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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층 무너지면 한국 성장신화 사라진다
중간계층 무너지면 한국 성장신화 사라진다
  • 최승우
  • 승인 2023.11.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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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⑲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14일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과)가 「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0강은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사회학)의 「양극화와 중산층 문제」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중간 계급 직업 점유의 양적 확대는 이질화 속에 진행됐고 일부 전문직은 전문 직종의 정체성과 일의 방식, 사회적 관계, 문화적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면서도 상당히 낮은 소득을 경영해 가는 혼종적 계급 상태를 이어간다. 미래 중간 계급의 불안정과 불안은 열망과 기민함에 기반한 한국 성장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잠식할 요소다. 문제는 결국 정치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성장과 그에 따른 상승 이동에 대한 기대를 붙잡고 끊임없는 경쟁과 사적 투자를 감행하는 열망 자본주의의 장이라 명명할 만하다. 사회과학 연구는 치열한 교육과 취업 경쟁에 열망을 안고 뛰어들어 중간 계급적 직업과 정체성을 얻은 많은 이들과 그들 내부 지위와 불안정의 격차, 더불어 사회 구성원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서, 전환 경제의 치열한 경쟁 대열에 끼지 못하는 낙담 청년 집단의 불안정을 중간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기회균등 지수는 이런 불평등 구조가 지식 사회 적응에 대한 기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경제 성장 수준이 높아 기회가 많은 상황에서는 이런 자유주의적 노동 시장 구조가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장이 지체되거나, 혹은 불평등 수준이 높아지고 이동이 제한돼 하층에 놓인 개인의 투자 의지가 한층 꺾이는 상황이 오면, 정부와 기업의 공격적인 자유주의화는 시민의 단일 정체성과 평등한 기회를 강조해온 한국에서 사회 구성원의 불만과 불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지식 경제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노동력 구성 나아가 계급 구성의 변화를 함의한다. 최근 피케티를 위시한 일련의 사회과학자들이 임금을 받는 극소수 초엘리트 집단의 등장에 주목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영국에서는 200여 년, 그리고 일본에서는 100여 년에 걸쳐 도달한 전환의 여정이 한국에서는 반세기로 압축됐다. 1980~1990년대를 경유하며 고도화된 제조업을 기축으로 21세기 한국은 디지털 주도의 지식 경제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 수출 경제의 주축인 제조업의 디지털화나 ICT 산업뿐 아니라, 예상치 않게 제조업의 대량 생산 논리를 배워 새롭게 적용한 문화·창의 부문이 의외의 산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경제는 문화 생산과 적극적 소비자로서 국제 지위를 획득했다.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최근 한국에서 청년의 다수는 중간 계급의 범주에 속한다. 오히려 저소득 계층에 집중적 분포를 보이는 집단은 기술 중심 경제 체제의 변화에서 멀어진 중고령 세대”라며 “오히려 전문직 중심 중간 계급의 확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전환 경제의 새로운 성장 레짐이 이전 세대 전문직 확대가 가져왔을 안정성과 중간 소득 계층의 전반적 확대를 계승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1990년대 말 경제 위기와 생산직의 대량 실업을 경험하며 폭발하고 여기에 빠르게 부응한 대학 교육 팽창 정책으로 이미 2천 년에 동년배의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 되는 대학 교육의 확장은 2천년 대 들어 급발진한 디지털 전환과 지식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전문 인력 풀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의 직업 선택 패턴을 변화시켰다.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 생산직 노동자와 중간 정도의 사무관리 준 전문직 종사자가 중간 소득 계층의 안정감 있는 삶의 전망을 희망할 수 있었던 시기는 극히 짧았다. 그나마 1990년대 초반 이후 얼마간 경제적 안정감을 향유할 수 있게 된 일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도 예전과 달리 조직 내 목소리는 확보했지만, ‘격에 맞지 않게’ 상승한 생산직 임금을 질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식들은 대학을 졸업한 화이트칼라 대열에 세우기를 열망하고 실천했다. 

미국에서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서유럽으로 넘어가면서 10%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만 하더라도 수년 전 24%까지 올라갔던 저임금 비중이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에 힘입어 2022년 기준 16% 정도로 내려왔다. 

전문직과 관리직은 최근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진전과 상용화에 따라 일자리 안정성을 위협받고 있는 직업으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지식 경제의 확대에 따라 고용 자체가 늘어나는 추세는 분명한 것 같다.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전문직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중간 계급 라이프스타일의 확대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정성의 확대를 내포한다. 부상하는 전문직의 상당수가 기업 조직 그리고 복지 국가의 울타리 밖에서 제도가 제공하는 안정성과 유리되고 그에 따라 중간 계급 고유의 안정성과 거리가 먼 삶을 이어간다. 

이런 의미에서 전환 경제는 중간 계급의 위치에 놓인 노동자를 축소시킨다보다는 이 위치에 놓인 노동자들의 중간 계급적 안정성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즉 지식·창의·돌봄 영역 중간 계급의 확대는 중간 계급 고유의 현재와 미래 생애 전망의 안정성 확대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확대가 병존한다.

