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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야기한 '피'의 유일신 사상···이면에 좌절된 근원적 욕구
'문명의 충돌' 야기한 '피'의 유일신 사상···이면에 좌절된 근원적 욕구
  • 최승우
  • 승인 2024.03.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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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㉜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과학기술·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17일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가 「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3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현대 과학적 자연·생명·우주관」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신’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오용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신’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 소련 해체로 40년 이상 유지되던 동서 냉전 대결 체계가 붕괴되자 문명비평가들은 공산주의-집단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냉전 이후 세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세계 체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이런 낙관주의를 대변했다. 후쿠야마는 헤겔적 의미에서 세계가 '역사의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후쿠야마의 낙관론을 상대화하는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이 등장했다.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이 해체된 이후 공산주의 블록에 속한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한때는 공산주의적 억압 체제에 의해서 억제된 것처럼 보였던 민족주의적 갈등이 터졌다. 소련·유고슬라비아 해체 등으로 동유럽과 발칸반도에는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른 나라들이 19세기형 민족국가 건국 열정에 사로잡혀 갈등하고 투쟁했다. 헌팅턴은 이런 사태를 목격한 후, 냉전 체제 대결을 대신할 문화적 정체성 갈등, 혹은 문명들의 충돌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는 “가장 성스러운 경전들에서 발견되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자주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런 고매한 경전들이 그 경전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타자 증오를 교시하고 타자 멸절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며 “고등종교의 경전도 왜곡과 과잉 해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갈등들은 실제로는 세속적인 동기들과 이유들, 대의명분들을 보유하고 있는 갈등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 경전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는 “가장 성스러운 경전들에서 발견되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자주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런 고매한 경전들이 그 경전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타자 증오를 교시하고 타자 멸절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며 “고등종교의 경전도 왜곡과 과잉 해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갈등들은 실제로는 세속적인 동기들과 이유들, 대의명분들을 보유하고 있는 갈등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 경전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더 나아가 그는 문화적 정체성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때 종교가 핵심적 역할을 떠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알카에다의 9·11 테러 공격이야말로 헌팅턴의 가설을 결정적으로 입증한 것처럼 보였다. 헌팅턴 자신도 9·11 테러 공격이야말로 자신의 문명 충돌 가설을 입증해 줬다고 주장하며 「무슬림 전쟁들의 시대」라는 글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위험하고 폐쇄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특정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문화 자산으로 토착화된 종교는 개인과 국가 공동체 전체에게 궁극적 충성 대상을 제시하고 교도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이런 종교 중 일부는 그것 자체를 보양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 그 통치권을 팽창하려는 개종주의적 열정을 방출하기도 한다. 종교는 개인과 특정 집단에게 선민의식적 소명을 고취함으로써 이런 강경한 타자 지배 의지를 장려하는 면이 있다. 민족문화 자산으로 격상된 이런 종교는 이성의 비판 아래 부단히 자기 검열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고 폐쇄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기 쉽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윤리학』에서 설파했듯이, 이런 종교를 관장하는 집단은 선악 판단 권력을 독점해 신이 된 것처럼 행사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속적 시온주의자들이나 느슨한 의미의 종교적 시온주의자들의 “아브라함 언약” 동원은 종교적 동기 천명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전략적 수사법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오래 거주했던 아랍인들의 축출이나 주변화를 전제로 이스라엘을 세우려던 모든 시온주의자들은 이런 아브라함 종교의 본질을 배반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세속적인 열정과 수단에 투신된 세속적 시온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셀렌굿은 현대 시온주의와 그것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한 유대인들의 세속적 동기·수단, 그리고 비전을 무시한다. 그 이스라엘 건국 조상들은 그들 자신의 국가에서만 유대인들이 반(反)유대주의 박해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나라를 세웠다. 

시온주의자들의 건국 운동에 있는 이런 세속적 차원을 무시하는 셀렌굿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고 그것을 되찾으려고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초보적 민족주의 감정을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슬람 종교 대의명분에 초점을 맞춘다. “성지 지역은 이슬람 이해에 따르면 이슬람 땅이다. 이 땅과 성지는 비(非)무슬림에게 결코 양도될 수 없는 확장된 다르 알-이슬람의 일부이다.” 그래서 셀렌굿은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적대감이 주로 이슬람 교리에서 비롯됐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고대 근동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종교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는다. 폭력적인 성전(聖戰)을 지지하는 극단주의 집단이 여전히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슬람 국가들이나 근본주의 집단의 주장을 종교의 이름으로 희석화하거나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는 대중적 수준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정체성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람 교도의 폭력이 이슬람교에서 추동된 폭력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 강요한 폭력 호소일 수가 있다.

이슬람교가 본질적으로 더욱 폭력적인가

이슬람 교도들이 종교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서구에 대해 저항하고 대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슬람 교도들이 폭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서 훨씬 더 빈번하게 폭력성이 드러났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이슬람교가 본질적으로 다른 종교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슬람 교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적대감의 근본 원인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하마스의 저항과 투쟁이 종교적 수사를 동원한다고 그들의 투쟁이 종교적 투쟁인가? 그들이 아무리 자주 종교적 레토릭을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는 그 종교적 수사 너머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 위기·인간 존엄·보호 열망·보금자리 열망·향수 등 인간의 근원적 욕구가 좌절되는 현실을 봐야 하지 않을까.

