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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 논리의 ‘무대포’…‘기초학문’ 붕괴한다
자유시장 논리의 ‘무대포’…‘기초학문’ 붕괴한다
  • 김기봉
  • 승인 2024.02.06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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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의 리틀 빅히스토리 ④ 무전공 선발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이 인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대학 내 인문학과 교양교육의 입지를 
약화하는 것은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도 버리는 우를 범하는 조처다.

새해 ‘무전공’이란 유령이 대학을 휩쓸고 있다.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과 거점국립대에 대학 재정지원을 무기로 내년부터는 무전공 선발을 할 것을 압박했고, 그에 대항해서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는 지난달 24일 서울대 인문대에서 모여 전국 인문대학장의 입장’을 발표했다. 

전국 인문대학장들은 무전공 입학 확대는 기초학문 붕괴로 이어진다는 우려와 함께,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구실로 대학 운영에 개입하지 말고 모집 단위를 비롯한 학사 제도의 수립과 운영을 대학의 자율에 맡길 것을 촉구했다. 지금도 이른바 인기 학과는 복수전공 등을 통해 지나치게 많은 학생이 몰려와 교육여건이 열악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무전공 모집제도까지 도입하면 학생들은 적성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기보다는 소수 인기 학과에 몰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교육부는 2025년 대입에선 일정 비율 이상의 학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해야 국립대학 육성과 대학혁신 지원사업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의무조항을 철회하고, 대신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도록 장려하는 대학을 기준으로 지원 대학을 선정한다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무전공 입학이 나오기 전 이미 대학은 자유전공학부 또는 자율전공학부 설치를 위한 구조조정으로 진통을 겪고 있었다. 

자유·자율전공학부가 전공의 벽을 허무는 개혁 개방을 위한 ‘특구’ 설치 수준이라면, 무전공 선발은 사회적 수요와 공급의 자유시장 논리로 특정 학과와 전공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전면 개방을 지향한다. 물론 교육부는 5∼25% 이상을 무전공 선발로 뽑는 안을 제시했기에 대다수 학생은 여전히 전공학과로 입학한다. 하지만 장차 무전공 입학은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을 고사시키는 트로이 목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는 교육부의 일방적인 무전공 선발 정책이 인문학과 교양교양 교육이 함양하는 자유와 자기 결정 능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DALL·E와 픽사베이 합성

 

공론화 없는 무대포 추진

교육부는 대학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기 전에 먼저 무엇을 위해 무전공 선발을 해야 하는지부터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미래 한국의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리는 데 그 기술혁신을 주도할 인재를 키우는 학과의  정원은 부족한 데 반해, 인문대 등 문과 졸업생 숫자는 과잉이라면, 디지털 문명 조건에 부응하는 학과와 전공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교육부가 시장 논리로 자유·자율전공학부라는 ‘특구’ 설정을 넘어 무전공 선발이란 ‘무대포’를 대학에 쏘는 것은 성급한 처사다. 그러기 전에 먼저 그것의 교육적 효과와 의미를 심각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선 정부 재정지원을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교육의 내실보다는 외형적인 사업을 벌이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벚꽃 지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나온 이후 대학의 실존적 상황이다. 여러 유사 전공을 묶는 학부대학을 강요하는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학과제로 회귀할 즈음에, 무조건 ‘융합’이란 용어를 접착제처럼 사용해서 한 울타리 안에 여러 전공과 학과를 가둬서 각자도생하게 만드는 실험을 강요했다. 교육부의 무전공선발은 그 같은 일련의 실험의 끝장으로 대학에 막장 드라마를 연출할 소지가 충분하다.

 

저출산과 교육 경쟁 그리고 불행

식민 지배받은 후진국이었다가 선진국으로 도약한 세계 유일 국가인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반도체 강국으로 계속 부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과제가 저출산이다. 저출산을 초래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국가는 성공했는데 개인은 불행하다는 의식이 후손을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여겨진다. 물질적 풍요는 삶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의식의 전환 없이는 한국 사회는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국가가 될 거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물론 미래 한반도에 누군가는 살 것이고, 한국이란 국가공동체는 다문화사회 형태로 존속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미래 한국의 비극적 시나리오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지금 우리가 그 길로 계속 가야 하느냐다. 경쟁과 비교로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대학을 적자생존의 정글로 전락시키는 악순환을 이젠 끝내야 한다. 지금의 한국인이 자기 자신이 책임이 있는 불행한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기 이유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자유 의식을 각성하기 때문이고, 그런 의식을 갖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기 이유에 대한 탐구가 인문학과 교양의 본질이다. 

인공지능 시대 문명의 대전환과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 개혁과 교육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추진하는 무전공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인간의 자유인 ‘자기 이유’를 탐구하는 학문을 죽이거나 약화할 게 아니라 개혁과 개편의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장점인 사고의 근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힘을 물리학 공식으로 표현하면 F=ma, 곧 질량 곱하기 가속도다. 각 전공이 질량이라면, 가속도는 경향성 또는 시대정신이라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대학 체제에서 전공학과의 규모가 다른 것은 질량 차이로 나타나며, 그것의 잠재력은 시대적 추세와 곱해져서 발현된다. 교육부는 지금 가장 큰 질량을 가져야 하는 전공은 반도체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관련 학과며, 4차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이 가속도로 작용한다고 믿기에 무전공 선발이라는 ‘무대포’를 쏴서라도 대학에 구조조정을 강요한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는 F=ma를 조건으로 하지만,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 삶을 영위하기에 획득한 역량이다. 자유란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스스로가 규정하는 자기 이유다.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이 거의 유일하게 자아가 있고 자기 이유에 관해 묻고 삶의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특성은 무엇보다도 물리적 실재 너머의 마음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밀턴은 『실락원』에서 “마음은 그 자체 장소여서, 마음 스스로가 지옥의 천국, 천국의 지옥을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불교의 『화엄경』에서도 마음은 세상을 그리는 화가라고 했다. 나는 어떤 화가가 되느냐가 나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한다. 인문학 관련 학과들을 약화하고 디지털 관련 학과들을 강화하는 구조조정으로 국가의 F=ma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위한 국가 경쟁력 강화인가이다. 힘(Force)이란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경하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원인이며, 그것이 크기와 방향을 가질 때 벡터(Vector)로 표현된다. 무전공 교육은 단순히 물리적 힘만을 키우는 것이며, 그것에 방향성과 목적에 관한 인간의 사유가 개입할 때 벡터로 표현돼 파워(Power)를 가질 수 있다. 

현재 AI는 인간보다 더 큰 F=ma를 키우는 기계학습을 할 수 있고, 그 격차는 바둑에서처럼 장차 특이점을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AI는 무엇을 위해 학습하는지에 대한 자기 이유, 곧 자유 의식이 없다. 페터 비에리(Peter Bieri)라는 이름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는 인간은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인간의 ‘자기 결정’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이 바로 인문학과 교양이다. 이 둘을 죽이는 희생을 유도하는 무전공 선발은 F=ma의 방향성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무뇌’ 인간을 양성할 위험성이 있다. 

앞으로 AI 덕분에 인간의 F=ma는 신석기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이래 폭발적 성장을 하겠지만, 그 결과가 인류의 종말이 된다면 무슨 소용인가?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이 인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대학 내 인문학과 교양교육의 입지를 약화하는 것은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도 버리는 우를 범하는 조처다. 교육부의 반성과 재고를 촉구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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