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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살’ 저출산…인류세 문명 전환의 기회로
‘사회적 자살’ 저출산…인류세 문명 전환의 기회로
  • 김기봉
  • 승인 2023.11.0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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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③ 저출산

과거의 산아제한 정책의 업보가 현재 저출산의 인과를 
낳는 것처럼 미래에도 여러 ‘블랙 스완’이 출현할 전망이다.
저출산은 인류사의 보편적 방향이지만, 한국은 너무나 빨리 
진행되기에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류 전체 인구가 2022년 11월에 80억 명을 돌파했다. 유엔 인구 보고서에 따르면 2037년에는 90억 명을 넘어서고 계속 증가세를 이어가다가, 세계 경제가 지난 50년간의 흐름을 계속 이어간다는 전제로 2050년에는 86억 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포유류에 속하는 현생 인류는 가장 번성한 종은 아니지만,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다. 지구에서 인류 종의 성공을 보여주는 지표가 무엇보다도 인구의 변동이다. 농업혁명이 일어나는 기원전 1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240만 명의 인류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로마와 마야문명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기원후 1년경에는 78배가 늘어난 1억8천800만 명 정도가 살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1500년대 세계 인구는 약 5억 명이었다. 천오백 년 동안 약 3배 조금 안 되게 증가했다. 그런 완만한 인구증가가 급상승한 것은 농업혁명 이후 문명의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을 통해서다. 산업혁명의 효과가 나타난 19세기 초 세계 인구는 기원전 1만 년 전보다 400배가 증가해서 10억 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급격한 인구증가는 생물학적으로는 거대한 성공이지만, 문명사적으로는 심각한 위기로 인식됐다. 역사에서 문제는 인구라는 사실을 통찰해서 인구학의 아버지가 된 사람이 맬서스(1766∼1834)다. 1798년 그는 사람들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식량 공급의 증가율은 자원(토지)의 제약 때문에 점차 감소하는 반면, 인구는 도덕적 통제가 없는 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가정에 근거해서, 인류는 영원히 ‘빈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빈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

생활 수준(소득)이 높아지면 출산율도 높아지고 사망률은 감소한다. 하지만 그 현상이 지속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인구가 증가하면 생활 수준(일 인당 소득)이 원래 수준으로 다시 낮아질 수밖에 없는 ‘임금철칙(Iron Law of Wage)’이 역사의 톱니바퀴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기술혁신을 통해 산술급수로 식량 생산을 증대시켜서 역사의 톱니바퀴를 조금씩은 개량할 수 있었지만, 결국엔 인구증가로 인해 ‘빈곤의 덫’에 걸릴 수밖에 없기에 인류는 오랫동안 ‘맬서스의 시대(Malthusian epoch)’를 살아야 했다. 

맬서스는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혁신이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을 낳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역사의 밑바닥에서 작동하는 변화의 톱니바퀴를 통찰했다. 하지만 맬서스가 인구증가와 식량 생산의 불균형을 ‘역사의 법칙’으로 알아낸 시점에 아이러니하게도 ‘맬서스 시대’의 종식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빈곤의 덫에서 탈출해 지속 성장의 시대로 전환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일으킴으로써, 지난 300년 동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인구증가가 이어졌다. 농업혁명을 기점으로 세계 인구가 10억 명에 도달하기까지 대략 1만2천 년이 걸렸다면, 그 이후부터는 인구가 10억 명씩 느는 시간은 계속 단축됐다. 20억이 되는 데 130년(1930년), 30억은 30년(1959년), 40억은 15년(1974년), 50억은 13년(1987년), 60억은 12년(1999년), 70억은 12년(2011년), 그리고 2022년 11월에 마침내 80억을 넘어섰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 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 한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합계출산율 0.7명 대도 무너질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진=픽사베이

 

생물학적 진화 대 문화적 진화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지속 성장의 상전이를 일으킨 원동력은 산업혁명 과정의 기술 진화였다. 기술이 발달하고 혁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은 그런 산업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점점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했다. 부모가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문화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은 낮아지는 경향성이 생겨났다. 모든 생명체의 지상명령은 왕성한 번식으로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인데, 근대의 인간은 피임과 낙태를 통해 출산을 억제하는 반(反)자연적인 문명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이 같은 반자연적 문명을 통해 ‘이기적 유전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진화의 욕구를 억압하는 문화적 진화의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현명했다. 

인류세에 산업혁명 이래의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고, 이제는 지구에서 인류의 존속 자체가 위협을 받는 6번째 대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가 ‘인간 없는 지구’가 생태계를 위해선 다행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인간이 지질학적 행위자가 된 인류세에 우리가 지구생활자로서 삶을 계속 영위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세계 인구부터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제2의 물결로의 전환과 그리고 최근 제3의 물결로의 진입을 가장 압축적이며 성공적으로 이룩한 국가다. 21세기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돼 근대국가를 수립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 이중 혁명을 가장 성공적으로 성취한 나라다. 근대로의 이행에 지각해서 일본인들에게 거의 40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가 이젠 일본을 따라잡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한국의 성공에 대해 세계인들은 놀라워하며 어떻게 그런 기적이 가능했는지를 배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의 성공만큼 지금의 한국인들이 행복한가이다. 

 

한국인의 불행 보여주는 자살률·합계 출산율

한국인의 불행 정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자살률과 합계 출산율이다. 한국은 지난 20년 중에 단 두 해를 제외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자살 공화국이다. 하루에 36명, 매년 1만3000명 이상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산율이 낮은 것도 독보적인 세계 1위로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낮은 기록을 매년 경신한다. 올해에는 0.7명 유지도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아서 자살로 떠나고, 여기서 사는 게 힘들고 무의미하다고 여기기에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한국이란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의 초저출산은 1960년부터 시작해서 1980년대까지 국가 주도로 시행한 산아제한 정책의 업보다. 그때는 출산율이 너무 높아서 한반도가 만원이란 걱정을 태산처럼 했지만, 반세기 만에 정반대로 저출산으로 국가의 존립이 위험하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세계 인구 총량은 줄어야 하지만, 한국의 인구는 늘어야 한다. 

흔히 인구는 추정이 가능한 ‘정해진 미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미래는 불확정적이다. 과거의 산아제한 정책의 업보가 현재 저출산의 인과를 낳는 것처럼 미래에도 여러 ‘블랙 스완’이 출현할 전망이다. 저출산은 인류사의 보편적 방향이지만, 한국은 너무나 빨리 진행되기에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가는 선진국이 됐지만, 사회는 ‘헬조선’이기에 개인은 불행하다는 의식이 자살과 더불어 ‘사회적 자살’로서 저출산 현상을 심화시켰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가 정말로 ‘헬조선’인가? 한국의 성공에 대해 세계인들은 놀라워하며 어떻게 그런 기적이 가능했는지를 배우고 싶어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광화문 근처 그리고 홍대 입구에서는 한류에 매료돼 찾아온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고 대학에도 적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있다. 같은 세상을 천당과 지옥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마음이다. 

어쩌다 한국인의 마음이 외국인들이 동경하는 나라인 한국을 ‘헬조선’으로 보게 했는가? 인간 삶의 가치로서 가장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자유다. 자유란 ‘자기 이유'(自己 理由)’라고 말하듯이, 우주의 먼지로 생겨난 우리가 다시 먼지가 되어 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하는 ‘자기 이유’는 무엇이고, 그런 자기의 분신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의미는 무엇인지? 한국의 저출산은 국가적 위기지만 지구생활자로서 인간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걸려 있는 인류세에 문명 전환의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겐 ‘자기 이유’를 참구하는 화두가 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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