1930년대부터 1948년(건국 후 얼마 동안)까지 이스라엘 건국에 투신한 거의 테러리스트 집단 같은 이스라엘 민병대들이 종교적 수사를 구사했다고 해서 그들이 '종교적'인 동기와 대의명분으로 영국과 아랍인들과 투쟁한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장 성스러운 경전들에서 발견되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자주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런 고매한 경전들이 그 경전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타자 증오를 교시하고 타자 멸절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거룩한 경전들일지라도 역사적 상황이 변하면 부단히 재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고등종교의 경전도 왜곡과 과잉 해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갈등들은 실제로는 세속적인 동기들과 이유들, 대의명분들을 보유하고 있는 갈등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 경전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세속적 현실 정치적 좌절감·분노, 그리고 생존 위기감을 표출하고자 하면서도, 사람들은 같은 종교의 신도들로부터 더 넓은 지지를 받기 위해 얼마든지 종교적인 대의명분을 주창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해에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까?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의 논지는 세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냉전 이후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이 국가 간·문명 간,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둘째, 미래의 전쟁은 국가 간이 아니라 문화 간 전쟁이 될 것이다. 경제적 요인보다는 문화적 요인이 갈등의 축을 구성한다. 셋째, 문명 충돌을 일으키는 문화의 정수, 핵은 종교다. 헌팅턴은 1993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문명의 충돌?」이라는 글의 말미에서 자신의 논문 의도가 “문명 간 충돌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9·11 사태는 서구 확장에 대한 위기감 표출

9·11 사태는 세계적인 조직을 갖춘 테러 단체 알카에다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것은 전문 지식과 숙련도 면에서 있어서 40여 개 국가에 동시에 테러를 수행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고됐다.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은 9·11을 전후해 전 세계 무슬림에게 미국을 향해 지하드를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2001년 9·11 알카에다 테러 공격은 21세기 종교 갈등의 예표적 사건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9·11 테러는 19~20세기에 서구가 이슬람 문명권에 가한 다차원적인 공격에 대한 일괄 정산식 반격이었지 21세기에 시작된 종교 갈등은 아니다. 

그 갈등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내내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서구의 문화적·경제적·정치적·군사적 침략 확장에 대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대응이었다. 9·11 테러가 초래한 손실의 규모와 정도를 보면 많은 무슬림들이 서구 문명에 대해 품고 있는 증오·분개·원통함·적의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20세기 동안 무슬림에 대한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과 지배·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정책, 특히 세계 문제를 농단하는 미국의 오만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미국 공격을 감행하게 하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어떤 점에서 종교 갈등인지, 어떤 점에서 종교 갈등이 아닌지를 따져 봐야 한다. 특히 종교 갈등처럼 보이는 갈등 안에 보편적인 인간 존엄 투쟁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갈등은 힘과 세력·자기 보호 수단과 능력이 어느 정도 대등한 당사자들의 충돌을 의미하지만 어떤 갈등은 일방과 타방에 대한 침략이요 인간 존엄 파괴일 때가 많다. 외견상으로 종교적 갈등처럼 보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그 본질이 종교 갈등으로 축소될 수 없다.

현 이스라엘 총리인 벤자민 네타냐후와 그를 지지하는 강경한 정통 유대교도들과 미국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 모두 이 갈등과 분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종교적 수사를 자주 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시온주의자들의 지지와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을 위한 수사적 연막작전의 일환이다. 

요약하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갈등은 이질적인 문명권에 속한 국가 대(對) 국가의 대칭적인 갈등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질적 문명국가와 이질적 문명권을 대표하는 테러 집단의 비대칭적인 갈등이다. 1930~1948년까지 전투적인 시온주의자들의 준(準) 군사 조직이 아랍권 국가들과 영국에 대해서 테러 활동을 감행할 때 종교적 수사를 동원했던 것처럼, 후자는 전자보다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종교적인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하마스의 종교적 수사 동원은 더 넓은 범위에서 지지와 연대·후원과 방조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하마스는 종교적 레토릭을 더 자주 동원하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압제하는 공세적 입장에 선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도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역사 영유권과 땅 점유권을 정치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아브라함·다윗 등 종교적 선조들을 거명한다.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를 답습한 태극기 부대

2017년부터 광화문 광장을 자주 점령하는 태극기 시위 부대 중 상당수가 태극기·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나왔다. 이들은 미국의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이나 보수 복음주의 연합 단체인 ‘기독교 연합’에 동조하는 한국 교회 일각에서 전파한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형성돼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를 거쳐 현대까지 전달된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 문명권의 편견을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이런 견해는 단견이다. 우리는 하마스의 종교적 수사가 가리키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먼 핀켈슈타인과 일란 파페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두 사람 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의 본질을 종교 갈등이라고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 둘 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로 나라·보금자리·고향·가족·인간 존엄, 인권을 박탈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양측의 갈등을 바라본다. 

헌팅턴의 지적처럼 미국의 대(對) 이스라엘 정책 변경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의 활동을 진정시킬 것이다. 엘리자베스 A. 존슨이 지적한 것처럼, “종교는 순백(純白)의 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종교 그룹은 신을 이방인들에게는 적대적인, 자기 종족만의 신으로 삼으려는 유혹에 넘어가며 이는 돌발적인 폭력을 불러온다.” 그래서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신’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오용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신’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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