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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제3의 길을 모색하다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제3의 길을 모색하다
  • 최승우
  • 승인 2024.02.02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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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㉗ 이동철 용인대 교수(중국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 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 6일 이동철 용인대 교수(중국학과)가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8강은 양혜림 청강문화대 교수(만화콘텐츠)의 「대중 문화와 고급 문화」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한국의 인문학이 디지털 세계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이 아닌 제3의 길이라고 할까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디지털 신고전학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또는 기대를 하면서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문학은 사실 서구의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서양에서의 인문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 인문학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전래됐는지를 살펴보겠다.

먼저 서양에서 인문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일별해보자. 서양에서 ‘인문학’과 관련된 용어들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로마에서의 ‘후마니타스’ 혹은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 중세의 ‘아르테스 리베랄레스’ 등이 중요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학문의 연구 분류라기보다는 교육 과정에서 과목들의 묶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대학의 인문학은 문사철·외국어 문학이라는 정도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서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문학의 한계에 대한 논의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논의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느 면에서 상당히 오래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

이동철 용인대 교수(중국학과)는 “인문학의 위기는 어느 면에서 상당히 오래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 1959년 영국 스노우의 강연과 그에 바탕을 둔 저서 『두 문화』로부터 기원을 찾는다면 6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라며 “대체로 먼저 쓸모없다는 비판이 앞서고, 설사 쓸모가 없지는 않더라도 무능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우리가 연구하고 교육하는 인문학이 기본적으로 서구 중심의 것이라고 하는 회의의 시선에도 부딪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이동철 용인대 교수(중국학과)는 “인문학의 위기는 어느 면에서 상당히 오래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 1959년 영국 스노우의 강연과 그에 바탕을 둔 저서 『두 문화』로부터 기원을 찾는다면 6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라며 “대체로 먼저 쓸모없다는 비판이 앞서고, 설사 쓸모가 없지는 않더라도 무능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우리가 연구하고 교육하는 인문학이 기본적으로 서구 중심의 것이라고 하는 회의의 시선에도 부딪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1959년 영국 스노우의 강연과 그에 바탕을 둔 저서 『두 문화』로부터 기원을 찾는다면 6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그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 그리고 신 자본주가 횡행하는 체제하에서, 인문학 그 자체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대체로 먼저 쓸모없다는 비판이 앞서고, 설사 쓸모가 없지는 않더라도 무능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우리가 연구하고 교육하는 인문학이 기본적으로 서구 중심의 것이라고 하는 회의의 시선에도 부딪히고 있다. 디지털과 인문학의 관계는 애증 관계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개별 인문학자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디지털 세계를 부정하거나 비판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어느 면에서 누구나 디지털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논문을 컴퓨터로 작성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를 조사하며 메일을 통해서 원고를 보낸다든지하는 행위를 일상적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연구 과정의 일부 내지 상당 부분을 디지털 기술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론적으로 이야기할 때, 온(사이버 세계·가상)과 오프(현실 세계·실재)로 구성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인문학의 세계는 오프에 해당된다고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온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오프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 밑에는 엄청나게 큰 오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연못 위의 연꽃 아래 넓고 깊은 진흙탕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가 디지털적인 성과를 논의할 때는 그 뒤 혹은 아래에 있는 인문학적인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려해야 한다.

지금 디지털과 인문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한국 상황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양자의 관계가 매우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데, 크게 두 가지 맥락이 그 배경에 있다. 첫 번째는 전 세계 공통의 양상으로, 디지털 시대와 관련된 이른바 디지털 전환 이후 디지털 기술의 영향과 거기에 따른 대응이다. 여기서 각국의 인문학은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을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콘텐츠 연구’라는 것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콘텐츠 연구의 전개는 매우 독자적인 맥락이 배경에 있다. 바로 두 번째 맥락인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해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류 문화의 번성과 확산이다. 한류 즉 K-Wave는 K 팝 등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가 해외로 확산되는 현상으로서 다양한 맥락에서 논의할 수 있겠지만, 이 한류 문화의 확산을 마주해 한국의 인문학계도 이를 연구하고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진행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는 전 세계 인문학의 입장에서 위기이자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독특하게 나타난 현상이 바로 이 콘텐츠 개념의 등장과 발전이다. 그리하여 2002년 인문콘텐츠학회가 창립되고 『인문 콘텐츠』라고 하는 학술지가 등장하게 된다.

