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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지옥 해결, 거점국립 9곳부터 키우자”
“교육지옥 해결, 거점국립 9곳부터 키우자”
  • 윤정민
  • 승인 2022.01.1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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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내일을 말한다 ⑧ 『서울대 10개 만들기』 쓴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칼텍(캘리포니아 공대)이 지방 무명대에서 세계적인 명문이 되는데 10년이 걸렸다. 스탠퍼드대도 지방대에서 세계적 명문이 되는데 25년이 걸렸다. 한때 지방대였던 하버드도 개혁하는데 40년 이상 걸렸다. 우리도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만큼 투자하면 10년 안에 연세대, 고려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는 '대학통합네트워크'를 대중이 쉽게 이해하도록 지난해 12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펴냈다. 서울대를 제외한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것부터가 대학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게 김 교수 제안의 핵심내용이다. 사진=서울대

오는 3월 9일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대선 후보는 여러 공약을 검토하고 있다. 그중 ‘대학 입시’는 교육 공약에 빠지지 않는 주요 대목이다. 이번에도 어느 후보는 정시 비중을 확대하자고 주장하거나, 수시 전형 폐지와 연 2회 수능 실시를 주장하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입시 체계를 바꾼다고 수험생들이 지금과 같은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교육지옥’이라고 불리는 한국 교육에서 공정하지 못한 입시보다 더 심각한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는 그 원인을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병목현상’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사회가 대학을, 학문을 연구하는 ‘창조권력’이 아닌 학벌로만 치부하는 ‘지위권력’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교육지옥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교육지옥을 해결할 최소한의 해결책으로 현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키우자고 제안했다. 이는 김 교수가 지난해 12월에 쓴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김 교수가 지위경쟁이론(지위권력으로서의 대학), 대학사회학의 기술기능론(창조권력으로서의 대학), 병목사회론(대학병목, 공간병목, 시험병목, 계급병목, 직업병목)을 이론적으로 종합한 책이다.

그의 대학통합네트워크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교수신문>은 지난해 12월 29일 김 교수를 줌(Zoom)으로 만났다.

 

※ 김종영 교수는...

교육사회학자, 지식사회학자로서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서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2015),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2017),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2019) 등을 썼다. 김 교수는 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정책위원장,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of Education 편집위원 등을 맡고 있다.

△ 책 제목이 눈길을 끈다.

“‘서울대 10개로 구성된 대학통합네트워크’라는 말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국공립대 위주로 공동 입시·학위를 운영하고, 정부 지원 확대도 대폭 늘려 거점국립대부터 SKY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시키자는 정책이다. 문제는 지난 20년 가까이 이 정책안에 대해 꾸준히 논의해왔는데도 이 정책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 사립대 교수가 거점국립대를 부흥시키자고 주장하니 흥미롭다.

“‘교육지옥’을 해결할 신의 한 수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고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밝혔기 때문이다. 책 첫 문장에 “‘왜’는 학문의 존재 이유다. 학자 집단인 우리는 ‘왜’를 풀기 위해 존재한다. 탐구가 우리 임무이자 사명”이라고 적었다. 지식인은 본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본인이 연구하고자 하는 질문에 냉철히 답해야 한다.

교육사회학자로서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목사회와 서울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집중된 대학병목을 원인으로 진단했다. 한국 교육 문제는 지위권력을 독점한 대학 생태계의 물리적 구조로 나타난다. ‘SKY’라는 고속도로가 매우 좁다.

‘서울대’라는 고속도로를 늘리면 ‘교통체증’과 같은 입시 지옥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독일과 미국은 주(州)마다 자기들만의 ‘서울대’를 세웠다. 결과적으로 대학병목이 없거나 약하다. 우리나라도 10곳의 거점국립대가 골고루 분포해 있지만,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거점국립대 9곳은 서울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이 독일, 미국 대학과의 차이점이다. 이에 서울대를 제외한 9곳의 거점국립대를 ‘서울대’만큼 키우면 우리나라 대학병목 현상도 줄어들 것이다.”

△ 거점국립대 9곳을 어떻게 서울대만큼 성장시킬 것인가.

“대표적으로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교육 단계별 연간 학생 1인당 공교육비를 보면, 한국 대학교육 과정은 약 1만1천 달러로 초등학교(1만2천 달러)보다 1천 달러 적으며, OECD 평균보다 6천 달러나 적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의 경우, 대학 공교육비가 초·중·고보다 많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대학에 공교육비를 더 지원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르면, 내국세의 20.79%를 교육 예산으로 편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예산은 초·중·고교로 분배되지, 대학에 분배되진 않는다. 서울대 10개를 만들려면 9개 지방거점국립대에 각 1조 원씩, 총 9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초·중·고에 지원하는 예산 10조 원은 쉽게 지원하는데(올해 전국 교육청 예산은 지난해보다 약 11조 원 늘었다), 대학에도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또 하나는 구조조정이다. 학과별, 학문분과별로 통합하는 걸 말한다. 여기서 ‘구조조정’을 감원으로 오해하는데, 오히려 창조권력으로서 연구중심대학이 되려면 교수진과 행정직원을 대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현재 지방 국공립대 교원은 서울대보다 두 배 가까이 적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대학 체제의 사회학과 교수 수는 학교당 20~30명 내외로 우리나라 거점국립대 9곳의 5~9명보다 3~6배 더 많다.”

