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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 그리고 ‘탄탄한 지원’이 필요하다
정신력, 그리고 ‘탄탄한 지원’이 필요하다
  • 김시덕
  • 승인 2022.09.0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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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㉕_김시덕 문헌학자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진두지휘한 규슈 나고
야성이있던 자리의 현재 모습이다. 
사진=김시덕

임진왜란은, 분열돼 있던 일본을 절반쯤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가 구상한 세계 정복 전쟁 구상의 일부였다. 이 구상을 노부나가의 정치적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실행했다가 실패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외국과의 교류를 극도로 단절시킴으로서 노부나가의 구상을 종결시켰다. 노부나가는 유럽의 가톨릭 선교사들과 만나면서 중화(中華)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그는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으로 현실화되는 한반도 정복 전쟁, 그리고 중화권으로의 침공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82년 6월 2일에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노부나가는 세계 정복은 커녕 일본 통일도 달성하지 못한 채로 사망했다. 당시 서일본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히데요시는, 주군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적군에 감춘채 화의교섭을 성사시켰다. 그리고는 놀라운 속도로 교토를 향해 진군해서, 6월 12일에 야마자키에서 미쓰히데 군을 무너뜨렸다.

이러한 히데요시의 행동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최전방에서 부하들을 지휘했다는 점, 주군이 사망했다는 정보를 잘 감추어 화의교섭에서 불리함이 없게 했다는 점, 그리고 복잡한 정세를 수습하며 열흘만에 주군의 원수를 갚기까지 주변인과 부하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모든 행동의 근원에는 히데요시가 최전방에 주둔하면서 최신 정보를 접해 전략·전술을 쉼없이 업데이트하고, 부대의 보급을 꼼꼼히 관리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특성을 상실한 데에서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본 측의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히데요시는 애초에 국제정세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조선이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군량미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 현지의 상황은 히데요시의 이러한 전제와는 전혀 달랐다. 또한 직 접 조선에 건너와서 전쟁을 진두지휘하려 했으나, 그의 어머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덴노(天皇)에 이르기까지 이를 만류하는 바람에 규슈의 나고야성에 머물면서 원격으로 지휘해야 했다. 이 때문에 조선 현지의 전황이 나고야성에 전달되고, 이에 대해 히데요시가 지시한 내용이 다시 조선에 전달되기까지 시간차가 발생하게 됐다. 이러한 시간차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1592년 5월 18일이었다.

이날 조선의 북쪽 국경을 지키던 육군이 남쪽으로 이동해서 임진강에서 일본군을 기습했다. 비록 조선군이 패하기는 했지만, 조선측이 바다에서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본격적으로 반격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날을 전후해서 일본군의 조선침략이 명나라에 보고돼, 명 측에서 구원군을 파견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히데요시는 대륙 정복 구상을 25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일본 교토에 있는 덴노를 명나라의 베이징으로 옮기고, 자신은 명나라 남부에서 수군을 이끌고 다른 세계를 정복하러 가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구상은 히데요시의 과대망상이라고 지적돼 왔지만, 근본적으로는 히데요시의 장점인 현장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생한 판단 미스였다.

2022년 2월 24일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근본적으로 이와 동일한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공공 리더십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지닌다. 무사 정신이니 선비 정신이니 정신력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탄탄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도 동물인 이상, 물질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추상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게 된다. 구 일본군은 “보급부대가 군대라면, 곤충 잠자리 도 새다”라는 식으로 보급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가 태평양전쟁에서의 패배였다.

또한, 타인을 지도하는 입장에 선 사람은 자신의 전략·전술이 제대로 된 정세 파악에서 설정된 것인지를 늘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략 전술이 정세 변화에 따라 늘 업데이트돼야 올바른 지휘가 가능하다. 자신의 세계관에 갇혀있으면 안 되며,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언제나 귀기울여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력 증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라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정부는 외교적으로 더욱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김시덕 문헌학자

임진왜란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출간한 저서 『일본의 대외 전쟁』은 2011년 일본 제4회 일본고전 문학학술상 수상작으로 선정, 2017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후속작 『전쟁의 문헌학』은 2017년도 세종도서 학술 부문에 선정됐다. 2021년에는 제70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학술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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