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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이 놓친 ‘차별의 구조’…어떻게 넘을까
주류 경제학이 놓친 ‘차별의 구조’…어떻게 넘을까
  • 김수아
  • 승인 2023.07.13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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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가부장 자본주의』 폴린 그로장 지음 | 배세진 옮김 | 민음사 | 276쪽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 정당화하는 젠더 규범
새로운 상상력으로 젠더 차별 해체해야 모두 해방

이 책은 경제학적 분석으로 성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성 불평등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젠더 규범이 여성의 경제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호주 사례에서의 각종 통계를 해석하면서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은 서문에서 자체적 한계로 언급했듯이, 중산층 백인 중심인 인종적·계급적 편향을 보이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호주의 원주민에 대한 논의나 이주 노동자의 문제가 통계를 만드는 제도적 맥락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차별의 역사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들 때문에 이 책은 결론에서 젠더 동역학이 계급 동역학과 결합하게 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설명하는 현실은 한국의 독자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 원인은 사실상 허구적인 젠더 문화와 규범이 자연화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결론 그 자체는 여러 논의에서 제시되어 왔다. 또한, 젠더 규범이나 정체성과 같은 개념은 관련 논의에 비교해 본다면 다소 단순하게 활용된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책이 주류 경제학의 맥락 속에서 집필되었지만 주류 경제학이 누락해 왔던 사회 구조와 차별의 문제를 다양한 경제학 외부의 학문 자료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호주의 맥락에서 다양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인구학적 불균형이 만들어낸 현상, 즉 남성이 많은 경우 여성이 결혼을 더 많이 하고 일을 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 결혼 시장의 불균형이 해소된 지금에도 유지된다는 점, 그리고 그런 현상은 ‘여성이 노동이나 공적 업무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구시대적 젠더 규범을 통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사냥에 참여하는 여성에 대한 인류학적 근거가 발견되어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수렵은 남성의 일이라는 잘못된 성별 고정관념과 이분법에 있다는 점 등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해석해 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얼핏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가령, 여성 노동에 대한 남성의 고정관념은, 주변 남성들이 여성 노동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야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주변의 긍정적 사례가 쌓여가면서 개인이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물론 필터 버블과 확증 편향의 시대, 자신과 같은 의견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기 쉬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그런 사실을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은 ‘가부장 자본주의’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 수준에서 강조한다. 제시한 대안이 다소 낙관적으로 보이는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성차별과 다양성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성폭력 문제와 기업 내 위계질서의 문제를 공개하도록 해야 하고, 이러한 기업에 인재들이 지원하게 될 것이므로 기업은 점차로 변화해 갈 것이라는 예측이 그러하다. 아마도 이러한 예측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변화를 위한 수단이 작동하게 되려면, 이 책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층적으로 다양성 담론과 정책에 개입하고 관여하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가 페미니스트가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에 논박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와 해석을 제공한다. 실제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험해 온 여러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성차별을 해석하는 방법론과 성차별 사례를 확인하는 데 있어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현재의 젠더 불평등과 차별을 해석하는 데 이미 젠더 규범이 결합돼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 상상력을 여성과 남성 모두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자는 것이 저자가 건네는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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