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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강조하는 대학들, 명암 엇갈려
책읽기 강조하는 대학들, 명암 엇갈려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03.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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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책읽기 기대하다 실패…정규교과과정화가 방법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만 내리치면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현실에서, ‘구닥다리’ 책을 학생들 손에 쥐어주는 대학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졸업 자격요건으로 독후감 제출을 요구하는가 하면, 책읽기를 정규교과과정 일부로 만들어 ‘강요’하는 대학도 있다.

그런데 책을 멀리하려는 학생들과 대학간의 ‘싸움’이 명암을 달리 하고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모든 대학이 의욕적으로 책읽기 프로그램을 도입하긴 했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은근한 저항으로 제도가 폐지 또는 외면을 당하고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학생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선해나가고 있다.

학생들 손에 책 쥐어 주려 노력하는 대학들

명지대의 ‘교양독서학점제’는 학생들이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제출하면 학점을 주는 제도다. 학생들은 역사·철학부터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名著 1백권 중 20권의 서적을 읽은 다음, 매 학기 초 서적 목록과 독후감을 담임지도교수에게 제출하면 1학기당 2학점을 받을 수 있다. 총 2회에 걸쳐 4학점까지 획득가능하다.

그런데 학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권의 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써야 하는 대가치고는 2학점이 적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강제성이 없었던 것. 이 대학 재학생인 김 아무개 씨(3학년)는 “독후감을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상황에서 학생들이 쉽게 학점을 획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제출된 독후감의 질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학사지원팀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의 책 읽는 습관을 위해 제도를 도입했으나, 독후감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라고 털어놨다. 결국 명지대는 2004학년도 신입생부터 이 제도를 더 이상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2001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독서인증제’를 도입한 강원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독서인증제는 영어와 컴퓨터와 더불어 강원대 졸업자격인증제도 중 하나다. 독서인증제를 졸업인증의 하나로 선택한 학생은 졸업 전까지 40권(예체능 계열 제외)의 책을 읽어야 졸업자격을 얻을 수 있다. 컴퓨터로 독서인증시스템에 독후감을 입력해야 하고, 문제은행의 객관식 문제풀이에 합격하면 독서 결과를 인증 받는 방식이다.

독서인증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한 올해, 단지 21명의 학생만이 이 제도를 통해 졸업자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독서인증제를 담당했던 신 아무개 사서는 “2001학년도 신입생이 2학년이 되는 시기부터 독서인증제를 적용했고 홍보가 부족해 21명의 학생 밖에 통과하지 않았다”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하지만 문제는 더욱 근원적인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원대신문사 기자인 김 아무개 씨는 “주위를 둘러보면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싫어하는데다가, 영어나 컴퓨터는 졸업인증이 쉬워 독서인증제를 선택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주입식교육으로 인해 책을 멀리하는 학생들에게 애초부터 자율적 책읽기를 기대한 것부터가 무리였다는 의미다.

▲덕성여대 교양독서세미나 모습 ©

명지대와 강원대가 자율적 책읽기를 강조했다면, 덕성여대와 연세대는 학생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는 모습이다. 덕성여대의 ‘교양독서세미나’는 신입생 필수과목이다. 1학년 때 수강하지 않았다면 졸업하기 전까지 반드시 두 학기를 이수해야 하는 등, 책읽기가 교과과정화됐다. 독서세미나는 크게 문학세미나와 교양세미나로 나뉘는데, 한 학기 동안 읽어야 할 책과 토론해야 할 주제가 이미 선정돼 제시된다. 학생들은 매주 한 권씩의 책을 읽어야 하고 매 수업 시간마다 A4 한 장 분량의 감상문을 제출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어 뿌듯”

연세대도 이번 학기부터 1학년 필수과목으로 ‘명저읽기’ 과정을 만들었다. 1학년 학생들의 기초교육 강화의 일환으로서 책읽기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이를 학점화한 것. 덕성여대와 마찬가지로 20명의 학생이 한 클래스가 되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읽어와 토론을 해야 한다. 이번 학기는 도입 첫 학기여서 생활과학계열, 신학계열, 간호계열, 이학계열 학생만이 참가하고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강제적 책읽기 교육’에 대해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긍정하고 있다는 점. 이은영 덕성여대신문사 편집국장(3학년)은 “사실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라고 말하면서도, “1년 동안 이 과정을 마치고 난 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능숙하게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가슴 뿌듯한 결과다”라고 말한다.

민경찬 연세대 학부대학장은 “명저읽기 과정을 도입하기 전 학부생 필독서 2백권을 선정하기는 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다”라고 말하고,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을 읽히려면 학점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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