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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문명의 지층을 벗겨보다
페르시아 문명의 지층을 벗겨보다
  • 하혜린
  • 승인 2021.02.1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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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출판 신간_『위대한 유산 페르시아』
김경미 지음 | 박창모 사진 | 계명대학교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연구원 편 | 계명대학교출판부 | 432쪽

미술사학자와 사진작가가 펼쳐낸 문명공존 안내의 길
이국의 향취를 찾는 사람부터 전문가까지

 

우리는 이란에 대해 매우 단편적인 정보만을 접해왔다. 그 정보들은 한 나라를 이루는 고정관념이 됐고, 이란을 더욱 먼 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외면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명의 보고들이 존재한다. 

계명대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연구원은 미지의 장소, 이란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냈다. 총 12명의 탐사단을 구성해 8박 10일간 이란에 머무르며 페르시아 문명사의 연구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애썼다. 주 무대는 6개의 도시, 테헤란, 이스파한, 시라즈, 페르세폴리스, 야즈드, 카샨이다.

 

『위대한 유산 페르시아』는 유적지들의 역사와 대화를 나눈 흔적들이다. 방대한 양의 본문들을 하나씩 톺아나가다 보면 역대 왕조들의 역사와 문명의 탄생·소멸은 물론 훌륭한 건축술과 제책기법, 장식술까지 입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다.

저자는 방대한 본문을 통해 유적지에 얽힌 체제와 역사에 대해서 설명한다. 아울러 공간 속에 깃들어있는 상징, 문화와 종교까지 아우른다. 그 과정 속에서 문명의 합치와 재창조의 흔적을 찾는 것이 소소한 묘미이다. 

 

나시르 알 물크 모스크 내부의 오르시. 사진=계명대 출판부

문명 교차의 증거 ‘오르시’ 

오르시(Orsi)가 눈길을 끌었다. 흡사 스테인드글라스와 유사한 오르시는 서양의 건축술에서 영감을 받아 이슬람 문화로 정착된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오르시의 기본 문양은 ‘기리(Girih)'이다. 기리는 이슬람 모스크와 궁전을 장식하던 타일 문양에 꼭 등장하는 기하학적 장식 모티프이다. 

오르시에 대해 살펴보다 보니 서양과의 접합 양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오르시의 기본 문양인 기리는 로마의 매듭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페르시아의 색유리 전통은 이후 시리아를 거쳐 베네치아에 영향을 줬다고 전해진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모두는 문명들의 상호 교차가 만들어낸 창조의 결과물이다. 

 

체헬소툰 연회장을 장식한 '커피 하우스 회화' 장르 중 일부. 사진=계명대 출판부
체헬소툰 연회장을 장식한 '커피 하우스 회화' 장르 중 일부. 사진=계명대 출판부

자유분방함을 획득한 커피하우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엄격한 이슬람 문화 속 다소 파격적인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사파비 시대의 ‘커피하우스 회화’이다. 사파비 시대에 국제도시 이스파한을 찾는 유럽인들이 늘어나면서 전통 찻집 외에 커피하우스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커피하우스에는 전통 찻집을 장식하던 그림들이 걸리게 됐는데, 그림이 참 재밌다. 분명 인물의 외모나 색감은 유럽풍 회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형태가 베네치아의 화가 티치아노를 연상시킨다. 남녀가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그림부터 무릎을 꿇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들까지 세속적 즐거움이 반영돼 있다. 

 

낙쉐로스탐 전경, 기원전 520년~ 기원후 379년경아케메네스 왕조의 영묘와 사산시대의 부조. 사진=계명대 출판부
야즈드 타일 공방 장식. 사진=계명대출판부
야즈드 타일 공방 장식. 사진=계명대 출판부

이 책은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정보제공과 더불어 틈틈이 흥밋거리를 제공한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 이는 흡사 여행의 감정을 일깨운다. 여행의 감정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사진 때문이리라. 

박창모 사진작가가 탐사에 동행해 섬세하게 셔터를 눌렀다. 그는 광대한 사막지대를 보여주는 흙빛 풍경부터 페르시아 블루로 물든 건축, 장식까지 이란의 색채를 한껏 살려냈다. 방대한 사진들을 통해서도 다양한 문명들의 변용과 창조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 중앙 문인 ‘만국의 문’. 사진=계명대 출판부
페르세폴리스 중앙 문인 ‘만국의 문’. 사진=계명대 출판부
페르시아의 전사들. 사진=계명대 출판부
페르시아의 전사들. 사진=계명대 출판부

책을 가로지르다 보면 다양한 문명들을 통과하게 되는데, 역사 속 충돌과 변용의 과정에서도 문명 공존의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문명의 지층을 벗겨 보며, 이란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 보다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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