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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사우디 왕세자가 ‘태세전환’한 이유
[글로컬 오디세이] 사우디 왕세자가 ‘태세전환’한 이유
  •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21.05.05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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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중동의 양대 친미 왕정 국가에서 각자 근대화의 갈림길을 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화해할 수 있을까. 사진은 2017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을 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진=로이터/연합
중동의 양대 친미 왕정 국가에서 각자 근대화의 갈림길을 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화해할 수 있을까. 사진은 2017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을 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진=로이터/연합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동 지역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와 인권, 다자 협의를 앞세운 미국의 외교정책에 압박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트럼프 때 보여주었던 호전적인 언사와는 사뭇 다르게 이란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시선을 끈다.

알자지라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27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란은 이웃 국가다. 우리는 모두 이란과 좋고 특별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이란의 상황이 어려워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이란이 발전하여 지역과 세계를 번영의 길로 밀고 가기를 바란다”라고 말하였다. 지극히 평범한 말이지만, 그 동안 빈 살만 왕세자가 이란을 향해 던진 발언과 비교하면 ‘그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놀랍다.

 

“이란 파괴할 4B” vs “중동의 히틀러”

 

이란의 자리프 외교장관은 이란을 파괴하려는 인물로 이름에 B자가 들어가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안보보좌관 존 볼튼(Bolton),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Benjamin) 네타냐후, 아랍에미리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Bin Zayed)와 함께 무함마드 빈 살만(Bin Salman)을 4B로 지목하며 비판한 바 있다.

2017년 빈 살만 왕세자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중동의 히틀러”라고 부르면서 비난하였고,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를 탈취하려고 시도해왔다고 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라 “이란에서 전투가 나도록 애쓸 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이슬람을 앞세운 이란 때문에 중동 전역이 급격히 보수화되고 테러와 극단주의의 산실이 되었다고 보면서 시아파의 종말론적인 존재인 마흐디(Mahdi)를 기다리며 마흐디가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이슬람 세계를 장악하려고 하는 이란과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도 하였다.

“불량정권, 광신도정권, 세계 최대 테러지원국가 이란은 죽음, 파괴, 혼란 밖에 모른다”고 혹평한 트럼프를 지지하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즉 ‘핵 합의’ 폐기를 열망하고, 이란을 무너뜨려야 중동과 세계에 평화가 온다고 주창하던 빈 살만의 과거 모습을 상기하면, 최근 발언은 말 그대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화해설은 이번 발언 전에 이미 흘러나왔다. 2016년 단교한 양국이 다시 국교 정상화를 논의한다는 보도였는데, 두 나라는 모두 이를 부인하였다. 낭설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이유는 양국 접촉설이 바이든 미 행정부의 JCPOA 복귀 의지와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바마 시절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미국 내 셰일 오일 증산에 힘입어 2015년 12월 41년 만에 석유 수출 금지조치를 풀 정도로 석유자원 중동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중동에서 아시아로 시선을 돌리고자 하였다. JCPOA 체결의 배경이다.

 

바이든의 JCPOA 복귀 의지, 판을 바꾸다

 

오바마의 아시아행은 아랍의 봄, IS 발흥 등 중동 지역 내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주춤거렸다. 설상가상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권을 움켜쥔 후임 트럼프는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며 이란을 전면적으로 압박하였고, 트럼프의 반이란 전선에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이 합류하며 힘을 실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JCPOA 복귀를 주장한 바이든이 백악관 주인이 되면서 오바마 시절 이란과 핵 합의를 이끈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복귀가 유력하다.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도 핵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볼 정도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단 뒤로 하고 이스라엘과 화해하며 함께 손을 잡고 이란을 옥죄려던 반이란 동맹도 숨을 고르며 새로운 방법을 다시 고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빈 살만의 유화적인 대이란 발언은 이러한 정세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1979년 이란혁명 전 이란의 국왕 파흘라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이살에게 편지를 보내 국가를 개방하고, 남녀공학, 미니스커트, 디스코장을 허용하라고 하면서 근대화를 권하였다. 이에 파이살 국왕은 충고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저는 폐하가 프랑스 왕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엘리제 궁에 사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란에 계십니다. 폐하 국민의 90%가 무슬림입니다. 이점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조언하였다.

양국은 모두 강력한 친미 왕정이었지만 근대화를 두고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1979년 이후에는 순니와 시아, 왕정과 공화정이라는 상반된 정체성으로 격돌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빈 살만의 온유한 발언으로 그 동안 서로 엇갈린 길을 가던 양국이 잠시나마 멈추고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있을까? 두 나라가 상생의 평화를 일구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이자 중동산업협력포럼 사무국장이며 주요 저작으로 『신학의 식탁』(공저, 들녘, 2019),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과 유라시아 지역의 대응』(공저, 민속원,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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