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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 ③] 귀신 잡는 해병과 귀신 잡는 어부
[김성희의 North Face ③] 귀신 잡는 해병과 귀신 잡는 어부
  • 김성희
  • 승인 2021.06.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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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
사진=연합

한국전쟁 시기 미군은 한국 해병을 '고스트 킬러(ghost killer)'라고 불렀다. 한국 해병이 “귀신 잡는 해병”으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그런데 이 말이 북한의 지도자에게는 꽤 거슬렸나 보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을 패러디하기라도 하듯, 김일성은 1959년 6월 원산에서 젊은 어부들에게 “귀신 잡는” 어부가 되라고 한다. 그가 강원도 수산업 부문 열성자대회에서 한 말이었다. 참고로, 북한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는 원산이다.

수산업 일꾼, 즉 어부들이 1년에 300일 이상을 바다에 나가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물고기를 잡는다면, 그들이 생산뿐 아니라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김일성의 생각이었다. 남(南)에서는 해병이 귀신을 잡는다면, 북(北)에서는 어부들마저도 귀신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사정은 남한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신 잡는 해병”도 있었지만, 간첩선(船) 신고 포상금이 1980년대 기준 5천만 원이었을 정도로 정부는 민간인들에게도 바다를 감시할 것을 독려했다. 

이렇듯 동해와 서해는 귀신들이 출몰하는 바다였고, 남과 북은 군민(軍民)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귀신들과 맞서야만 했다. 귀신이란 사실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귀신처럼 무서운 사람. 바다를 통해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넘나드는 사람이란 군사적 목적, 첩보의 목적으로 드나드는 귀신처럼 무서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병이든 어부이든 누군가는 잠을 잊고 공포의 바다를 지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생활의 공간이기도 했고, 휴양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의 경우가 좀 다르다. 남한의 경우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부터 1983년 부산 다대포 무장간첩 침투사건, 1996년 강릉잠수함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무섭고도 슬픈 사건들의 배경이 되기도 했지만, 경제발전과 더불어 해변이 휴양지가 되기도 했고, 인구의 증가 및 해산물의 수요증가에 힘입어 바다가 어로와 양식 산업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어로와 양식이라면 북한정권도 인민의 단백질 공급 방법으로서 누누이 강조해왔다. 애초에 300일 이상 바다에 나가 귀신도 잡고 물고기를 잡으라고 독려하던 김일성이 아니었던가? 문학작품만 해도 1949년 윤두헌의 「바다로 가자」부터 2017년 정광수의 「파도를 길들이다」까지 바다에서 어부들이 물고기를 열심히, 그리고 많이 잡는 이야기는 넘쳐난다. 그러나 휴양지로서의 해변을 그린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런 점에서 2018년 8월에 문학전문 잡지,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조선문학』에 발표됐던 림길명의 「백사장의 붉은 노을」은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5월 김정은의 함흥 마전해수욕장 방문에 기초해서 쓰인 이 작품은 핵・경제병진노선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가운데 발표된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인민들의 휴양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다. 

이 소설은 군민(軍民)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두언해수욕장(실재의 마전해수욕장이 픽션에서는 두언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한다) 근처 솔숲은 포대방어진지로 사용되고 있다. 군인인 정두철은 솔숲을 계속해서 군사시설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道) 도시설계연구소의 “처녀 설계사” 주혜숙은 솔숲에 해수욕장 이용객들을 위한 샤워장을 건설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갈등 중에 김정은이 해수욕장을 방문한다. 김정일 시대였다면, 지도자는 군의 요구를 우선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국가와 당의 핵심이념으로서 강조되기 시작하던 시기의 지도자는 민(民)의 요구를 들어준다. 작품은 군민의 갈등을 남녀의 갈등 정도로 가볍게 그리고 있지만, 실제의 갈등은 더 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김정은 시대는 선군(先軍)이 아닌 인민대중제일의 시대이다. 그래서 해변과 바다 역시 포대가 치워지고 샤워장이 건설되는 “인민복지”의 공간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소설 속의 이러한 변화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인민대중제일주의는 구호뿐일 수 있다. 대개 북한체제와 사회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오류로 판명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과 바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이 종결되고 동해와 서해가 화물선과 여객선이 오가는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1983년 무장간첩이 침투했던 다대포에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북한선수단을 태운 만경봉호가 입항했었다. 바다를 통해 귀신이 드나든다면, 사람도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김성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현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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