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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의 역사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의 역사
  • 김병희
  • 승인 2023.06.22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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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24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일까?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먹고 사는 문제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인간의 기원이나 소멸의 문제를 차분하게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과학자도 우주에서 관측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개발에 주력한 나머지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깊이 천착할 겨를이 없었다.

철학자들이 우주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과학 이론의 진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1980년대의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의 본질과 시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 출간됐다.

삼성이데아의 『시간의 역사』 광고 (한겨레, 1988. 9. 8.)

삼성이데아의 『시간의 역사』 광고를 보자(한겨레, 1988. 9. 8.). “세계의 권위지 극찬·베스트셀러 연속 1위!”라는 오버 헤드라인 아래에 보통의 책 광고처럼 『시간(時間)의 역사(歷史)』라는 책 제목을 크게 부각시켰다. “A BRIEF HISTORY OF TIME: FROM THE BIG BANG TO BLACK HOLES”라는 원서 제목도 우주 궤도 모양의 디자인에 배치했다.

이어서 “한국어판 발간 5일 만에 재판 발행”이란 정보를 사각형 도장 같은 네모 속에 제시해서 이 책의 인기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시간과 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인간이 알고자 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가?”, “만약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어떤 선택 의사를 가졌을까?”,

“우주에 종말이 올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검은 구멍(블랙홀)을 통하여 우리가 은하계를 방문하거나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왜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가?”, “우주는 어떻게, 어떤 원인으로 시작되었을까?” 이런 질문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책 내용을 설명하는 본격적인 보디카피는 이렇게 썼다.

“뉴턴, 아인슈타인을 잇는 우리 시대 최고의 물리학자, 우주와 신의 비밀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스티븐 호킹이 매혹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우주와 시간의 역사! <타임>, <뉴스위크>를 비롯한 전 세계의 권위 있는 매스컴이 격찬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저술! 베스트 셀러 연속 1위! 20여 년간 모든 역경에 굴하지 않고 우주가 창조되는 미지의 순간에 대한 탐구의 깊이를 더해 온 스티븐 호킹의 경이로운 지성!” 서울대 천문학과의 현정준 교수가 번역했고, 책값은 3,800원이었다.

광고의 오른쪽 하단에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진을 배치했다. 원서는 200여 쪽에 불과했지만, 한글 번역서는 국판 296쪽이었다. 책에서는 우주와 물질부터 시간과 공간의 역사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을 대중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간명하게 전달했다.

이 책은 1988년 4월에 미국에서, 그리고 6월에는 영국에서 출판된 이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고, 1,000만 부 이상 팔린 20세기의 전설적 고전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1980)의 판매 기록도 넘어섰고, 영국 <선데이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237주 동안 이름을 올렸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도 휠체어를 탄 박사님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21세부터 루게릭병을 앓기 시작해 5년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55년을 더 살면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이용해 폭발하는 블랙홀에 관한 이론을 정립했다. 시공간의 특이성과 우주 생성에 관한 연구에 매진한 그는 『시간의 역사』, 『위대한 설계』, 『호두껍질 속의 우주』 같은 저서를 출간했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시간의 역사』 초판의 표지 (1988)

이 책은 우리의 우주상, 시간과 공간, 팽창하는 우주, 불확정성 원리, 소립자와 자연의 힘들, 블랙홀,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우주의 기원과 운명, 시간의 화살, 벌레구멍(웜홀)과 시간여행, 물리학의 통일 같은 순서로 구성돼있다. 물리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우주나 블랙홀 같은 개념은 어려운 주제였지만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구매자의 2%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따라서 이 책은 인류의 기원과 우주의 생성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던 사람들에게 시간과 우주의 본질은 물론 우주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성찰하며 관심을 가져보라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책의 내용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호킹의 명료하고 재치 있는 서술에도 불구하고 과학도가 아닌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1988년 시절의 나 역시 주로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었기에, 현대 과학의 두 기둥인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해 이 책에서 소개한 전문 지식을 완전히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끝까지 읽었다. 모든 책이 다 재미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책에도 격(格)이란 게 있을 테니까. 시간이 흘러 곽영직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읽기』(2021)라는 책을 읽고 나서야, 우주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꼈다. 34년 만에 책의 내용을 이해한 셈인데, 그것은 내가 겪은 시간의 역사였다. 시간의 역사란 이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운명 같은 것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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