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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대 보수, D-와  F의 대결
진보 대 보수, D-와  F의 대결
  • 김종영
  • 승인 2023.10.23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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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 ⑭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지방소멸, 인구소멸, 사교육비 문제,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재편, 부동산 가격 불안정, 젠더 불평등, 초양극화,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국가적 어젠다는 무엇일까?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구절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주인공들에게 이 구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귀족의 입장에서 혁명 전은 최고의 시절이었고, 혁명 후는 최악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구체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연 프랑스 혁명은 최고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적을 기요틴으로 보내고 복수(revenge)를 하기에는 최고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가 격렬하게 비판했듯 프랑스 혁명은 시민과 귀족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테러와 살인으로 극도의 혼돈 속으로 빠져든 최악의 시절이기도 했다. 문학의 힘은 양립 불가능한 것을 양립 가능하게 함으로써 삶과 세계의 모순‧다면성‧복잡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불평등하게 분포된 최고·최악의 시절

이 구절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각 사회나 개인이 겪고 있는 현재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최고의 시절이다. 하지만 세계 최저 출산율, OECD 최고 자살률, 초양극화, 서울독재, 고질적인 젠더 불평등, 극단적인 진영 갈등으로 최악의 시절을 겪고 있다. 한국은 완전히 길을 잃었고, 한국인들은 희망을 잃었다.

최고의 시절과 최악의 시절은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회라는 것이 통일된 전체가 아니기에 최고의 시절과 최악의 시절은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서울 특히 강남에 사는 자산가들은 지난 수년 간 최고의 시절을 맞이했다.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 억원에 이르는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의 실상은 ‘서울 사람이 먼저다’였다. 사회과학자들이 여러 통계로 입증했듯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문재인 정부 시절 급격하게 악화했다.

반면 지방민, 청년 세대, 여성들은 최악의 시절을 맞이했다. 지방의 자산은 서울만큼 오르지 않았고, 서울의 대학 진학과 취업은 너무나 힘들고 비싸며,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보다 현저히 적다. 문재인 정권은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진보의 실력은 엉망이었다. 

그렇다면 보수의 실력은 어떠한가? 지난 대선은 지도력 선거, 비전 선거, 정책 선거가 아니라 ‘복수 선거’(revenge election)였다. 86 정치 세력이 미워 죽는 사람들이 똘똘 뭉쳤다. 저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 최악의 시절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의 분노가 뒤덮었다. 이들은 복수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았다. 그들은 0.73% 차이로 간신히 문재인 정권을 심판했다. 그리고 기나긴 복수가 이어졌다. 

애초에 비전과 정책이 없었기에 이 복수 선거의 승리는 처음부터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굶주린 올드보이들이 귀환하여 정부를 난도질하고, 언론 자유는 급격하게 후퇴했다. 보수는 낡은 이념의 전사가 되어 비전과 정책은 안중에도 없다. 대통령 지지율은 30~35% 내외로 임기 내내 낙제점이었다. 지지율이 사상 최고였던 문재인도 심판받았다. 지지율 30% 대통령이 심판받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상식적인가.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장 모습이다.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수와 진보, 그야말로 막상막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믿는 구석이 있다. 보수의 실력도 엉망이지만 진보의 실력도 엉망이다. 그야말로 막상막하다. 이들의 실력을 학점으로 치면 D-와 F의 차이다. 나는 한국 국민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B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B 학점의 국민들이 보기에 D-와 F의 보수와 진보는 상종도 하기 싫은 낙제 집단이다. 정치 혐오층과 무당층이 증가하고 제3의 정치 세력을 갈망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정치 지형이라는 것이 일종의 인프라이기 때문에 신선한 사람 몇몇이 모인다고 해서 정치 지형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D-와 F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아주 큰 희망이 있다. 조금만 잘해도 쉽게 상대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D+나 C-만 받아도 승리한다. 내년 봄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분수령이다. 선거라는 것이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보수도 진보도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자신의 실력도 엉망이지만 상대방의 실력도 엉망이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 

당신이 진보나 보수의 최고 전략가라고 가정해 보자. D-와 F의 학점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 상대방을 끝까지 공격하고 물고 늘어지는 방법이 있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야당에게 유리하지만, 정부라는 권력과 검찰이라는 무기는 여당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는 전략이기에 D-와 F 학점은 그대로 유지된다. 학점을 끌어올리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어젠다가 없다, 이것이 문제다

학점을 끌어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선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도 국가적 어젠다를 제시하면 좋다. 당신은 진보와 보수의 최고 전략가이기에 국가적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지방소멸, 인구소멸, 사교육비 문제,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재편, 부동산 가격 불안정, 젠더 불평등, 초양극화,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국가적 어젠다는 무엇일까? 당신은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어젠다가 없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문제다. 

총선에 마음이 가 있는 여러 사람들이 나의 어젠다를 듣고 싶어한다. 나는 이들을 만나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경쟁은 D-와 F의 대결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크게 웃는다. 동의한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나에게 묻는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D-나 F를 B로 만들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하면 됩니다.” 이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는다. 한쪽에게는 최고의 시절이, 다른 쪽에게는 최악의 시절이 기다리고 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황우석 사태를 연구하다 영감을 받아 ‘21세기 파우스트’ 『문두스』(소설)를 오랫동안 집필하여 최근 출판했다.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EBS 다큐멘터리 K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영).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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