불안정한 중간 계급의 확대, 혹은 중간 계급의 불안정화를 의미하는 이런 상황은 비단 한국의 문제라 보기 어렵지만, 비공식 고용의 확대가 빠르게 진행돼 온 최근 20년의 한국 노동 시장 변화는 이러한 혼종적, 이질적 중간 계급화를 더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2천 년대 초반 좋은 일자리로 진입하는 데 난항을 겪던 ‘대졸’ 청년 세대의 빈곤화에 대한 우려는 2천 년대 중반 소위 ‘88만 원 세대’론과 같은 상징적 청년 담론에 대한 사회적 센세이션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두운 노동 시장 담론의 전개나,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저성장 시대의 도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실질적 성장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OECD 평균이나 유로 17개국 평균에 비해 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의 사용자는 포스트 위기 상황에서도 위기의 개연성과 고성장 시대를 회고적 레퍼런스로 저성장을 강조함으로써 탈규제적 노동 시장 유연화의 필요성을 관철시켜 나갔다. 부문별로 고용 절감과 유연화를 적절히 섞는 세그멘트 전략과, 노동 집약 부문의 임금 인상을 억제함으로써 수출 부문 경쟁력을 유지하고 저항에 부딪치지 않는 전환을 밀고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20~30대 청년층의 경우 다수 직업 중저임금 서비스 직종의 비중은 전체 노동력의 해당 비중에 비해 낮을 뿐 아니라 4년제 대졸 이상의 분포가 꽤 높아 빈번한 노동 이동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다수직 중 전문 서비스 직종의 비중은 높다. 

전문 서비스 직종은 공학과 IT 등 고임금 직종의 경우 남초 현상이, 돌봄 관련 직종의 경우 여초 현상이 두드러진다. 직종 내 임금 격차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남초 전문 직종의 경우 임금 수준이 높고, 여초 전문 직종의 경우 해당 연령대의 중위 임금과 유사한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돼 양자 간 임금 격차가 크다.

또 거의 전 직종에서 젠더 임금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판매나 음식 준비 서비스 등 전통적인 서비스 직종의 경우 이 격차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난다. 예술·문화·스포츠 전문직의 경우 임금 수준은 해당 연령대의 중위 임금보다 약간 낮은 수준을 보여 특별히 저임금 직종이라 할 수는 없지만, 프리랜서 혹은 프로젝트 기반의 단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일자리 비중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의 디지털 전환·지식 경제화의 주력은 청년 세대라는 점, 40대 이상 중년 이상의 노동자는 이러한 전환에 적극적으로 포섭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문직은 주로 청년이, 저임금 서비스직은 주로 50~60대의 고령 노동자가 분절적으로 분포하는 돌봄 경제의 경우에도 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환기 지식 경제는 수직적·수평적 분절, 그리고 그 분절 구조에 세대와 젠더 범주가 차별적으로 매치되고 있다. 이 분절 구조는 임금 불평등에도 직결된다.

디지털 전환이 주도하는 지식 경제화와 인구 구조와 사회 규범 변화에 따른 돌봄 경제의 전개 등 전환 경제라는 맥락에서 한국 사회의 직업 구조 변화와 그 사회적 함의를 살펴봤다. 

특히 21세기 엘리트 계급의 새로운 부상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확산에 따른 중간 계급 축소론 혹은 양극화론과는 달리 고등 교육의 폭발적 확대와 함께 자라난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전문직 중심 중간 계급의 확대를 주장했다. 

이 글에서는 통상적으로, 소득이라는 단일 변수를 사용해 중위 소득 중심의 일정 범위 혹은 일정 소득 분위를 중간 계급으로 분류해 분석되는 양극화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직업 구조의 변화와 해당 맥락의 일자리 질의 변화를 통한 계급 불평등 구조 변화에 대한 고찰을 제안한다. 

포스트 경제 위기 시기 한국 생산물 시장과 노동 시장의 급격한 구조 조정, 탈규제적 노동 시장 자유화, 국내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을 경유하며 크게 축소된, 그리고 최근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의 진전에 따라 추가 축소되고 있는(중간 소득 계층) 생산직을 대체해온 전문·기술직 중심의 직업 구조 변화는 구조조정 초기의 청년층 88만 원 세대론과 양극화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최근 한국에서 청년의 다수는 중간 계급의 범주에 속한다. 오히려 저소득 계층에 집중적 분포를 보이는 집단은 기술 중심 경제 체제의 변화에서 멀어진 중고령 세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론이 청년을 중심으로 하는 변화하는 직업 구조가 한국 불평등 구조에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 중심 중간 계급의 확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전환 경제의 새로운 성장 레짐이 이전 세대 전문직 확대가 가져왔을 안정성과 중간 소득 계층의 전반적 확대를 계승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간 계급 직업 점유의 양적 확대는 이질화 속에 진행됐고 일부 전문직은 전문 직종의 정체성과 일의 방식, 사회적 관계, 문화적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면서도 상당히 낮은 소득을 경영해 가는 혼종적 계급 상태를 이어간다. 

또, 전문직에도 상당히 확산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계약(예를 들어 단속적 프로젝트를 소득의 기반으로 하는 프리랜서)은 지식형 전환 경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국제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탈규제적 자유화의 방향으로 움직여온 한국 노동 시장에서 전문직과 저 숙련 생산·서비스직 노동 양자 간을 균형 있게 대변하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거버넌스와 조정 정치의 결여, 그리고 불확실성과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과 위험을 완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전반적 부족과 함께 증폭된다. 미래 중간 계급의 불안정과 불안은 열망과 기민함에 기반한 한국 성장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잠식할 요소다. 문제는 결국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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