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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자동차
백범 김구의 자동차
  • 김성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승인 2021.08.20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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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 6]
백범 김구. 사진=위키피디아
백범 김구. 사진=위키피디아

1948년 5월 6일 주한 미군 중위 레너드 버취(Leonard Bertsch)는 덕수궁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고 있던 자동차 한 대가 갑자기 그의 옆에 멈추어 섰다. 차문이 열리더니, 한 노년의 신사가 차에서 내리며 버취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로 백범 김구였다. 김구는 유난히 표정이 밝아 보였고, 또한 건강해 보였다. 

백범이 차에서 내려 버취를 불러세운 이유는 ‘회의’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였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김규식과 함께 참석한 김구는 버취에게 그 ‘회의’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취는 상부에 올린 보고서에 백범이 그 회의가 왜 성공적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자신도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지 않았다고 꽤 냉소적인 어조로 썼다. 

버취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로 주한미군 사령관 로버트 하지 중장의 비서였다. 그가 1945년부터 한국에서 3년간 활동하며 작성하거나 수집한 문서의 일부가 현재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돼있는데 이 문서는 ‘버취 페이퍼’로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이 자료는 지난 2018년 서울대 박태균 교수에 의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위에 내가 언급한 보고서는 버취가 1948년 5월 7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남북연석회의와 이 회의에 참석한 김구에 대한 버취에 태도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1948년 봄에 김구가 모빌리티를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백범은 자신의 이동수단, 즉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자동차를 움직이는 휘발유를 공급받고 있었다. 

김구가 귀국 후 처음 탔던 차는 ‘뷰익’ 승용차였다. 이 자동차는 원래 조선귀족회의 소유의 차였으나 해방 후 몇 개 단체를 거쳐 백범의 비서였던 엄항섭에게 인계됐다고 한다. 하지만 주한 미군 내 일부 인사들에게 이것은 불법적인 점유로 인식되었다. 

김구가 타던 뷰익 승용차는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좋은 자동차였다. 일본 영토였던 한국을 미국이 점령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일부 미군 인사들은 일본의 재산 역시 미국 정부에 재산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버취는 빠른 시일 내에 조선에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불필요하게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백범의 뷰익도 백범의 것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미군의 재산관리사무소는 김구의 뷰익을 압수한다. 버취는 계속해서 재산관리사무소에 그 차를 백범에게 돌려주라는 문서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버취 페이퍼’만 봐서는 재산관리사무소가 김구에게 그 차를 돌려줬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1947년 봄, 백범은 결국 미국 애리조나에 체류하고 있던 자신의 아들을 통해 새로운 자동차를 구입한다. 

단지 백범의 뷰익뿐 아니라, 해방 후 적지 않은 수의 자동차들이 같은 과정을 통해 미군에 압수됐다. 이승만이 의장으로 있고 김구와 김규식이 부의장으로 있던 민주의원 소유의 자동차가 한 예이다. 이 차는 원래 조선무연탄주식회사의 소유였던 것이 해방 후 민주의원의 소유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 재산관리사무소는 1946년 11월, 이 자동차를 압수해간다. 

버취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미군 담당자의 태도가 매우 무례했기 때문이었다. 존 딕이라는 이름의 재산관리사무소 담당자는 “당신들은 이 차를 불법적으로 가져갔어”라고 반복해서 말하며, 민주의원의 차를 압수해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버취가 재산관리사무소에 보낸 공문에서 “차대(車臺)는 몰라도 엔진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추론해볼 때, 민주의원이 이 차의 엔진을 새로 설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 재산관리사무소는 자동차뿐 아니라 휘발유도 통제했다. 일례로 민주회의로부터 차를 빼앗아 가기 전에 우선 그들은 휘발유의 공급량을 줄인다. 버취는 이에 대해서도 재산관리소에 항의를 한다. 하지만 이에 재산관리사무소는 오히려 차를 압수해가는 것으로 응답한다. 

어쨌든 버취는 해방 조선의 정치 지도자들의 모빌리티를 확보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 1947년 2월에는 여운형과 설정식으로부터 휘발유를 공급해달라고 부탁을 받고 상부에 이 문제에 대해 보고를 하고, 그 해 3월에는 이승만과 김구에게 주어지고 있던 휘발유 특별 구입권을 유지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빌리티는 곧 주권을 의미했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미군 당국과의 갈등 속에서도 천천히 이 주권을 회복해갔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한미갈등으로 볼 수만은 없다. 버취 같은 주한 미군 내 지식인들이 모빌리티라는 주권을 한국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차지한 이가 국가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자동차들이 거리를 메운 오늘의 한국을 보며, 주권과 모빌리티를 다시 생각한다. 

김성희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현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문학과 영어논문쓰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다.
김성희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현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문학과 영어논문쓰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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