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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의 한국적 미학, 전통 사찰을 찾아서
성스러움의 한국적 미학, 전통 사찰을 찾아서
  • 이승건
  • 승인 2023.08.2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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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김봉렬 지음 | 관조 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34쪽

사찰 건축, 그 영혼의 울림을 말하다
사람도 품고 자연도 품는 전통 사찰의 한국적 미의식

한국의 문화와 예술이 요즘처럼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은 적이 또 있었을까?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알파벳 ‘K’에 드라마, 대중음악(pop), 전통음식(food) 심지어 국방(military)과 놀이(play)가 덧붙여지면 어느 새 가장 핫한 글로벌 한 주제어로 등극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화에는 점프가 없다. 세계인이 찾는 우리시대의 한국적인 것 역시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문화 유전자가 때론 두드러지게 그리고 또 때론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자기 운동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예술은 문화의 꽃이라 말한다. 물론 문화는 정신세계라는 심연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한다. 우리 전통 예술에서의 조형미 역시 한국적인 정신세계, 즉 불교의 기운을 강하게 꽃피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성덕대왕 신종이나 미륵사지 석탑 등 불교 조형물이나 불국사나 마곡사 같은 사찰 건축은 대표적인 ‘K-Art’의 전통적 버전인 셈이다. 이 중 우리의 전통 사찰의 건축미, 아니 거기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적인 미의식에 매료당한 한 권의 고백서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가 글을 쓰고, 불교 사진의 대가 관조 스님의 미려한 사진이 더해진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안그라픽스, 2002(초판))이 바로 그 책이다. 개정판(컬처그라퍼, 2011)을 거쳐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2: 마음의 풍경, 비움의 건축』(컬처그라퍼, 2013)까지 출간됐다고 하니, 가서 보고 머물며 마음의 풍경도 담을 수 있을 곳이 더 많이 생겨 흡족할 따름이다.   

원래 이 책은 저자가 〈현대불교신문〉에 1999년부터 2년 동안 격주간으로 연재했던 「가람의 장면들」 50여 편 가운데 29편을 골라 재구성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9쪽). 전체 여섯 개 장(Ⅰ.절로 가는 길, Ⅱ어우러짐: 가람과 자연의 조화, Ⅲ.넉넉함: 원융회통의 건축적 표현, Ⅳ.멋스러움: 가람에 담긴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Ⅴ.성스러움: 아름다운 것은 성스럽다, Ⅵ.수박함: 가람과 절제의 미학)으로 묶으며 각 장마다 4개 내지 7개의 가람을 탐방한다. 각 장의 제목과 거기에 딸린 소제목들(부석사, 땅의 리듬에 맞춰 오르는 계단식 석단 등) 하나하나가 사찰 건축의 아름다움만큼이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프롤로그(지형과 교리가 빚은 개성들 속에서-김봉렬, 가람에 담긴 정신을 찾아서-관조 스님)와 에필로그(사찰 건축,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김봉렬, 조선시대 불교 건축의 구성: 그 통불교적 교리-김봉렬)가 더해져 책읽기의 깊이를 조력한다.    

먼저, 저자는 29개 사찰 중 이 책 표지 사진의 주인공인 범어사부터 소개한다. 마치 절을 찾는 방문객의 발걸음을 ‘절로 가는 길’로 자연스레 이끌며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은 길’이라 안내하는 듯하다. 더욱이 범어사가 수십 동의 건물들로 가득한 대가람이지만 건축적 핵심은 진입부에 있다고 주장한다(19쪽). 이 진입로 길은 ‘3단으로 놓여인 세 토막의 길들’인데 ‘약간씩 어긋나며 휘어진’ ‘그다지 길지도 않고 똑바르지도 않은 길’이라 한다. 아울러 양켠의 낮은 담장은 탐방 길의 시각적 길이를 효과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황홀한 가람의 진입로는 비단 범어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 합천 해인사의 감동적인 진입로, 통도사의 휘어진 진입로 그리고 조그마한 산사의 고즈넉한 길들에서도 각기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땅 도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가람의 진입로는 한 마디로 ‘한국적 미학의 극치’이며, 가람의 주인들이 만들어 놓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그리고 지극히 건축적인 길들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으니(21쪽),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어찌하랴! 

이어지는 저자의 사찰 건축 탐방은 지형적, 교리적, 일상적 의미를 짚어 가며 너무나도 정겨운 필치로 우리 가람의 미학적 가치를 언급해 간다. 그 중 ‘불교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가람 속 사당’(대둔사 표충사, Ⅲ.넉넉함: 원융회통의 건축적 표현)에서는 이 땅의 정신세계(불교)가 겪은 고난의 시간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예술 중 하나로서 불교 건축에 자리 잡을 수 없는 유교 건축인 표충사(表忠祠)에 주목한다. 표충사는 사당(祠堂)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혁혁한 공을 세운 서산대사 등 승병장들의 영정을 모시는 전각의 성격을 지닌 곳이다. 어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주지하다시피, 조선 시대는 한국 불교의 암흑기였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선교 합일은 물론이고 유교-불교-도교 삼교의 통합을 주장한 서산대사(1520~1604)를 여느 사찰에서와는 달리 유교식 사당으로 모신 들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 모양이다. 이는 ‘유교화 된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한 불교의 생존전략’이자 ‘중생 구제라는 대승 불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104쪽)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소통과 포용이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 우리 선조들의 넓은 도량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의 전통 건축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건축을 꼽으라면 단연 사찰 건축일 것이다. 왜냐하면 궁궐이나 서원과는 달리 사찰 건축은 예나 지금이나 간단없이 그곳에 머물며 생활을 하고, 또 그곳을 찾는 이들 역시 여전히 그곳에서 동일한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찰 건축은 그 역사성과 현재성을 모두 지닌 문화적 화석이자 미래를 향한 우리 시대의 문화적 자산인 셈이다. 비록 이 책이 사찰의 답사 안내서로 집필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 전통 가람의 가치를 잔잔하게 들쳐보고 있는 만큼, 그곳에 가보고 싶고 머무르려는 탐방객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훌륭한 동행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다시 읽는 동안 뭔지 모를 위안을 받은 느낌을 서평자만의 감정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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