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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양심을 회복하자
정의와 양심을 회복하자
  • 김병기
  • 승인 2024.01.01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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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망의에서 견리사의로
견리사의(見利思義)’ 휘호.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가 예서체(隸書體)로 직접 썼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교수신문> 측의 요청에 의해 내가 추천한 사자성어가 바로 견리망의였는데, 그것이 전국 교수들의 공감을 얻어 뽑히게 된 것이다. 내가 추천한 것이 뽑힌 점에서는 영광스러운 일이랄 수도 있겠지만 기분은 영 씁쓸했다.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이 말이 2023년의 우리나라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니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서예가라는 이유로 <교수신문>에서는 “이왕에 교수님께서 추천하신 사자성어이니 휘호도 교수님께서 해주시지요”라고 하며 휘호를 부탁했다. 나는 신문에 게재돼 많은 사람들이 볼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썼다. 가로로 쓴 예서체 작품과 세로로 쓴 행서체 작품 모두 나름대로 필획이 튼실하고 결자와 장법이 웅장한 작품이 나왔다. 

그러나 마음은 참 허전했다. 내 서예 인생에서 이런 ‘악담’을 서예 작품으로 써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천균(千鈞) 쇠뇌의 힘을 머금고 있는 붓에 이 세상에서 가장 현묘한 색인 묵색(墨色)의 먹물을 적셔 순백의 종이 위에 축원과 평화와 희망을 담아 호기(浩氣)가 충만한 필획으로 일필휘지하는 게 서예의 본령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먹물과 종이를 사용해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잊는다’는 악담 견리망의를 그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 쓰고 보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예의 용도는 대개 명구(名句)와 명언(名言)을 써서 벽에 걸어 두고 보며 그 뜻을 되새기는 데에 있다. 그런데 견리망의라는 악담을 쓴 이 작품은 한 해를 돌아보며 세태를 비평한 <교수신문>의 용도로 사용된 이후, 영원히 게시할 일이 없는 ‘작품 아닌 작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회용 용도를 다한 후, 자동 폐기돼야 할 기구한 운명의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폐기될 ‘見利忘義’ 작품에 반영되었던 내 예술혼을 달래기라도 할 양으로 『논어』에 나오는 원래의 구절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다시 써서 <교수신문>에 게재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수신문>은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지난해가 불행하게도 견리망의의 한 해였다면, 올해는 누구라도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견리사의의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붓을 들어 악담을 썼던 씁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축원과 평화와 희망을 듬뿍 안는 2024년 새해를 맞고자 한다. 

이 작품이 올해 대한민국 사회로 하여금 견리사의의 정의와 도덕과 양심을 회복하게 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중국시

중국문화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고전시가와 서예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서예학회, 한국중국문화학회 회장과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서예가협회 부회장을 맡고있다. 2010년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수상했다.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학고재, 2020), 『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 축원·평화·오유』(어문학사, 2020)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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