 

서울대 하향평준화 우려는 선입견

△ 서울대의 국립대 통합 참여가 오히려 서울대를 하향평준화시켜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명문 사립대에 지원하려는 기존 엘리트 집단이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향평준화는 제로섬 게임인 지위권력(학벌)으로만 대학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선입견이다. 독일이나 미국 대학들은 창조권력으로 작동한다. 독일 대학은 평준화된 구조를 지니는데, 이를 하향평준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캘리포니아 10개 연구중심대학이 196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아무도 하향평준화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위권력이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창조권력을 다원화, 극대화시키는 상향평준화다.”

△ 교원 개혁이나 우수한 입시 성적을 지닌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는 한 지방대들이 예산 대폭 지원만으로 서울대가 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또, 서울대가 적극 참여할지 궁금하다.

“독일과 캘리포니아 대학 개혁은 입시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다. 대학사회학의 창시자 버턴 클락은 지난 900년 동안 대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으로 1810년 독일 대학의 개혁을 꼽았다. 이전의 대학들은 성직자 양성과 상류계층의 교육이라는 지위권력으로 기능했다. 이를 바꾼 것이 1810년 독일의 ‘연구중심대학화’다. 대학이 지위권력에서 창조권력으로 바뀐 것이다. 이때부터 독일 대학은 100여 년간 글로벌 헤게모니를 형성했고,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미국에서 온 유학생도 1만 명이나 됐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독일 대학은 미스터리다. 왜냐하면 독일 대학은 평준화됐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을 발전시켰다. 노벨상도 110명 정도 배출했다. 왜 그럴까? 독일은 1870년 통일되기 전에 39개의 소국으로 이뤄져 있었다. 1810년 연구중심대학 혁명이 훔볼트주의에 입각해 독일에서 일어났고 독일 전역에 각자의 ‘서울대’를 만들었다. 통일 이후에도 각 주가 대학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했다. 우리 상황으로 비유하면 각 도에 ‘서울대’가 있었다. 그래서 독일대학은 평준화 체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독일 대학 발전의 역사적 경로를 글로벌 시각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버드, 예일 등 미국 대학들은 망하기 직전에 독일 대학 모델로 바꾸었다. 캘리포니아대학 체제도 창조권력으로서 3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스탠퍼드대, UC 버클리, UCLA, UC 샌프란시스코, UC 샌디에고가 IT 혁명과 BT 혁명을 일으켜 3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세계 경제를 낳은 산실이 됐다. 캘리포니아대학 체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변방에 불과했던 실리콘밸리를 창조했다. 결국, 대학 자체가 경제와 산업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독일의 바이오엔테크는 인구 22만의 마인츠 시에 위치하고 있지만, 백신 개발 덕분에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고 세계적인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곧 대학을 나와서 어디에 취직해야 하는지 걱정하는 것은 창조권력으로서의 대학의 기능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대학 자체가 기업을 만들고 지역경제를 이끌어 가야만 한다.

칼텍이 지방 무명대에서 세계적인 명문이 되는데 10년이 걸렸다. 스탠퍼드대도 지방대에서 세계적 명문이 되는데 25년이 걸렸다. 한때 지방대였던 하버드도 개혁하는데 40년 이상 걸렸다. 서울대가 참가하면 좋지만, 참여하지 않아도 (독일과 캘리포니아가 그랬듯)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만큼 투자하면 10년 안에 연세대, 고려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방 사립대 생존을 위한 별도의 정책 필요

△ 사립대도 재정 위기 등 고질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거점국립대 지원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책은 없기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서도 밝혔듯, 지방 사립대의 위기와 생존 역시 관심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정책 패키지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요 정책은 대학무상교육, 고교학점제와 연계한 수요 창출,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 전환, 규제 완화를 통한 해외 유학생(특히 중국)의 대대적 확충, 특성화를 위한 정부의 대대적 지원 등을 말한다.

그 중 대학무상교육과 고교학점제를 통한 지방 사립대 살리기와 활성화가 중요하다. 대학무상교육은 청년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이고 지방 사립대를 살릴 방안이다. 사립대를 살려달라는 것보다 대학무상교육으로 청년세대를 위해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다.

고교학점제는 지방 사립대에게 절호의 기회다. 미국 등 선진국의 고교심화과정은 각 지역 대학의 교수들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고교학점제를 연구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지역 대학과 고등학교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 사립대는 정부와 교사 집단을 설득해 지방 사립대가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는 주요 자원이자 파트너라는 것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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