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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2] 대한민국 최고 지성들이 답이 없다는데…
[한민의 문화등반 52] 대한민국 최고 지성들이 답이 없다는데…
  • 한민
  • 승인 2023.01.11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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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2

 

한민 문화심리학자

방송 등 매체에서 전문가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국 사회의 제 분야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공이 전공인 만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여러 장소에서 마주치는 편인데, 공중파로 송출되지 않는 그분들의 견해는 훨씬 더 날카롭고 맵다. 과문한 탓에 그런 자리에서는 다른 분들의 생각을 많이 들으려 하는 편인데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가끔가다 보면 날카로운 비판 끝에 ‘이 상황은 답이 없다’는 식의 결론에 이르는 분들이 계셔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우선은 훌륭한 이론과 풍부한 근거로 뒷받침된 멋진 논리 끝에 도달한 결론이 ‘답이 없다’는 점에서 맥이 빠지고, 다음은 ‘그러면 어떡하지?’라는 근심걱정이 찾아온다.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들이 답이 없다는데 그럼 이 나라의 문제들은 누가 해결할 것인가 말이다. 사실 전문가들 중에는 나라의 이런 저런 문제들을 맡아 해결하라고 나라가 국비 장학금을 주고 공부를 시킨 이들이 적지 않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공부를 좀 오래 한 사람일지라도 한 분야의 전문가 지위에 올랐다면 사회적 책임감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다’를 외칠 수 있는 담대함이라니. 맥빠짐과 근심 다음은 뜬금없는 감탄이었다. 전문가가 생각해도 답이 안 보이는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편한 사람 앞에서 격의 없이 내뱉는 ‘스몰토크’일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순한 한탄으로만은 들리지 않았던 경험이다.

누가 봐도 답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답을 찾는 것이 전문가의 전문성이자 책무다. 자신의 전문성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를 전문가라 부를 수 있을까. 특히 한 분야의 전문가쯤 되면 누군가의 스승이자 누군가의 부모일 것이다. 스승이, 부모가 제자들에게, 자녀들에게 ‘이곳은 답이 없으니 떠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 가르쳐도 되는 것일까. 

이분들이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가장 큰 이유는 답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로 잘 알려진 자기실현적 예언은 확증편향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확증편향이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도식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경향성을 말한다. 

짧게 말하자면, 어떤 문제에 이미 ‘답이 없다’는 결론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답을 찾을 가능성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답이 없다는 결론을 확증하는 정보만 받아들여 결국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논리는 완벽하고 결론은 흠잡을 데 없다. 이미 나 있는 결론을 확정하는 것이기에.

답이 없는 전문가들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사람들이 문제의 답을 찾을 의지마저 꺾어버린다는 데 있다. 최고의 수재들마저 포기한 문제를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환경재난과 팬데믹, 저출산과 고령화, 꼬여버린 남북관계, 오르는 물가, 2023년 정초의 대한민국은 절망과 냉소가 가득하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10여 년 전 한 인터뷰에서 청년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간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말아 달라. 죽어서도 지하에 있다가 여러분들이 싸우지 않으면 내가 싸우러 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 

인터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나는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다. 여러분 세대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싶다.” 조세희 선생께서 죽어서도 싸우러 나올 것이라 말씀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분들에게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분들의 말씀에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그분들의 냉철한 논리와 분석에 나에 대한 애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에게 나는 엄연한 미래 세대였고 사랑받아 마땅한 후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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