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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의 열자주
장담의 열자주
  • 최승우
  • 승인 2022.07.18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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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 지음 | 임채우 옮김 | 한길사 | 880쪽

도가의 3대 사상서, 『노자』『장자』 그리고 『열자』
위진(魏晉) 현학(玄學)의 마지막 총결산 『열자주』의 국내 최초 완역!
『장담의 열자주』

『장담의 열자주』는 도가의 3대 사상서 가운데 하나인 『열자』의 최초 주석서를 번역·해설한 책이다. 주석을 쓴 장담(張湛, 330-400년 무렵)은 위진 현학의 최후를 장식한 학자이자 열자서에 대한 최초의 주석을 남긴 사상가다. 그의 『열자주』(列子注)는 유가와 도가 사상, 나아가 불교 사상까지 아우르는 위진 현학의 마지막 총결산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지음(知音)·기우(杞憂)·우공이산(愚公移山)·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전이 담긴 『열자』의 사상은 『노자』와 『장자』보다 더욱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열자는 ‘땅’에 발을 딛고 있다

전국시대 정나라 출신의 도가 사상가 열자(列子, B.C. 450?-B.C. 375?)는 노자의 제자이자 장자의 선배다. 311년 ‘영가의 난’(永嘉之亂)을 겪으며 분실되고 4세기 후반에 재편집된 열자서는 이민족에 의한 한족 멸망과 오호십육국 시대 전란의 역사를 함께했다.
노자와 장자 사상과 함께 도가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열자서는 본체론이나 인식론에 있어서는 도가와 비슷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에서 열자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고유의 특징을 나타낸다. 노장이 탈속적인 태도로 고원한 도를 추구한다면 열자는 현실과 세속을 정확히 직시한다. “노자가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경지에 이른 달관한 도인이고 장자가 우주를 넘나드는 초월적 지인(至人)이라고 한다면, 열자는 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842쪽)이다.
열자서 속의 열자는 스승이나 깨달음을 주는 선생이 아닌, 노자나 호구자림 등의 스승에게 훈계받는 제자로 등장한다.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 속에서 인간의 분투를 드러내고 삶의 실상을 처절하게 그린다. 그 속에서 오롯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말하는 열자의 사상은 다른 어떤 관념적 사상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엄숙주의에 젖은 도학자들과는 또 다른 도(道)를 추구했던 열자. 공사다망한 역사를 거치며 살아남은 열자서의 전수 과정처럼, 그 안에 담긴 열자의 사상 또한 인간이 발붙인 땅에서부터 시작되고 자라난다.

■ 억압 속에서도 소리 없는 각광을 받았던 『열자』

“승정원에 전교하고 『근사록』과 『전한서』 등을 본 뒤에 『장자』 『노자』 『열자』 삼자(三子)의 글을 강(講)하고자 하는데, 경(卿) 등의 뜻은 어떠한가?”(성종실록 150권, 성종 14년 1월 18일 신해 1483년)

조선의 성종(成宗, 1457-95)은 위와 같은 말을 남기며 도가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러나 주자학적 도통(道統)을 벗어난 모든 사상을 이단 취급했던 조선의 억불숭유책은 이 땅에 이렇다 할 도가 사상 관련 저술을 하나도 남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종의 물음에 신하들은 “『장자』 『노자』 『열자』는 이단의 글이므로 볼 필요가 없”다며 “공자가 말하기를 ‘이단을 전공하면 해롭다’라고 했는데, 그것을 해석한 이가 말하기를 ‘점점 젖어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했으니, 하필 이단의 글을 널리 본 뒤에야 그 옳고 그른 것을 분변하겠”느냐며 도가를 논의의 선상에조차 올리지 않으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성종실록 150권, 성종 14년 1월 20일 계축 1483년).
그러나 우승지(정3품) 강자평(姜子平, 1430-86)이 “젊었을 적에 다만 글을 짓기 위해 대강 보았”다고 성종에게 고했듯이(성종실록 150권, 성종 14년 1월 27일 경신 1483년) 왕의 『열자』 강독을 반대했던 그조차도 문장 공부를 위해 『열자』를 읽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사성(정3품) 어득강(魚得江, 1470-1550) 또한 열자서를 인용해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던 기우의 근심이나
사흘을 맴돌던 옹문의 슬픈 노래가 거짓이 아니었네.
어찌하여 신민의 우러름을 버리시고
홀연히 구름 타고 신선으로 가셨나
(인종실록 1권, 인종 1년 윤1월 26일 기축 1545년).

중종의 승하(昇遐)를 슬퍼하며 지은 이 글에 등장하는 ‘기우’와 ‘옹문’의 고사는 각각 『열자』「천서」편과 「탕문」편에 나온다.
삶의 본질을 꿰뚫는 도가의 번뜩이는 사상과 거침없는 문장은 맹렬한 배척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많은 독자층을 만들어냈다.

■ 기원전 인물에게서 발견되는 탈근대성

20세기의 대표적인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주체중심주의를 근대성으로 설정하고 그것이 현대에 초래하는 위기를 설파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인과 함께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하는 등 도가 철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하이데거의 탈근대적 세계관과 도가 철학이 맞닿는 지점은 『열자』에서도 발견된다.

“양주가 말하는 지(智)란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적 이성 능력이 아니라, 자연과 완전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686쪽).

근대 철학을 여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유명한 격언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에서 지식(knowledge)은 자연을 도구로서 이용할 수 있는 힘이다. 이 격언에서 근대인이 탄생했고, 자연의 도구화와 함께 인간은 유례없는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이 무분별한 정복자는 급기야 자연을 회복 불능 상태로까지 이끌었고 오늘날 현대인은 근대가 남긴 이 거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이러한 배경을 떠올렸을 때 양주의 입을 빌려 열자가 말하고 있는 지(智)는 과연 근대적 지식(knowledge)을 전복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장담 또한 “육신을 사유화할 수 없고 외물을 소유할 수 없음을 아는 이는 오직 성인”(684쪽)이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천지만물은 우리와 같이 생겨났으니 모두 같은 종류입니다. 같은 종류에는 귀천이 없고 다만 지혜의 차이에 의해 서로 제압하고 서로 잡아먹는 것이지, 서로 누구를 위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잡아다가 먹는 것이지, 어찌 하늘이 본래 사람을 위해 만들어냈겠습니까? 또 모기와 파리는 우리의 살갗을 물고, 범과 이리는 사람의 살을 먹지만, 이는 하늘이 본래 모기와 파리를 위해 사람을 낳았거나 범과 이리를 위해 살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815쪽).

심지어 이 발언의 주인공은 어린아이다. 대부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지적하는 주체로 어린이를 설정한 것은 열자가 기원전 인물임을 고려했을 때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진리의 상대성을 말한 도가 철학의 기본적인 태도를 비롯해 『열자』에 나타나는 생태주의적 사상과 반나이주의(anti-ageism)적 설정에 이르기까지, 열자 사상은 다른 어떤 동양 사상보다도 현대적이며 진보적이다. 나아가 번역가 임채우의 해설까지 곁들인 『장담의 열자주』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독자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사상의 정수를 보여준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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