 그야말로 뜨끈뜨끈한 황금 자료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경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모습들을 상실하였고 와전되었다. 초나라 죽서 지하자료는 중국 戰國 중말기 시대에 지하에 묻혀진 때묻지 않은 경전이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는 그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인식한 국외 학자들은 이미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반면, 국내는 아직 연구가 미미한 상태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중국 문자학과 문학, 철학, 역사, 서법 등 각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종합적으로 연구한다면 좋은 성과는 떼놓은 당상일 것이다. 이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함께 연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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