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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답”…시민이 그 열쇠
“민주주의가 답”…시민이 그 열쇠
  • 김선욱
  • 승인 2023.06.0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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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시대 진단_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마이클 샌델 지음 | 이경식 옮김 |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440쪽

최근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가 번역·출간됐다. 샌델은 국내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에 대해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는 샌델 정치철학의 최고점이라며, 그 사용법을 정리했다. 김 교수는 샌델이 금융 시장사회와 능력주의를 비판했다고 평하며, “경제적 강자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우는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 적었다.

“샌델은 대기업과 금융 자본가들을 향해, 당신들이 이 시대의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하고, 경제적 강자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우는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

2005년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국이 처한 시대적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것은 여러분들이 고민하고 답할 문제”라고 답했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오늘에 처한 곤경을 분석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정치적 합의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지 않은 것이라면, 규모가 크고 또 멀리 있는 어떤 것에 충성하지 않는다. 설령 그게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말이다.”(13쪽) 그의 학문과 토론의 열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는 10년 이상을 왜 그런 샌델에게 집중했던가? 그가 우리 문제의 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질문을 던졌고, 이따금 우리의 대답을 비판적으로 점검해 주었을 뿐이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여러 저술의 정점을 이룬다. 여기서 던져지는 질문은 이렇다. “지금의 깊은 경제적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경제적 부정의에 대해 어떻게 경제적 강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경제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가?”, “효과적인 민주 시민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공적 삶을 재구축해야 할까?”

 

시민이 처한 상황을 이해조차 못 하는 정당

오늘날 우리는 정부가 옳은 결정을 내리고 옳은 정책을 실현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당은 시민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내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해조차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량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한다. 우리는 대기업과 금융계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 목표로 경영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거의 시장사회(market society)가 돼버렸다. 

시장경제사회란 사회가 시장을 활용하여 움직이는 사회를 말한다. 시장사회란 그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사회다. 여기서는 모든 게 시장 논리에 따라 작동하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다움‧사랑‧신뢰‧우정‧정‧충성심 등이 돈으로 거래됨으로써 그 본질이 변질된다. 샌델은 이런 변질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부패’라고 불렀다. 

이런 변화는 레이건이 시작한 세계화를 통해 급격히 강화됐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상품과 사람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이루어졌다. 금융은 시차를 넘어 다른 언어와 지정학적 환경에서 열리고 닫히는 자본 시장을 넘나들며 제 시대를 만났고, 능력자는 춤을 추었다. 글로벌 시장 앞에서 국가는 새로운 번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레이건, 부시 부자, 클리턴,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정당과 무관하게 진행된 세계화를 통해 국민총생산 성장분의 0.1% 증가에 불과한 무역 효과를 낳았을 뿐, 제조업 일자리는 대폭 축소됐고,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됐다. 부는 제조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금융 사업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시대로 변했다. 연구개발 역량이나 공장 신설, 시설과 사원의 확충보다는 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부를 가져다주었다. 

금융의 시대는 뛰어난 두뇌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능력자는 교육과 시험을 통해 검증받고 활용되고 보상을 받았다. 이때 보상되는 능력은 이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능력이 아니라, 자본이 모이는 데서 요구되는 능력뿐이다. 금융업에서의 능력과 중소기업에서의 재능과 성실성은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의 차이를 갖는다.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와 핸드볼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능력주의 시대의 참모습이다.

시장사회에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다움‧사랑‧신뢰‧우정‧정‧충성심 등이 돈으로 거래됨으로써 그 본질이 변질된다. 사진=픽사베이

 

세계화·금융·능력주의 그리고 시민

그동안의 세계는 세계화·금융·능력주의의 합작품이다. 세계화와 금융 시대는 부의 총량의 획기적 증가와 절대빈곤의 축소를 가져왔지만, 경제에 대한 시민의 통제력 약화와 빈부 격차의 극단적 심화를 가져왔다. 능력주의 시대는 능력자의 성공과 무능한 자의 실패에 따르는 오만과 굴욕의 감정을 보편화하였고, 또 그런 감정이 정당하다고 가르쳤다. 

이제 세계화는 끝났고, 2008년 금융위기와 최근의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를 통해 금융의 한계도 눈앞에 여실히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던 시민의 실패도 분명해졌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원하지도, 또 시행할 의사도 없는 사람을 최고 권력자로 선택했다. 

팬데믹 시대를 거쳐온 지금은 어떠한가? 시장 메커니즘이 공공선을 규정하고 그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근본적으로 의심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과거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사회를 향해 줄달음치며 여전히 능력주의를 부여잡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좋지 않은 모습이다. 여기서 샌델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과연 시민으로서 적절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샌델은 오늘날의 시민은 정치적 주체로서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자유로운 소비자로 생각하며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을 결정하는 경제적·정치적 구조를 우리 시민이 스스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며, 우리가 이 세계에서 온전히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시민적 삶의 태도를 부여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대기업과 금융 자본가들을 향해, 당신들이 이 시대의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할 리가 만무한, 경제적 강자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우는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시민의식(citizenship)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1997년에 출간됐던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전반부를 뚝 떼어 버리고, 1980년대 이후의 시대에 대한 분석과 민주주의의 회복과 시민의 역할에 대한 서술을 후반부에 더해 만든 책이다. 과거에 썼던 2장에서 6장까지는 미국 역사의 많은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경제적 조치들이 어떤 시민의식을 갖고 다루어져 왔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데, 여기서는 오늘날 우리가 금융 자본주의를 다룰 수 있는 시민의식, 경제와 정치 등의 핵심 주제에 대한 토론을 만날 수 있다. 결론은 이것이다. 민주주의가 답이다. 그리고 시민이 그 열쇠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뉴욕주립대 버팔로대에서 철학박사를 했다, 뉴스쿨과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UCIrvine)에서 풀브라이트 방문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한나 아렌트와 차한잔』 등이 있고, 샌델의 저서 대부분을 감수 혹은 공동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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