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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가자 전쟁, 이스라엘·미국 갈등의 씨앗
[글로컬 오디세이] 가자 전쟁, 이스라엘·미국 갈등의 씨앗
  • 성일광
  • 승인 2024.02.08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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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이스라엘 내각 회의가 극우파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군 수뇌부가 회의를 박차고 나가거나 극우파의 반대로 중요한 회의가 연기되는 등 정책결정에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2월 28일 밤 하마스 소탕 이후 가자 지구 통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시 각료 회의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당일 취소했다.

회의 취소 결정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에 가자 지구 통치권을 이양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거부해 온 극우 연정 파트너들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독실한 시오니즘당'(RZP) 소속의 베짤렐 스모트리치 재무 장관은 자신의 정당이 전시 각료 회의에서 제외되자 반발하며 자체 회의를 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극우 장관들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 한 배경을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 위원회 인선에 반대하면서 또 다시 내각회의가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달 5일 열린 전시 내각 회의에서 진상 조사팀 구성 계획을 발표한 헤르찌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등 군 지도부와 극우 성향의 장관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베짤렐 스모트리치 재무 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이 군 지도부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통에 "시끄럽고 격앙된 말싸움이 벌어졌다"라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0일이 넘은 가운데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 입장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사진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오른쪽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이스라엘 관영방송 칸은 한 참석자를 인용해 회의가 '완전한 난장판'이 됐다고 보도했다. 결국 할레비 참모총장이 인신공격까지 당하고, 몇몇 군 장성들이 분노를 참지 못 하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자 네타냐후 총리가 회의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장관들은 또 가자 지구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조사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극우 장관들이 이스라엘군 수뇌부를 공격한 이유는 진상 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안보 실패를 책임지도록 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안보 실패로 꼽히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해 주요 안보 관리 전원이 공개적으로 사과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아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강경한 극우 장관 탓에 내각 회의가 가자 지구 처리와 관련한 주요 정책 결정을 내리지 못 하자 대미 관계도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0일이 넘은 가운데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온 조 바이든 미국 대 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 입장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상황은 엉망이고 우리는 꼼짝달싹 할 수 없으며 대통령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좌절감은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 대신 이스라엘 정부가 거둔 세금을 PA에 환급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편,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충분히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 등에 따른 것이라고 미 언론 <악시오스>가 전했다.

게다가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 제거 이후 즉 '포스트 하마스'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하지 않고 있으며 PA의 포스트 하마스 역할과 관련한 미국의 계획을 거부하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이 좌절감을 느끼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저강도로 전환하는 것이 지연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요압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8일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소규모 병력을 이용한 특수 작전으로의 전략 변화 방침을 밝혔다. 당시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지난달 말까지 전쟁 국면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미국 측에 알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정부 내에서는 저강도 전쟁 전환 시간표가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갈란트 장관은 지난달 9일 이스라엘 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에게 하마스 지도부를 색출하고 인질을 구출할 때까지 가자 지구 남부 최대 도시 칸 유니스에서 작전을 강화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군사작전 규모를 상당한 수준으로 축소하지 않을 경우 바이든 정부의 대 이스라엘 무기와 외교 지원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악시오스>는 전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간 이런 분명한 입장 차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3일 이후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 있다.

개전초 두 달 간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거의 매일 통화했다.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스라엘 내각이 가자 전쟁 종식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향후 중동 정세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이용하는 세련된 미국의 외교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 국 이스라엘 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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