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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하나의 날개로만 날지 않는다
새는 하나의 날개로만 날지 않는다
  • 위행복
  • 승인 2021.10.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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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 ①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대가 학문 분야 간 소통과 협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소통과 협업의 선결요건은 학문의 균형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심각한 소외와 격차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술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기관이나 심의자문기구는 물론이요,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것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실상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스스로의 본령을 지키고 학술연구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기반 확립이 시급하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앞으로 11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연구와 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고자 한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학자들 의견수렴 없는 혁신법
대학재정지원사업에 혁신법 적용하는 게 과연 맞을까

2020년 6월 9일에 공포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하 ‘혁신법’)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 제35호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 항목에 근거를 두었다. 당초부터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와는 무관한 법령이었던 것이다. 과기정통부에 의해 입법 과정이 주도되면서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학자들의 의견수렴이 완전히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흠결이 많기도 했다. 「과학기술기본법」 제3장의 내용을 구체화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혁신법’은 애초부터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에는 적용할 수 없는 한계를 다분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새가 두 개의 날개로 날듯이 학문의 발전을 위해선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그렇기 때문에 학계는 ‘혁신법’ 발표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개정을 요구해 왔다. 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20년 11월 4일에 이미 인문사회 분야의 학장협의회들이 연대해 「학문의 다양성을 해치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그 후에도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2021년 8월 5일, 9월 13일), 인문한국협의회(2021년 8월 5일), 전국대학중점연구소협의회(2021년 8월 10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2021년 9월 2일), 전국대학교 기획처장협의회(2021년 9월 7일) 전국대학부총장협의회(2021년 9월 14일) 등이 연달아 ‘혁신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혁신법’이 올바른 형태로 개정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며, 불필요한 비효율과 갈등만 야기하고 있다.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통합적으로 규율하나

학문 분야 간 ‘협력’과 ‘협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협력’이나 ‘협업’이 일방적 억압 혹은 지배의 논리적 기반이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학문 분야를 통합적으로 규율하는 ‘혁신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기정통부의 주장인데, 설득력이 없다. 협력과 소통이 필요한 사항들은 학자 간 혹은 부처 간 협력과 협업에 의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간 협력이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복수의 규정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은 독선과 독점적 지배를 시도하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가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발전하고, 분야별 수월성 확보가 선행되어야만 협력과 협업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 과제의 관리체계와 제도를 표준화한다는 ‘혁신법’ 제정 취지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절차에 의해 만들어졌고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 과제의 관리에 특화된 내용으로 채워진 법령을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까지 적용하려는 시도는 다른 저의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체계화’, ‘효율화’를 위해 모든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단일한 기준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혁신법’은 대학재정지원사업까지도 그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대학재정지원사업은 교육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해 수행되는 사업이며,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과제를 관리하는 ‘혁신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없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기정통부가 ‘혁신법’으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규율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면, 이는 대학 전반의 교육과 인재양성까지를 과학기술 분야에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혁신법’ 제정과 운영 취지에 내포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 기준을 인문사회예술분야에 적용

과기정통부는 ‘혁신법’을 발효시킨 이후에야 비로소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는데, 연구노트 작성、출판비 지원、연구성과 제출 기한 등등 논란을 일으켰던 굵직한 문제들은 과학기술 분야의 경험과 기준을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에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론연구 중심의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연구노트 작성에 대한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필자는 알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까지를 과학기술 분야의 기준과 방법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무모하다. 

한국연구재단은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되어 설립되었는데, 상이한 분야의 협력과 협업을 통해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성과가 창출되기를 바라는 현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과기정통부가 주무부처로서 한국연구재단을 관리하고 있으며, 과기정통부는 ‘융합’을 ‘혁신법’ 원안 유지의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연구재단 내의 예산 집행을 보면, 인문사회 분야에서 과학기술 분야와의 ‘융합’을 위해 배정한 예산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인문사회 분야와의 ‘융합’을 위해 배정한 예산의 4배를 넘는다. 인문사회 분야의 예산이 과학기술 분야와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영세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과기정통부가 ‘융합’이라는 개념을 간섭과 지배의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다고 공격해도 될 것 같다. ‘혁신법’으로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 예산까지를 규율해야 한다는 과기정통부의 주장이 한국연구재단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다면, 한국연구재단의 구조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우려된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특성과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기반의 조성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없었기 때문에, 교육부가 훈령을 만들어 근근이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해 왔는데, ‘혁신법’ 등장 이후 이 훈령마저 폐기되고 말았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뒷받침할 법령 정비와 제도 수립을 서두르고, ‘혁신법’은 과학기술 분야에만 적용하도록 개정함으로써, 학문의 균형발전을 달성해야 한다. 모든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난다. 날개 하나로만 올바로 날아오를 수 있는 새는 없다. ‘인문사회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이라는 두 날개를 고루 튼튼히 발달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혁신법' 개정이 그 선결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위행복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대표회장(한양대 명예교수·중국문학)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와 한양대에서 재직했고, 대만 정치대학과 중흥대학의 객좌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양대 한국미래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역서로는 『얼해화』, 『4차 산업혁명과 인문적 소프트파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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