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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만물 이해해야 인간중심주의 벗어난다”
“우주 만물 이해해야 인간중심주의 벗어난다”
  • 김재호
  • 승인 2023.06.02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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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역사학 너머의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김기봉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28쪽

구성 요소·복잡성 증가·골디락스 조건이 서사 공식

역사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미래 개척할 내비게이션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는 빅히스토리 플랫폼을 운영하며 전문가 세미나를 운영 중이다. 그 결과물이 ‘역사학 너머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빅히스토리는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맥쿼리대 교수가 창시했다. 1989년 크리스천은 우주-지구-생명-인류의 역사를 연결하는 ‘빅히스토리’ 교과목을 개설했다. 크리스천은 19세기 러시아사를 전공했는데, 러시아사를 이해하려면 인류 전체의 역사를 알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빅히스토리는 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 등처럼 분류사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 역사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빅히스토리가 역사학계에서 저평가되는 이유는, 하나의 분류사로 고유한 역사학적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과학사 지식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지는 데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역사학과)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의 인기에 힘입어 빅히스토리는 최근 대중학술서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 너머의 역사』의 핵심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인류가 아니라 우주와 지구의 태초를 알면, 더욱 먼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김 교수는 “빅히스토리가 내비게이션으로서 작동하려면, 과거에 대한 역사 지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해야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진화, 인수공통감염병의 확산 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 그는 “빅히스토리는 인간이 과학과 인문학으로 탐구해낸 세상과 인간에 관한 모든 지식을 연결해 집단 학습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이야기다”라며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가치관과 경험에 근거해 만물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먼지로부터 생성된 작은 존재다”라고 지적했다. 

빅히스토리의 세 가지 서사 공식은 구성 요소, 복잡성의 증가, 골디락스 조건이다. 구성 요소는 92종에 달하는 우주의 원소들이다. 복잡성의 증가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가 돼가는 게 우주의 변화다. 그런데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산다. 즉, 생명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와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골디락스 조건은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딱 알맞은 상태를 뜻한다. 

골디락스 조건은 지구가 태양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딱 알맞은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지=위키피디아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4장 ‘전통 시대 동서양의 인문학’에 나온 천륜이 인륜보다 앞섰던 시대상이었다. 1907년 1만 명 가까이 모인 의병 운동은 ‘13도 창의군’ 대장이었던 이인영은 낙향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에 맞서 모인 집결 운동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 앞에서 무너졌다. 물론 그 당시 인문학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요한 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인문학 역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예는 눈을 가진 최초의 동물이 삼엽충이라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해양생물학자 앤드로 파커를 인용하며, “눈의 탄생이 포식자로서 동물의 생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생명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눈을 이용해 피식자를 피하고, 포식자가 돼 가는 과정에서 운동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김 교수는 “그런 선택압으로부터 여러 다양한 운동기관이 발생하는 폭발적 진화가 일어났다”라고 적었다. 

인문학의 세 가지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이다. 『역사학 너머의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기보다 최선의 대응이다. 김 교수는 “‘뇌의 나’로 태어난 인간이 ‘나의 뇌’로 살려는 불굴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성찰하는 인문학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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