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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9] 저출산에 대한 또 다른 관점
[한민의 문화등반 59] 저출산에 대한 또 다른 관점
  • 한민
  • 승인 2023.06.2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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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9

 

한민 문화심리학자

2020년 대한민국의 인구가 처음으로 데드크로스를 기록하면서 저출산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어둡고 부정적인 전망이 언론과 매체를 채웠다.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 여러 가지 정책에도 해마다 떨어지는 출산율, 현재 5천만 명인 인구가 2070년대에는 3천만 명으로 줄고 몇백 년 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까지.

커뮤니티 등에서 일반 대중들의 여론 역시 부정 일색이다. 저출산의 흐름과 발을 맞추고 있는 고령화는 불안을 더욱 가속시킨다. 노인 인구는 늘어가는데 그들을 부양할 세대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집값, 뜨거운 교육열, 가정보다 일을 중요시했던 기업 문화 등 지금까지 당연시되어왔던 모든 것들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와중에 긍정적인 전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필자 역시 딱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대세가 된’ 저출산 기조를 뒤집을만한 식견도 능력도 필자에게는 없다. 하지만 사태를 보는 관점을 바꿔볼 필요는 있다. 안 풀리는 문제를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풀어봐야 풀릴 리 없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광복 직후, 남한의 인구는 1천600만 명이었다. 인구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30여 년 후인 1983년 남한 인구는 4천만 명이 넘었고 인구밀도는 세계 3위에 달했다. 사람은 많았고 일자리와 집, 인프라는 부족했다.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동네마다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표어가 붙기 시작했고, 당시 존재했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계속 아이를 낳는 집들을 겨냥한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도 몇 년 후에는 두 손가락을 합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로 바뀌는 지경이었다.

그러고도 인구 증가는 계속되었고 1980년대 후반의 한 뉴스에서 앵커는 부정적인 어조로 “2020년도나 되어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탄했다. 드디어 그 2020년이 되고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난리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우려하는 이들은 현재의 상태를 정상이라 보고, 정상이 붕괴되는 것을 우려하지만 애초에 비정상은 그동안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아니었을까. 인구란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그 적정선이 결정되는 것이다.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지역, 그리고 많은 인구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고, 고산지대처럼 환경 자체가 인구 부양력이 떨어지거나 전쟁 등 주변 사회와의 경쟁이 드문 지역에서는 아이를 적게 낳았다.

현대 사회가 되면서 식량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했는데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의 인구 증가는 농경사회의 출산 습관이 이어진 결과였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구조는 농경에서 2차 산업으로, 2차 산업에서 3차·4차 산업으로 바뀌었다. 격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경쟁해야만 하는 문화에서 예전과 같은 높은 출산율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좀더 짧은 시간에 집약적으로 겪어서 그렇지 저출산은 일찍이 산업화를 겪은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의 출산율과 비교되는 선진국의 출산율은 50년 가까운 저출산 정책을 펼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저출산은 인구구조가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인구구조가 변화하면서 닥쳐올 혼란은 피할 수 없다. 5천만 명의 인구로 유지되던 모든 것이 바뀌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구가 폭증하면서 겪었던 혼란에 비하면 그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도 있고 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있다. 

게다가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 꼭 나라가 쇠퇴한다는 근거도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추앙해 마지않는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500만 명에서 1천만 명 언저리의 인구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보다 면적이 더 크거나 비슷한 나라들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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