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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에르도안, ‘21세기판 술탄’의 가려진 이면
[글로컬 오디세이] 에르도안, ‘21세기판 술탄’의 가려진 이면
  • 성일광
  • 승인 2023.06.30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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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또 에르도안이다. 지난달 28일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레젭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케말 클르츠다르올루 야권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거의 20년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독재를 해온 ‘21세기판 술탄’ 에르도안의 승리는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란 복수정당이 선거를 통해 경쟁하는 의미의 민주주의는 있으나, 오히려 민주주의가 법치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형국을 말한다. 2023년 프리덤 하우스의 자유지수 평가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100점 만점에 32점을 얻어 비자유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요르단, 모로코, 레바논보다 낮은 점수다. 

에르도안은 언론통제, 친난민 정책, 군수산업을 위시한 줄타기 외교를 통해 연임에 성공했다. 튀르키예의 비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21세기판 술탄’으로 등극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에르도안은 언론통제, 친난민 정책, 군수산업을 위시한 줄타기 외교를 통해 연임에 성공했다.
튀르키예의 비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21세기판 술탄’으로 등극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최근 몇년 새 튀르키예 화폐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튀르키예 국민은 물가상승률 70%를 체감하고 있다. 2021년 초 미국 달러 대비 7.4리라였던 환률이 12월에는 17.94리라까지 떨어졌다. 선거 이전 19리라 대에 머물다 대선이 끝난 후에 다시 폭락해 현재 23리라까지 내려갔다. 상황이 이런데도 에르도안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경제회복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인상해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를 줄인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도리어 “높은 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금리를 내려 화폐 가치를 낮추면 수입 물가가 오르게 돼 수입이 줄고, 수출품 가격은 낮아져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수출이 늘어나 경제가 회복되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늘어나고, 이는 곧 국내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에르도안은 금리 인하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고, 이에 반발하는 관료는 가차 없이 경질했다. 그는 2019년 이후로 3년여 동안 중앙은행 총재를 3번 교체했다. 경제정책 실정이 명백한데도 튀르키예 국민은 왜 또다시 에르도안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을까.

2003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에 번갈아 오르며 집권해온 에르도안은 야권후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리한 선거를 치렀다. 일단 현재 튀르키예 내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언론이 많지 않다. 2016년 군부의 쿠데타 실패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156개 언론매체를 폐쇄했다. 튀르키예 언론 조합(TGS)은 당시 2천500명의 기자와 언론 종사자가 직장을 잃었다고 추산했다. 게다가 언론 정보 담당관은 기자 778명의 취재원 자격을 취소했다. 언론인 보호위원회(CPJ)는 많은 언론인이 수감된 것을 빗대어 튀르키예를 세계에서 ‘가장 큰 언론인 수용소’로 묘사했다.

따라서 에르도안의 실정을 제대로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에르도안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원대한 구호를 내걸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분쟁에 개입해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에르도안은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고, 카타르와 군사교류를 통해 돈독한 관계를 만들더니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오고 있다. 

에르도안은 군수산업을 발전시켜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튀르키예가 생산해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레이저 유도 방식 바이라크타르 TB2 드론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이미 2016년 최소 13개 국가에 바이라크타르를 판매했고, 최근 UAE에도 수출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도입을 원하고 있는 만큼 튀르키예 드론의 인기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드론 생산공장을 건설해 우크라이나를 도왔지만, 러시아와도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훌륭한 중립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튀르키예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자극하는 외교정책과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친정부 언론을 통해 사실상 튀르키예 국민의 ‘국뽕을 자극하는’ 전략이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을 다시 한번 승리하게 했다. 에르도안의 친난민정책도 선거에 도움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60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이란 난민 중 일부는 튀르키예 시민권을 부여받았으며, 그들은 아마도 에르도안에게 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에르도안의 친이슬람 정책도 인구 99%가 무슬림인 튀르키예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최소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임기를 연장할 수 있게 된 에르도안의 미래를 마냥 장밋빛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 중반이슬람과 민주주의가 결합한 고유한 민주주의 모델로 정치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튀르키예 정치는 이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기반한 독재 정치로 변질돼 ‘독재체제의 내구성’이라는 새로운 연구대상이 된 것은 민주주의 체제 유지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한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 이스라엘
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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