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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정책 공동설문조사를 마치고] 실패한 학술정책, 대안 모색하자
[학술정책 공동설문조사를 마치고] 실패한 학술정책, 대안 모색하자
  • 조돈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 승인 2010.09.25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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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위기’ 담론은 이제 식상할 만큼 오랜 기간 동안 논란이 돼 왔다. 하지만 위기 상황을 타개할 만한 특단의 대책은 도입되지 않았다. 인문·사회과학의 위기 상황은 시장에 의해 촉발됐으며, 국가는 일관된 경제주의 관점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시장의 압박을 엄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결과 인문과학의 위기, 사회과학의 위기 상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학술진흥재단을 중심으로 학술연구 지원 사업이 예산을 확대하고 연구과제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더해가며 일정정도 제도화하는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학술단체협의회는 그러한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기초해 학술정책의 발전을 위해 비판과 함께 정책 대안들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하지만 학술정책의 진보는 계속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의 출범과 함께 학술정책의 퇴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이에 학술단체협의회는 산하 학술단체들과 함께 인문·사회과학 위기의 실체를 확인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수행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 첫 번째 사업으로 <교수신문>과 함께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현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문·사회과학은 위기이며 정부의 학술정책은 학문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의지도 역량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학문단장들의 집단사퇴 사태는 연구재단이 인문·사회과학 위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기 해결능력은 고사하고 자정기능조차 지니지 못한 것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가장 중요한데, 아직까지 교과부에서 연구재단을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무조건 조직의 논리를 따르라는 말을 공개적 자리에서 직접 들었다”, “연구재단이 조폭 집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란 전 학문단장들의 증언은 연구재단이 학술연구활동에 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통제기구에 불과하다는 연구자들의 평가를 확인해 줬다.

연구재단에 대한 연구자들 불신 깊어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연구지원 사업을 통해 정부의 학술정책을 집행하는 연구재단을 시장의 암시와 국가권력의 지시에 홀린 선무당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연구자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연구재단은 물론 연구지원 사업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구재단이 시장이나 국가권력보다 공익을 우선시하고, 단기적 성과가 아니라 학문의 장기적 발전 전망에 입각해 학술정책을 수립·집행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연구자들의 몫이다.

향후 일련의 기획칼럼들을 통해 인문·사회과학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바람직한 학술정책 대안들이 논의될 것인바,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연구재단은 학술정책 기획·집행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적 규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다양한 학문적·이념적 관점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지배권을 공유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연구재단은 국가권력의 개입을 차단하고 자율성을 확보하며 학문발전을 통한 공익 봉사에 매진할 수 있고, 학술활동에 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통제기구라는 오해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구지원 개인 단위로 전환돼야

둘째,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대규모 설문조사연구 혹은 비교사회연구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개인 단위로 연구가 수행되기 때문에 내실 있는 연구를 제약하고 자원 낭비를 야기하는 연구지원사업의 대형화를 지양하고 개인과제 지원 중심으로 전환하되 안정적 연구를 위해 연구기간을 장기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비정규직 교수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연구 여건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비정규직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영역이나 연구관심보다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정규직 교수들에 의해 부과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지닌 연구역량을 개발하고 사회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비정규직 교수들이 연구관심과 연구역량을 지닌 주제를 연구해 연구논문을 발표하면 연구재단이 사후적으로 지원하거나 매년 하나의 과제 수행을 전제로 현재 연구재단이 지급하는 수준의 1년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교육·연구 여건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들을 도입해야 한다.

넷째,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다른 학문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학문연구 활동에 대한 지원, 심사, 평가 과정도 학문 특성에 적합한 차별화된 체계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 1년여에 걸친 연구재단 경험은 그러한 우려를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더 늦기 전에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술연구활동 지원을 위한 별도의 기구를 수립하거나 최소한 인문·사회과학 부문을 분리해 예산 및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조돈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필자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는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등이 있다. 현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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