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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피로해진 당신에게
‘청년’이 피로해진 당신에게
  • 정보영
  • 승인 2022.04.1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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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보영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청년담론에 주식투자, 코인, 부동산 담론은 있는데, 정작 노동과 주거 같은 담론은 없는 것 같아요.”

최근 한 청년 관련 연구 프로젝트 회의에서 듣게 된 말이다. 청년운동 연구자로서, 청년운동 참여자로서 그간의 삶을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말이었지만, 동시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가장 우세한 청년담론으로 꼽히는 ‘공정담론’, ‘이대남 담론’ 등은 청년 중에서도 매우 특정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는데도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2030’이라는 이름으로 그 정당성을 얻고 정치적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때로는 이제 ‘청년'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 수도, ‘도대체 청년이 뭐길래' 싶은 한탄을 할 수도 있다. 여러 청년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런 한숨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 한숨은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사회의 진보를 추동해야 할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보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회의 제도와 정책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19~34세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법한 지자체 청년수당과 청년구직활동지원금(현 국민취업지원제도 1유형), 내일채움공제, 일경험사업, 역세권 청년주택, 청년마음건강 지원, 희망두배청년통장 등 이름을 다 열거할 수도 없는 수많은 청년정책이 어떤 후보의 선거 공약으로부터, 어떤 지방자치단체의 기자회견으로 순식간에 생겨나 자리 잡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림 1: 담론과 제도·정책, 사회운동의 상호역학 (정보영, 2018: 23)
<그림 1> 담론과 제도·정책, 사회운동의 상호역학 (정보영, 2018: 23)

그러나 사회운동은 중요한 제도·정책의 생산자이며, 청년운동은 무엇보다 담론을 경유하여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온 주체이다(<그림1>). 청년유니온으로 시작된 2010년대 청년 당사자운동은 그 이전까지 ‘실업'에만 한정되어 있던 청년문제를 노동의 문제로, 주거의 문제로, 부채의 문제로 열어젖혔다. 청년정책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등 안정된 노동자의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문제를 다름아닌 청년 불안정노동자의 시선으로 발견해냈고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때로는 투쟁을 통해, 때로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청년문제를 발굴하고 청년정책을 쟁취해왔다. 그 과정에서 청년운동 고유의 생태계가 형성되었다(<그림 2>). 그간의 작업은 청년운동의 전략과 성과를 연구의 형태로 증명해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림 2: 대표적 청년주체운동 주체 간 연결망 (2019년) (정보영, 2019: 81)
<그림 2> 대표적 청년주체운동 주체 간 연결망 (2019년) (정보영, 2019: 81)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청년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이질적 주체와 내용이 청년담론 안으로 들어와 ‘청년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만큼 이 영역에 ‘콩고물'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제도정치에서 청년을 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청년운동의 정치적 기회구조가 열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청년 노동운동이 쌓아온 지난 10년간의 경로와 2016년 이후 젠더정치를 전복시켜온 여성청년들의 운동에 반하는 가치가 위협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로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청년운동이 미래세대의 시선으로 사회의 부정의를 고발하고, 대안을 추구해온 것에 반해 최근에는 마치 자산증식에서 밀리지 않는 것만이 청년들이 원하는 것으로 포장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운동에 동참해온 동료들에게서도 일종의 무력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청년' 담론이 이제 그 힘을 다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디에선가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이 일어난 안전사고로 청년 노동자들의 목숨이 스러져가고 있다. 어떤 청년은 이제 막 입사한 회사가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으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해하며 다른 경로를 찾고 있다. 여성 청년, 서비스직 청년은 위축된 노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잘려 나가고 제도적 보호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 및 플랫폼 노동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한번 불안정 노동으로 진입하게 되면 이후 경력이 쌓이더라도 더 나은 일자리로 이행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여전히 ‘청년'의 렌즈로 바라볼 수 있는 문제가 산적 해있다. 

청년담론이 힘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해진 청년(성)을 둘러싼 정치에서 무엇을 청년의 문제로 전유할 것인지, 그것으로 어떻게 도덕적 우위를 얻고 더 많은 동료 시민의 공감을 얻어낼지의 정치가 오히려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청년운동의 가치와 역할을 설득하기 위해, 나아가 우리 사회가 다름 아닌 사회운동을 통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에서 연구자로서 책임을 느낀다. 어느 날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제도가,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될 익숙한 정책이 사실은 그것을 쟁취해내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연구를 통해 설득하고 싶다. 그렇기에 변화를 만들어온 청년들이 지치지 않고 힘 있는 걸음을 내딛어주었으면 좋겠다.

 

정보영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년운동과 관련해 「청년 불안정 노동자 운동과 담론정치: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 담론과 정책에 미친 영향」,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사회운동: 청년 활동/운동 생태계 네트워크 분석」, 「청년학개론, 청년연구자 되기」(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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