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2:10 (토)
여성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존재일까
여성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존재일까
  • 김수아
  • 승인 2023.09.15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비틀어보기_『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 케이트 맨 지음 |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528쪽

가부장제 관계 유지에 기여하는 성차별주의
처벌·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여성혐오

저자 케이트 맨 미국 코넬대 교수(철학과)는 분석철학 분야에서 여성혐오 개념을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여성혐오’와 관련된 토론에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구분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맥락 속에서 여성혐오의 핵심 주장을 분석한다. 

이 책은 여성혐오를 감정적·개인적 차원으로 보는 방식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현상으로 개념화 한다. 여성혐오는 가부장제가 지정하는 위치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처벌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 여성혐오를 단순히 특정 남성 개인의 심리적 차원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케이트 맨 교수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개념을 다듬어가면서 여성혐오를 기존의 단순한 이해, 즉 심리적 문제로 개념화해 온 순진한 이해에 도전한다. 그는 여성혐오를 성차별주의와 구분한다. 성차별주의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추측, 고정관념 등을 통해 작동하면서 가부장제 사회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반면, 여성혐오는 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처벌하고, 여성이 가부장제에 의해 가정된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저자는 임신 중지와 관련한 담론 분석을 통해 ‘어머니’를 사랑하면서 여성을 지워버리는 문제를 논증한다. 아울러, 가정 폭력 문제와 가족 살해범의 사례 등으로 여성혐오의 논리를 분석한다. 그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애정이나 돌봄, 재생산 노동 등을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반면, 남성은 사회적 명망과 부, 지위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의 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여성이 제공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요구하거나, 남성의 것을 탐낼 때는 문제적 대상이 된다. 거꾸로 남성은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을 당연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적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여성이 처한 상황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하는 자로 규정된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적 현실이라는 진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지적한 중요한 정치적 현상이 바로 남성을 보호하기 위한 동정의 구조이다. 특히 남성 가해자에 대한 동정적 시선은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 의한 것이다. 여성혐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적대뿐 아니라 남성에 대한 면벌, 그리고 긍정적 태도의 문제 역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양면적 구조가 작동하는 다양한 젠더 기반 폭력 사건 사례가 제시된다. 피해자가 의심받는 상황 역시 바로 여성을 남성의 자원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비난과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혐오의 문제에 근간을 둔 것이다. 저자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여성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비난에 노출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도덕적 삶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의 저자인 케이트 맨 미국 코넬대 교수(철학과)이다. 사진=katemanne.net

이 책은 가부장제 체계를 여성-남성의 이분법 체계로 이해한다. 이에 저자도 서론에서 트랜스혐오를 다루지 못하는 문제를 한계로 언급하고 있다. 한 명의 저자가 모든 것을 다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저자도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혐오의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혐오의 개념화 과정에서 트랜스혐오를 논의 틀에서 제외하는 것은 여성의 범주에 대한 백인 중심-시스젠더(태어날 때 성을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확립한 사람)를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다수의 젠더 기반 폭력 분석에서도 인종적 차원의 문제가 결합된 부분을 정교하게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게 된다. 이 문제는 가부장제 체계에 대한 논의가 다소 단순화됐기에 발생한다. 

이 책의 주장을 기반으로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여성혐오 현상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제기하는 주장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우리 맥락을 고려하는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