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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입문
흄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입문
  • 최승우
  • 승인 2022.07.0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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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파일 지음 | 이태하 옮김 | 서광사 | 248쪽

이 책은 근대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의 편집위원이자 영국 철학 백과사전의 편찬위원이기도 한 앤드류 파일이 쓴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해설서를 옮긴 것이다. 옮긴이는 현재 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에 재직 중인 이태하 교수로, 14년 전에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를 번역해 출간하였다.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는 데이빗 흄(1711~1776)이 거의 일생을 두고 집필했으며 임종 직전까지도 수정을 했기에 결국 사후에 출간된 유작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흄의 저작 중 가장 논리적으로 정교하고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흄은 우리나라 철학계에서는 칸트의 길을 예비한 회의론자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언급되는 것도 주로 인식론 분야나 윤리학 분야이다. 그러나 흄이 가장 관심을 갖고 주력했던 연구 분야는 종교였다.

17세기의 전반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발단이 된 30년 전쟁(1618년~1648년)으로 얼룩졌다. 16세기 “오직 성서로, 오직 믿음으로”를 기치로 내걸고 일어난 종교개혁은 뜻하지 않게도 무엇을 믿느냐는 교리 논쟁을 유발하게 되었으며, 이는 안타깝게도 800여만 명이 죽고 유럽이 황폐화되는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배후에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가 깔려 있었지만 전면에 드러난 것은 교리적인 이유였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추구해야 할 종교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17세기 지성인들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일차적 과제는 종교분쟁이었다. 이 종교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성인들이 모색한 것이 바로 최소 교리를 주장하는 이신론이었다. 신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였으며, 신은 창조 시에 물질인 세계에는 자연의 법칙을, 영혼인 인간에는 도덕의 법칙을 심어 놓았기에 세계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운행하고, 인간은 마음에 심어져 있는 도덕 법칙, 즉 양심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 이신론의 교리인 것이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은 한마디로 이신론의 시대였다. 흄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는 바로 이 이신론에 대한 면밀한 철학적 검토였다. 자연종교(natural religion)란 오늘날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낯설게 들리는데, 이 용어는 계시종교(revealed religion)의 반대어다. 계시종교가 종교적 믿음의 근거를 신의 계시에 두는 데 반해, 자연종교는 인간의 자연적인 인식능력인 이성과 경험에 두는 종교이다. 계시종교가 믿는 신관을 유신론(theism)이라고 한다면, 자연종교가 믿는 신관이 바로 이신론(deism)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란 바로 이신론에 관한 대화인 것이다. 이신론 대신에 자연종교란 말을 사용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이신론을 단순히 신에 관한 철학적 이론으로 수용하였던 것이 아니라 계시종교인 기독교를 대체하는 대체적 종교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흄은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를 통해 이신론의 핵심 교리인 신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경험만으로는 신의 존재와 본성을 알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회의론자인 필로의 입을 빌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올바로 깨달은 사람은 신에게 계시를 구하게 된다고 말하며, 철학적 회의론자가 되는 것은 건전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나가는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흄은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에서도 기독교는 이성이 아닌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는 대화체로 쓰여 있으며 팜필루스가 그의 친구인 헤르미푸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형식의 도입부와 1부에서 11부까지 3명의 논객, 즉 보수주의자인 데미아, 진보적 자연신학자인 클레안테스, 회의론자인 필로 간에 이루어지는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11부 끝부분에서 데미아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고 12부에서 자리에 남은 필로와 클레안테스는 대화를 마무리한다.

옮긴이는 “예전에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를 읽으며 이 책보다 더 깊이 있는 종교철학 저술은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이야말로 종교철학의 완결판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흄의 대표작이 무어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나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라고 말한다. 그러나 흄 연구자로서 진정한 흄의 대표작은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흄의 인식론 분야의 저술은 이미 낡은 이론이 되었지만 종교철학 분야의 견해는 여전히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는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평소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신과 종교의 문제에 고민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유익한 사유의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세 사람의 대화를 곁에서 엿듣고 있는 느낌이 들며, 이들의 대담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까지도 생겨난다. 본 해설서는 영국의 흄 연구자인 앤드류 파일이 쓴 것으로 다른 어떤 해설서보다 자세하며 논리적으로 명쾌하다.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 해설서를 일독한다면 원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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