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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정치인은 공생 관계…태생적 한계 지녀
신문과 정치인은 공생 관계…태생적 한계 지녀
  • 장동석
  • 승인 2021.08.26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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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기자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66쪽

19세기 언론 비판, 현재 사정과 너무나 닮아
글쓰는 사람들은 생각·개념 갖추고 부끄러움 느껴야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대개 가짜가 가짜를 만들지만, 간혹 진짜가 가짜를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주류 언론이라고 하는 곳들까지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들을 버젓이 생산하는 시대를 우리는 산다. 

가짜뉴스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미 19세기에도 어떤 기자들은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19세기 활동한 프랑스의 소설가다. 그는 『고리오 영감』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기자 생리학』의 서문 격인 글 ‘위조자들에게 알림’에서 당시의 주류 매체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아무튼 ‘쉽게 믿는 구독자’의 정신을 마비되게 하거나 ‘강성 구독자’를 즐겁게 한다.” 발자크는 19세기를 살며 21세기 언론 매체를 내다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한 발 더 나가 보자. 발자크는 신문사에 야망가형, 사업가형의 사장·주필·편집국장이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그중 야망가형은 “본인과 관련된 정치 체제를 옹호하고 정당의 승릴를 위해 신문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다. 다음 구절은 또 한 번 19세기인지, 21세기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까 자신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면서 서서히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신문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사업가형은 “신문을 자본 투자를 위한 곳으로 보고 영향력 또는 쾌락, 또는 가끔 돈이라는 이득”만을 챙긴다. 오늘날의 어떤 신문사 사장들은 야망가형과 사업가형의 모습을 모두 띠고 있다. 신문사 경영이 하나의 직업적 소명인 순마형 신문사 사장은 발자크 시대에나 존재했던, 오늘날에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다. 

발자크는 주필을 “다른 이들은 글을 너무 많이 써서 논객인데, 이 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논객”이라고 꼬집는다. 편집국장은 어떨까. 발자크는 신문의 수명이 길고자 하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대개의 편집국장들은 재능 있는 사람이 필요하면서도 그들의 재능에 한사코 질투한다. “결국 그의 주변에는 아첨하거나 신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만 남는다. 파리 최고의 신문이 항상 이런 식으로 망하는 것이다.” 발자크는 당대 신문사들의 운영의 묘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때리고 변명은 나중에.” 19세기 신문들은 나중에 변명이라도 했지만, 21세기의 신문들은 변명조차 하지 않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 

우선 보도하고 변명은 나중에 하는 신문

발자크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사장, 주필, 편집국장, 국회 출입기자들 말고도 “신문에 색을 입혀주며, 그 신문과 아주 결착한, 즉 대놓고 또는 은근히 그 신문을 보호하는 자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바로 정치인이다. 굳이 여당이냐, 야당이냐 가릴 필요도 없다. 모든 정치인은 “장기판의 졸(卒), 장(將), 차(車), 아니면 포(包)에 불과”한 사람들로 지적된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정치인들을 고대 “갤리선의 노예”처럼 “신문사가 어디로 가라고 하면 가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신문과 정치인은 공생 관계로, 그 태생부터 한계를 지닌 존재였다. 

비평가도 발자크의 신랄한 비판을 피해가지 못한다. 옛날에는 “비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학식과 경험, 긴 공부가 필요”했지만, 발자크 당대의 비평가들은 “단박에 비평을 시작”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비평은 생각이나 개념이 중요한데도, 그 시절 비평가들의 일은 “그냥 비판만 해서 상처를 주면 되는” 것이었다. 현명한 비평가는 “가끔씩 마지막에” 한두 마디 하는데, 발자크 시대 비평가들은 “말부터 시작하고 보는 식”으로 비평한다. 비평이 비평일리 없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생각이나 개념 없이, 약간의 스타일만 갖추면,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 혹은 비평가로 자임하는 우리 시대와도 닮았다. 

원제는 ‘기자들’이지만, 발자큰 세상에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은 모두 호출해내고, 그들의 행태를 직격한다. 우리 시대와는 생소한 글쟁이들도 여럿 있지만, 발자크의 비판은 구구절절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두서없고 내용마저 없는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그럼에도 “(프랑스에) 피부에 달라붙어 사는 기생충”이 되지 않기 위해, 생각과 개념을 갖추는 일 등 해야 할 것이 많다. 발자크의 말로, 또 하나의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언론이 없었다면, 그렇다 해도 그걸 고안할 필요는 없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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