디지털 인문학은 초기에는 단순히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정리하는 데서 시작된다. 최초의 기원은 1949년 이탈리아의 예수회 신부 로베르트 부사가 IBM의 지원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자료에 대한 색인을 컴퓨터로 편찬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점점 인문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이 모색이 되는 과정에서 디지털 인문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의해야 할 사항은 단순한 도구로서 디지털 인문학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연구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변화했다고 그 도구에 인문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타자기를 쓰다가 컴퓨터 워드프로세스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타자기 인문학에서 컴퓨터 인문학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인문학에서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도구로만 머물지 않는다.

먼저 여기서 디지털 신고전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말하고자 한다. 디지털 신 고전학은 종래의 고전학에 대비해 동아시아의 고전을 새로운 방법론과 새로운 관점에 의해서 접근하되 디지털 시대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디 지털 기술과 성과라든지 또는 디지털 인문학의 도구와 결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고전을 그것이 존재했던 당시의 맥락에서 근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디지털 신고전학을 제청하게 됐을까?

인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인문학의 대상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요컨대 인간의 본성이란 개인적인 측면, 각 문명 속의 존재, 인류로서의 유적(類的) 본질을 지닌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전통시 대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결국 우리가 어떤 개인으로부터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류 로 나아갈 때 바로 인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와 각 문명권 안에서 인간성 혹은 인류성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스 라틴의 세계와 히브리즘이 결합하여 서구문명을 만들었듯이, 동아시아에서도 유도법(儒道法)이라는 선진의 고전과 불교의 세계가 결합하여 동아시아 문명을 형성하였다. 이와 관련해 나 자신은 개인적으로 특히 문명 속의 인간(homo civilis)에 대해서 관심이 높고 이는 현실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국제 질서에서 가장 크게 논의가 되는 이른바 G2라는 것도 정치 체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서구 문명과 중국 문명이라는 근원적인 거대 질서의 갈등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늘날 한국의 인문학이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 중에서 가장 큰 과제가 양자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이 최근에 우연히 보게 된 네이버의 AI 팀을 이끌고 있는 하정우 팀장의 어떤 특강이다.

거기에 의하면 AI에 관련해 한국의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 초거대 언어 모델(LLM)을 미국과 중국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만든 것이 한국의 네이버라고 하는 기업이다. 네이버는 그동안 한국어로 된 많은 콘텐츠들을 훈련시켜서 우리에게 필요하면서 영어권처럼 다른 것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네이버 모델의 향후 지향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른바 디지털 천하삼분지 계라고 표현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것은 많은 나라가 각기 미국의 AI 기술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고 중국의 기술도 무섭지만 각 국가마다 자기의 고유한 정체성 즉 언어와 문화를 살린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에 당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소버 린(Sovereign) AI’ 즉 주권 AI라고 하는것이다. 그랬을 때 미중의 양강이 아닌 제3의 길, 제3의 선택지로서 한국의 AI 관련 기업 네이버일 수도 있고 다른 한국의 기업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존재가 되는 네이버가 나아갈 수 있는 길로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지난해 10월 말 1천억 원대 디지털 트윈의 구축 계약을 체결했고 향후 이를 네이버의 초거대 AI와 연계시키고자 하는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한국의 인문학이 디지털 세계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이 아닌 제3의 길이라고 할까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디지털 신고전학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또는 기대를 하면서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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