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7:10 (일)
연구 공동체가 흔들린다…“각자도생 멈추고 연대와 소통을”
연구 공동체가 흔들린다…“각자도생 멈추고 연대와 소통을”
  • 최유란
  • 승인 2024.02.02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 현장
지난달 26일 열린 한국현대문학자대회에서 '현대문학자의 초상'을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다. 사진=최유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현대문학 연구자들이 ‘각자도생’을 멈추고 함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현대문학 관련 23개 학회와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현대문학자대회 조직위원회(조직위원장 정종현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가 주관한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서 진행됐다.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현대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의제와 미래 △현대문학자의 위치와 연구자의 지리: 연구·실천·행위 △한국학이란 하(何)오 등을 주제로 한 3개의 학술 세션이 진행됐다. 또한 △좌담회 ‘학회란 무엇인가’ △라운드 테이블 ‘현대문학자의 초상’(위 사진) △김숨 작가 북토크 ‘잃어버린 사람’ 등이 열려 현대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현재 인문학과 현대문학 연구가 마주한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나이와 소속, 직위를 가리지 않고 모인 현대문학 연구자들은 현대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연대’와 ‘소통’이 절실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대문학자의 ‘슬픈’ 초상

인문학 연구와 교육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 개혁 여파를 인문학이 최전선에서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역 대학 국문학과 상당수가 통합 또는 폐과되는 수순을 밟았고, 그 흐름은 수도권 대학으로도 번지고 있다. 심지어 교육 당국은 최근 ‘무전공’ 입학 확대를 추진하며 인문학의 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현대문학 연구 공동체는 빠르게 활력을 잃고 있다. 이봉범 고려대 강사(국어국문학과)는 이번 대회 학술 세션에서 “국문학과는 제도적 분과 학문으로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이 축소되고 있다”며 “폐과가 되지 않더라도 국문학과는 한국어 교육이 먹여 살리는 형편이라고들 한다”며 우려했다. 이런 상황이 고착화되면 자연스럽게 신진 연구자 유입은 어려워진다.

제도적 요인도 연구 공동체를 위협하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바로 한국연구재단과 연구 공동체의 비대칭적 관계 문제다. 이봉범 고려대 강사는 “현실적으로 연구재단의 학술 지원 정책은 연구자 개개인의 지속 가능한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하는 장치”라며 “현대문학 연구 전반이 연구재단이 부과한 틀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 공동체가 연구재단에 갇히며 자율성과 주체성을 스스로 상실해가고 있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점도 현대문학 연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라운드 테이블 ‘현대문학자의 초상’의 사회자로 나선 김화선 배재대 교수(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는 “이제는 책 대신 웹툰을 보고 웹소설을 읽는 시대”라며 “이런 시대에서 현대문학자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질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에서 '학회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좌담회도 열렸다. 사진=최유란

학회부터 달라져야 한다…“신진 연구자에게 문턱 낮춰야”

현대문학 연구의 위기를 초래한 내부적 요인도 지적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학회’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모색하려는 논의가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학회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연구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가 활성화되려면 신진 연구자가 계속해서 유입돼야 하는데 이런 구조가 유입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학회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좌담회에서 이혜령 성균관대 교수(동아시아학술원)는 “학회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학위를 요구하고 가입비를 받는 등 여러 가입 절차가 있다는 점에서 개방적이지 않다”며 “신진 연구자 유입을 높이려면 이런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희경 숭실대 박사(문예창작학과)는 같은 좌담회에서 “신진 연구자들이 젊은 감각과 엉뚱발랄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학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은 분위기가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학회란 지속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젊은 연구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개방적인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회의 정체성과 기능을 전반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봉범 고려대 강사는 학술 세션 발표에서 “학술대회 개최와 학회지 발간에 편중된 학회의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학회의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회의 운영 방식도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이런 문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토론하며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에서 '한국현대문학자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사진=최유란

“각자도생 멈추고 연대해서 나아가자”

이번 대회에 참가한 현대문학 연구자들은 이런 논의를 기반으로 한 ‘한국현대문학자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것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연대에 토대한 연구자 주체성의 확립과 새로운 학술제도 및 문화 수립을 선언하며 세 가지 다짐을 했다.

먼저 연구자들은 ‘고립적 각자도생’을 극복하기로 다짐했다. 국적·지역·세대·젠더·직위의 차이를 넘어 상호 존중에 기반한 연구 공동체를 만들고, 나아가 한국현대문학자 공동의 의제를 발견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또한 대학과 학회를 비롯한 학술 지식 생산과 유통 체계를 정비하고 제도를 혁신하는 등 새로운 학술제도 및 문화를 수립할 것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은 지식의 공공성을 지향하며 사회적 책임을 담아 학술적 의제를 생산하는 등 연구자 주체성을 새롭게 자리매김할 것을 다짐했다. 

한국현대문학자대회 조직위원회는 이 선언을 현실화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이어갈 협의체인 한국현대문학자회의(가칭)를 만들 계획이다.

정종현 조직위원장은 “이번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으므로 이번에 모인 에너지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서로 돌보고 연대하며 인문학과 현대문학의 미래를 바꿔나가자”고 말했다.

최유란 기자 editor@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