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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가자 지구는 불타고 있는가
[글로컬 오디세이] 가자 지구는 불타고 있는가
  • 이동열
  • 승인 2023.12.06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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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이동열 부산외대 아랍학과 강사

지난달 7일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수천 발의 로켓으로 시작된 분쟁은 현재까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최악의 전쟁 중 하나이다.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1964년 팔레스타인 민족의 해방을 위해 설립됐으며, 무장투쟁을 그 수단으로 삼아 이스라엘과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PLO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독립국가 설립을 목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공격을 끊임없이 감행했다. PLO는 1974년 아랍연맹에서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받고 연명 회원 자격을 얻었으며, 같은 해 UN에서 옵저버 지위를 부여받기도 했다. 

하마스는 여성과 아이들을 동원하는 자살 폭탄 테러와 극우적인 정치 성향으로 인해 주류 세력인 PLO를 압도하지는 못했으나, 과격 주의자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1977년 이집트과 이스라엘의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후 무장 투쟁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온건 노선으로 변경하게 된다. 하지만, PL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압제는 계속됐고, 이에 따라 1987년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반 이스라엘 정서의 확산과 PLO의 온건 노선에 대한 의문이 퍼지면서 PLO에 대항할 새로운 세력으로 하마스가 등장하게 된다. 

하마스는 1차 인티파다 당시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무슬림 형제단 산하 단체이다. 이후 하마스는 자살 폭탄 테러 등의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스라엘과 대립해 왔다. 하마스는 여성과 아이들을 동원하는 자살 폭탄 테러와 극우적인 정치 성향으로 인해 주류 세력인 PLO를 압도하지는 못했으나, 과격 주의자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PLO와 이스라엘은 소모적인 분쟁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중재자가 필요했고, 미국이 그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1991년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중동 평화 회담은 큰 진전이 없이 끝났지만, 이후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내는 초석이 됐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PLO와 이스라엘 정부는 서로를 인정하게 됐고, PLO는 서안지구와 가자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또한 1995년 이어진 2차 오슬로 협정을 통해 국경과 영토에 관한 합의를 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종식되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내부의 극단주의 세력을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협정을 이끌어 나가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유대교 근본주의 극우 강경파에 의해 암살됐고, 하마스는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하마스의 테러는 이스라엘에게 “땅과 평화를 교환한다.”라는 전제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1996년 이스라엘에서는 극우파 정치인이자, 오슬로 협정을 반대하는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에 집권하게 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1997년 미국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오슬로 협정의 내용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은 그 자체로 완성된 협정이 아닌, 양국의 평화 수립을 위한 단계적 협정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아랍인 거주 지역에서는 철수했지만,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정착민 보호라는 명목하에 계속적으로 주둔했으며, 새롭게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다시 폭탄 테러를 벌이게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측에 하마스의 테러 활동을 차단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하마스를 통제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2차 인티파다가 발발했고, 하마스는 2차 인티파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늘려나갔다. 

이때 PLO의 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사망하고, 중심을 잃은 PLO가 급격히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PLO의 중심 세력은 세속주의 온건파 정당인 파타당으로 대거 이동하게 된다.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군과 정착촌을 갑자기 철수했다. 

공식적으로는 평화와 타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가자 지구에서의 갑작스러운 철수는 공권력의 공백을 만들어 냈고, 파타당은 이 공백을 메꾸지 못했다. 이 틈을 타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갔고, 2007년 하마스와 파타당은 내전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장악하게 된다. 파타당이 주도하는 서안지구와 하마스가 주도하는 가자지구로 분리된 것이다. 그러나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국민이 모두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지는 않다. 여론조사에서는 하마스를 반대하는 여론이 60%가 넘고 있다. 그러나 파타당의 정치적 역량 부족과 함께 파타당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 때문에 하마스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마스는 이러한 상황과 국제 상황의 변화 속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민간인들이다. 

그 과정은 느렸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평화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를 막은 것은 양측의 극단주의였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적으로만 인식하는 극단주의적 사상은 결국 고립과 공멸이라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이 지켜야 할 국민을 위해서라도 극단주의를 버리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동열 부산외대 아랍학과 강사

부산외대에서 아랍지역학을 전공했다. 부산외대 아랍지역학-ICT 융복합을 중심으로 지중해문명교류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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