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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아노미 상태의 중동, 이제 우리가 국제 사회의 책무를 다할 때
[글로컬 오디세이] 아노미 상태의 중동, 이제 우리가 국제 사회의 책무를 다할 때
  • 윤용수
  • 승인 2024.03.13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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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원장

중동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지만 그 명암이 너무나도 짙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지역의 산유국들은 제각각 ‘비전 2030’을 설정하고 석유나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화석 연료 자원 국가가 아닌 4차 산업 국가로의 국가 개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석유 수출 중심의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금융·관광·스포츠·항공·게임 등 4차 산업 중심의 선진국 모델로 국가를 개조하려 하고 있고, 여성의 인권 보장·교육 기회와 사회 참여 확대 등 전근대적인 제도의 타파를 통해 보편 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열사의 나라에서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고 축구 후진국에서 월드컵과 아시안 축구 경기를 잇달아 개최하며 아시안 축구 경기에서는 상위권을 중동 국가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메가 이벤트로 불리는 엑스포도 곧 중동에서 개최된다.
역사적으로 큰 힘과 패권을 가진 국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예외 없이 모두 거대한 건축물을 지어 그 힘을 과시했었다.

2030년을 목표로 건설 중인 더 라인(The Line)이 완공된다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 역작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중동의 일부 국가들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인근의 또 다른 중동 국가는 경제난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과 국가 부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사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집트는 국가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다. 밀 수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진=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밀 수입이 힘들어지자 이집트는 국가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고, IMF의 원조로 국가 경제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리비아는 2개의 정부가 양립하고 있고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끝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중동의 최강대국이었던 이라크는 미국과의 전쟁 후 아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 전쟁은 가자 지역의 팔레스타인 소멸이라는 이스라엘 원래의 목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4개월에 걸친 전쟁의 결과로 가자는 회복 불능의 도시가 됐다는 보도가 있고, 전쟁이 끝나도 국제 사회의 원조없이는 가자의 재건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점도 암울한 현실이다. 

올해 1월 통계로 양측의 사망자는 3만 명(팔레스타인 2만9천 명, 이스라엘 1천200 명)을 넘었고 팔레스타인 희생자 중 75%는 어린이·여성·노인을 포함한 전쟁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 특공대가 병원에서 치료 중인 하마스 대원을 기습해 사살했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더 많은 테러범들을 소탕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들에게 제네바협약은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 같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나 진배없다. 여기에 더해 예멘의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을 돕고 이스라엘에 제재를 가한다는 명분으로 수에즈 운하를 포함한 홍해와 페르시아 만의 주요 물목들을 장악하려 하고 있어 국제 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중동의 주요 분쟁들을 두고 각국의 주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중동 국가들이 중동 지역의 각종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아랍 국가들은 1945년에 아랍연맹을 결성하고 국제 사회에서 아랍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노력하기로 했지만 이미 그 선언은 빛을 잃었다.

아랍민족주의라는 대의는 자국의 이익 앞에 퇴색됐고, 아랍연맹의 국가들 중 전체 회원국의 의견을 모으고 중재할 리더쉽을 가진 국가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리더쉽의 부재는 이슬람으로 위장한 각종 테러 집단들의 기생에 자양분을 제공한 결과가 됐다.

가자 전쟁의 난민들이 남쪽으로 몰리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는 난민들 수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자국 내 국가 소요 사태와 불안정을 우려해 아랍 형제 국가로서의 지원을 외면하고 국경을 봉쇄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아랍의 빛과 그림자가 너무 극명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낙타의 눈처럼 예쁜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부녀자와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왜 일부 정치인과 정치 단체들의 개인적 야심과 욕망에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그 책임을 무엇으로 어떻게 다할 것인지 전 세계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당부가 있다. 중동 국가들이 비추는 빛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수천억 원·수조 원에 달하는 사업을 수주했다는 소식들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빛의 반대편에 있는 그림자에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스스로 글로벌 중추 국가라 외칠 것이 아니라 국격과 국가 위상에 맞는 국제 사회의 책무를 다할 때 국제 사회가 대한민국을 글로벌 중추 국가로 인정하고 존경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원장

한국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아랍어 사회언어학이고 한국이슬람학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지중해문명교류사전』(공저, 2020), 『지중해문명교류학』(공저,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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