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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 마누라論
학이사 : 마누라論
  • 장영우 동국대
  • 승인 2003.12.0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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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우 / 동국대, 국문학

우리말의 용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指稱과 呼稱의 정확한 사용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동료 또는 선배 교수의 부인을 '사모님'이라 부르는 게 옳은가를 생각해 보자. 요즘엔 너도나도 '사장님'이고 '사모님'이니 동료 교수의 부인을 '사모님'이라 불러서 나쁠 것은 없지만 엄밀히 말해 잘못된 것이다. 특히 음식점이나 술집에라도 갈라치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해지기 일쑤다.

여드름투성이의 젊은이를 '아저씨'라 부르는 무신경이 대부분이고, 여성의 경우는 아예 '언니'로 부르기로 사회적 합의를 본 것 같다. 시집가지 않은 처녀를 대접하여 일컫는 '아가씨'란 말이 한때 북한에서 '접대부' 정도의 의미로 쓰여 그곳 여성들이 질색하였다던데, 요즘 우리의 젊은 여성들도 이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상대방을 가리키고 부르는 말이 적당하지 않으니 무조건 '∼님'을 붙이는 게 유행처럼 돼 흔전만전 넘쳐나는 것이 '∼님'이다.

내 배우자를 남에게 소개할 때도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사실 우리말에는 자신의 배우자(특히 여성)를 가리키는 어휘가 적지 않다. '아내, 안사람, 처, 여편네, 집사람, 부인, 와이프, 마누라' 등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만도 여덟 개나 된다. 이 많은 어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무식하다거나 교양 없다는 소릴 듣지 않을까. 자신의 배우자를 당당하게 '부인'이라 부르거나 혀를 한 번 비틀어 '와이프'라 발음하는 강심장도 적지 않지만 사실 이 문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夫人'은 "남을 높이어 그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므로 쓰임이 잘못됐고, 외래어인 '와이프'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아내'는 '안(內)'이란 단어에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접미사 '∼해'가 붙어서 된 것으로 '안사람'과 같은 뜻인데 남성 배우자를 가리키는 '바깥 사람'과 짝을 이룬다. '여편네' 역시 '남편(男便)'과 짝을 이루는 단어로 집단을 가리키는 접미사 '∼네'가 붙어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어미'의 뜻을 가진 '妻'는 '지아비 夫'와 결합해 '夫妻'란 단어를 형성한다.

마누라의 어원은 '마노라'로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됐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의유당김씨의 '동명일기'에 "마눌하님 이만 가 사이다"란 구절이 있었는데, 이 단어가 '마나님, 마님, 마누라' 등으로 음운 변천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십여년 전 술자리에서 의미론을 전공한 동료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더 많은 용례와 논증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쨌든 '마누라'는 우리가 잘못 알고있는 것처럼 여성 배우자를 낮추어 부르는 어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여성 배우자를 가리키는 지칭어나 호칭어로 '마누라'를 쓰는 게 어떨까. 이 어휘조차 여성에 대한 비하의 뜻으로 쓰일 때가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애정이 담뿍 깃들인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배우자를 은근히 부를 때 이 단어가 제일 많이 쓰이는 것만으로도 증명이 되고도 남는다. '당신'이란 말 때문에 곧잘 싸움이 벌어지는 우리의 언어문화를 고려할 때 적확한 지칭어와 호칭어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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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 2003-12-09 15:35:07
"아내"는 "안의 해", 즉 "집안의 해"라는 뜻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