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 관련해서 동양의 공자, 서양의 키케로를 대표로 소개한다. 이번 제4회 인문대학 심포지엄에서도 공자와 키케로는 자주 언급됐다. 물론 모든 인류가 나이 듦에 접어들며 소멸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다. 공자와 키케로는 나이 듦과 하늘의 뜻과 관련해 좋은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주었다.
키케로에게 노년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위로였다. 강상진 서울대 교수(철학과)는 키케로에게 글쓰기가 일종의 ‘자기 설득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즉, “정치적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키케로가 경험하고 있는 가족적, 사회적 곤경들을 지적으로 소화하며 수행”했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감각적 쾌락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노년이 되어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한테 멸시를 받는다고 투덜댄다. 분명 나이 듦 자체가 존경받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키케로는 “비난받아야 할 것은 나이가 아니라 성격”이라고 반박했다. 키케로는 “노년에 관한 최선의 무기는 학문을 닦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미덕이란 인생의 모든 시기를 통해 그것을 잘 가꾸게 되면 오랜 세월을 산 뒤에 놀라운 결실을 가져다준다”라고 강조했다. 과연 나와 당신도 그럴 수 있을까.
키케로는 나이 듦이 드러내는 결함 4가지를 반박했다. 장문석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는 그 결함들을 “나이 듦은 젊음이 할 수 있던 일을 못하게 하고, 신체를 약하게 하며, 즐거움이 없고, 죽음과 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각의 반박은 강 교수의 설명을 참조했다. 첫째, 활동의 감소는 젊음과 체력이 필요하지 않는 활동을 고려하면 된다. 이러한 활동은 노인에게 열려 있다. 신체의 민첩성이나 기민성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 판단력은 노년에 더욱 어울리는 자질이라는 뜻이다. 특히 노인이라고 기억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키케로는 “나는 또 노인이 보물을 묻어둔 장소를 잊어버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네”라고 지적했다.
둘째, 체력의 저하는 노력 여하에 따라 나이에 맞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누구도 노인에게 젊은 시절의 체력을 요구하지 않으니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으로 반박된다. 셋째, 즐거움의 부재에 대해선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노년에는 감각적 쾌락이 없지만 “이성과 지혜로도 거부할 수 없던 쾌락,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욕망을 품지 않게 해 주는 노년이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라는 것이다. 육체적 쾌락은 감소하겠으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쾌락은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원하고 노력한다면 말이다.
넷째, 죽음은 자연의 순리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인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임박한 죽음이다. 강 교수는 키케로를 인용하며 “그토록 오래 살아오면서도 죽음은 경멸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죽음이 만일 영혼을 완전히 절멸하는 것은 아니라면 무시되어야 마땅하고, 죽음이 만일 영혼이 영원히 살 어떤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반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죽음이 자연과의 조화라는 다음의 설명은 귀담아들을 만한다. “젊은이에게 죽음은 자연에 반하는 폭력적인 구석이 있지만 노인에게는 때에 맞는 완숙(maturitas)이 목숨을 앗아간다.” 키케로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은 로마사의 위인들을 언급하며 죽음은 불멸이 될 수 있다고 간주했다.
키케로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노년에 대하여’ 마주하는 자세를 글쓰기로 승화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세계사로 볼 때, 유교는 공자님도 제사하며,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성립된 세계종교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이전부터 전해지던 신앙인 始原유교의 天(하늘,하느님)숭배, 여러 神明숭배를 계승하시면서, 인간이 행해야 할 禮와 道를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가르치신 스승(先師,至聖先師)이시자, 성인임금(文宣帝,文宣王)으로 추증되신 성인이십니다. 그래서 유학은 聖學이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