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9:50 (토)
한국의 기형적 계급투쟁, 중산층 박탈감 키운다
한국의 기형적 계급투쟁, 중산층 박탈감 키운다
  • 최승우
  • 승인 2023.11.15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⑳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사회학)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1일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사회학)가 「양극화와 중산층 문제」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1강은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의 「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불안은 현재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세대·계층·성·지역·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국민이 불안을 겪으며 살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은 이제 경제적 위치·계급적 이해관계·정치적 성향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두 개의 계층 집단으로 분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부유 중산층이 원하는 경제정책과 일반 중산층이 원하는 정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중산층에 관한 얘기는 주로 중산층의 위기 또는 중산층의 몰락에 집중돼 있다. 신문 지상이나 SNS에서 자주 접하는 뉴스는 한국의 중산층이 과거에는 인구의 70% 또는 80%대까지 됐는데 현재는 40%까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몰락 위기에 있는 중산층을 어떻게 보호하고 과거 수준으로 복원하느냐가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불행히도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겪게 됐고, 그 이후 중산층의 운명은 급속한 반전을 겪었다. 대량 해고와 명예퇴직·사업 도산으로 많은 중산층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중산층 위치에서 탈락하게 됐고, 노동 시장 유연화 전략이 시행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40% 정도, 또는 어느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무엇일까? 다행히 최근의 한 설문 조사가 여기에 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매일경제>와 <잡코리아>가 2019년 실시한 설문 조사가 설문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상적인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매일경제>, 2019년 10월 28일 자). 이에 대해 가장 많이 응답한 소득 범위는 500만~600만 원이었다. 자택 소유에 관한 질문에서 응답자들은 30~40평 정도의 아파트를 소유하거나 전세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중상층의 주거 조건이라고 답했고, 그것은 당시 시장 가격으로 약 5억 원 정도가 되는 집에서 사는 것을 의미했다. 

응답자들은 이런 경제적 소유 이외에도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믿었으며, 중산층이라면 한 달에 4번 정도 가족과 외식을 하거나, 1년에 1~2회의 해외여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따라서 대다수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 삶의 기준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 확실하다. 2010년 중반 한국의 중위 소득이 월 230만 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거의 비현실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최근의 조국 사태가 한 예이지만,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관 후보들의 각종 비리와 특권 추구 행위는 이것이 한국 특권 중산층의 계층적 문화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라며 “이러한 한국 특권 중산층의 계급적 행동이 한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최근의 조국 사태가 한 예이지만,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관 후보들의 각종 비리와 특권 추구 행위는 이것이 한국 특권 중산층의 계층적 문화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라며 “이러한 한국 특권 중산층의 계급적 행동이 한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경제적 양극화는 한국만이 경험하는 현상이 아니라 현재 거의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우선 최상위층으로 국가의 소득과 자산이 집중되고 나머지 인구의 소득은 침체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인구의 상위 1%와 하위 99% 사이의 괴리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사회에서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중산층 개념을 소비 수준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정의해왔다. 남부럽지 않은 수준의 소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는 필수 요건으로 간주돼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현상이 소위 말하는 ‘명품 열풍’이다. ‘명품’은 원래 이름난 장인이 만든 고품질의 제품을 의미하며 주로 훌륭한 도자기·악기·오디오 등에 붙이던 단어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유통 시장 개방으로 각종 사치품 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그중 유명 패션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명품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루이비통·구찌·샤넬·에르메스 등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구두·의복·액세서리 등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이 브랜드 제품들의 초기 소유자는 부유층 소비자들이었지만 곧 일반 대중으로 모방 소비가 확산되면서 소위 ‘짝퉁’시장을 발달시키기도 했다.

한국에서 부유 중산층의 등장과 병행해서 일어난 중요한 현상은 강남의 등장이다. 어느 사회나 부유 가정이 밀집된 지역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강남만큼 부유 중산층이 대규모로 한 지역에 밀집해서 살고 있는 지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강남을 얘기할 때 부동산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부동산은 강남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실로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강남의 가격이 이렇게 계속 상승한 이유는 이 지역이 주는 특권적 교육 기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명문 고교 이전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다시 대치동 학원가가 들어서며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럼으로써 자식의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주한 가정은 비단 자식의 교육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예상치 못했던 큰 혜택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강남은 여러 면에서 특권적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심화하는 불평등이, 특히 중산층 내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격차가, 교육 부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한국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이지만 사실 한국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은 자식이 좋은 지식을 배우고, 교양을 쌓고,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대접받고 성공하는 데 필요한 학력이나 학벌을 얻는 데에 있다.

즉 부모들의 강한 교육열은 자녀가 명문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학벌을 성취하기 바라는 욕구를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문화 자본이기 때문이다. 학벌은 개인이 대학 입시를 볼 시기에 결정된 후 평생 따라다니는 일종의 신분 증서 같은 역할을 한다. 한번 정해진 학벌은 바뀌지 않고, 또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교육 경쟁은 근본적으로 좋은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교육 경쟁이 주로 사교육을 통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한국 가정은 사교육을 위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비중의 사교육 비용을 지출한다. 최근 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국 가정은 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한 생활비보다 더 많은 돈을 사교육비에 지불하고 있다. 중산층일수록 학교 교육보다 학원이나 개인 과외 수업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한국의 사교육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 사교육 기회 차이가 뚜렷하고 그 격차가 점점 더 심각해져간다는 것이다. 서울과 지방이 다르고, 서울의 강남과 강북 사이에도 큰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 사교육 시장을 대표하는 곳은 학원가의 메카라고 불리는 대치동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사교육 시장의 기형적 발달은 부유 중산층의 등장과 그들의 계급 세습을 위한 전략과 관련이 있다. 교육은 중산층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상위 중산층에게는 특히 중요하다. 

한편 진짜 부자에게는 교육이 그렇게 중요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사업체를 자식에게 물려줘서 계급 세습을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직·관리직 중산층 가정에서는 교육이 계층 세습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자식의 명문대 입학에 사활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사교육 시장이 왜 그렇게 기형적으로 발달했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지 정부의 평준화 정책만이 아니라 그것을 우회하기 위해서 부유 중산층이 택한 전략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설사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어도 부유층이 증대하고 그들의 가족 이기적 교육열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 시장은 어떤 형태로든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지난 20~30여 년간 격변하는 경제 속에서 한국의 중산층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위기를 단지 중산층의 규모가 줄어들거나 그들의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진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이렇게 계급 지형도가 바뀌면서 한국의 중산층은 과거의 동질적이고 유동적이며 사회 안정적 역할을 하는 계층 집단에서 내부적으로 분화되고 상향 이동이 막히고 불안에 가득 찬 계층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불안은 현재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세대·계층·성·지역·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국민이 불안을 겪으며 살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은 이제 경제적 위치나, 계급적 이해관계, 그리고 정치적 성향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두 개의 계층 집단으로 분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부유 중산층이 원하는 경제정책과 일반 중산층이 원하는 정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최근의 조국 사태가 한 예이지만,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관 후보들의 각종 비리와 특권 추구 행위는 이것이 한국 특권 중산층의 계층적 문화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러한 한국 특권 중산층의 계급적 행동이 한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의 물질주의적이고 가족 이기주의적인 행동은 사회를 좀 더 평등하고 안정된 사회로 만드는 대신, 점점 더 사교육을 통한 교육 경쟁과 세속적 성공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회로 몰아가는 역효과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산층 문제를 고민한다면 단지 중산층에서 추락하는 많은 패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경제 구조에서 승자로 떠오른 신 상류 중산층의 계급적 이익과 계급 행위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