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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 시대 교육, 반도체 전공 강화가 답 아니다
챗지피티 시대 교육, 반도체 전공 강화가 답 아니다
  • 김기봉
  • 승인 2023.07.12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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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①
생성형 AI와 대학교육

우리는 무엇을 위해 초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개발하는가?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 없인 불가능하다. 
사이 연결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는 융합인재 양성은 대학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위한 대학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수능 초고난도 문항(킬러 문항) 논쟁으로 정치권의 사교육 공방이 뜨거웠다. 대통령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없애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백년대계인 교육에서 킬러 문항 없는 수능시험 출제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가? 교육은 평가가 아니다. 평가는 교육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명의 대전환기에 교육부가 총역량을 집중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다. 지금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그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대부분이 쓸모없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필자는 수단인 평가를 목표로 설정하게 만든 수능시험이 한국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노동(labor), 일(work), 행동(action)이라 했다. 이 세 유형의 인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우리시대 필수품이 스마트 폰이다. 그것을 분실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멘붕에 빠진다. 그런데 인생 최대의 시험대인 수능시험을 볼 때, 그것은 사용금지다. 이 같은 삶과 교육의 괴리를 시정하는 문제가 킬러 문항을 없애는 것보다 중대한데, 왜 정치권과 교육부는 수능시험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금기시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김기봉 교수는 생성형 AI가 “아는 것만 알고 모른다는 것은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지식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묻는 과정이 필수다. 사진=픽사베이

 

생성형 AI시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지난해 11월 챗지피티라는 유령이 출현해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거기에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학습과 교육의 기본 값(default value)이 재설정되는 리셋이 일어날 전망이다. 세상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아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데, 그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운전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하면서 ‘길치’가 된 것처럼, 학생들이 그것에 의존할수록 글쓰기 능력은 퇴화된다. 더구나 챗지피티가 ‘환각’을 통해 가짜 정보를 양산하고, 그것에 의해 생성된 텍스트가 많아질수록 정보 생태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위험성은 커진다. 

그렇기에 챗지피티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시대 역설적으로 인문학적 글쓰기로 함양되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은 증대한다. 생성형 AI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식의 ‘알라딘의 램프’ 또는 ‘판도라 상자’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현생인류가 집단학습을 통한 문화적 진화로 성취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마지막 유산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인류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이해 근대 이래로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에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부는 6월 26일 제7차 대학 규제개혁 협의회를 개최해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계획을 심의・확정하고,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6월 29일부터 8월 8일까지 입법예고했다. 개정 시행령은 대학 교육의 체계를 바꾸는 파격적인 개혁을 포함한다. 70년 이상 교육부 규정에 있던 학과제도가 사라지고 대학조직을 자율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학위 과정 개설도 교육부 승인 없이 대학 자율로 할 수 있으며, 1학년부터 전과할 수 있는 등 시행령 115개 조문 중 33개를 개정하는 사상 최대의 변혁을 추진한다. 

이 모든 개정의 주요 목표는 디지털 문명 대전환에 부합하는 융합인재 양성이다. 융합인재의 표상인 스티브 잡스는 “창조란 바로 사물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on things)”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는 전공분야의 칸막이가 없는 그야말로 융합인재의 전형이다. 하지만 문제는 연결의 방식이다. 생성형 AI는 사이의 연결을 유사성 원리로 최적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확률론적 앵무새’라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생성형 AI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말하는 ‘바벨의 도서관’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거기엔 세상의 모든 지식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는 더는 새로운 지식은 생성되지 않고 기존의 것들을 재생할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지식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생성형 AI는 아는 것만 알고 모른다는 것은 모른다. 학문(學問)이란 문자 그대로 배우고 묻는 과정으로 성립한다. 그러기에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생성형 AI는 묻는 능력이 없기에 학문을 할 수 없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단편 『바벨의 도서관』을 썼다. 사진=위키피디아

 

연결하는 챗지피티, 해체하는 인간 상상력

챗지피티는 입력된 데이터들 사이를 연결해 글쓰기를 한다. 있는 것과 있는 것을 이어붙이는 편집으로 텍스트를 생성한다. 하지만 인간의 글쓰기는 기존의 것들을 연결하는 편집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곧 일어나지 않은 일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하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이를 메워야 할 결핍이 아닌,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포착한다. 챗지피티는 문제 해결을 위해 사실적 지식을 연결하지만, 인간은 기존 답을 해체하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의미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보자. 챗지피티에게 “사막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일단은 ‘모래’라고 답하면서, “사막은 일반적으로 인구가 적고 방해가 적은 곳이므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막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은 ‘조용함’ 또는 ‘평온함’일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후자의 답까지 한다는 것이 놀랍지만, 이 모두는 기존 지식의 결합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발상의 전환을 하는 새로운 답을 만든다. 예컨대 이문재 시인은 「사막」을 통해 사막에서 많은 것은 모래가 아닌 모래와 모래 사이고,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라 했다. 

융합인재는 학과의 칸막이를 허물고, 반도체 관련 전공을 확대하는 것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반도체 개발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범용인공지능이 탄생하는 날은 가까이 온다. 그러면 인간성과 인간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인류의 생존과 미래 문명이 인공지능 개발에 달려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초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개발하는가?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 없인 불가능하다. 사이 연결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는 융합인재 양성은 대학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위한 대학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대학에 인문학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 역시 깨달아야 한다. 인문학은 더는 대학의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이다. 인류세 대멸종 위기에 직면해 과학이 인류 생존 지식이라면, 인문학은 존재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학문이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포스트모던 역사이론으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역사학 너머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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