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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랑 말고, 플라토닉 사랑을
플라스틱 사랑 말고, 플라토닉 사랑을
  • 김병희
  • 승인 2024.01.05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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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33 중앙출판공사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읽어봤으리라.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일이 일상화되지 않던 시절에는 연인끼리 이 시를 편지지에 예쁘게 써서 주고받던 분들도 많을 것이다.

시인이 처음부터 발표하려고 시를 쓴 것은 아니었고, 청마 시인이 시조시인 정운(丁芸) 이영도(李永道, 1916~1976) 여사에게 보낸 숱한 편지 중의 하나였다. 시인은 그래서 날마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쓴다고 묘사했을 것이다.

중앙출판공사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광고 (조선일보, 1967. 7. 23.) 

유치환의 편지 모음집인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발행한 중앙출판공사의 광고 ‘행복’ 편(1967)에서는 책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썼다(조선일보, 1967. 7. 23.). 책 제목 자체를 그대로 광고 헤드라인으로 쓰는 출판계의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

제목이 헤드라인이 되니까 책을 소개하는 핵심은 헤드라인을 읽도록 유도하는 오버라인이 광고 카피의 핵심이다. “이다지 지애(至愛, 극진히 사랑함)하고 이다지 열모(熱慕, 뜨겁게 사모함)한 노스탤지어의 시인(詩人) 청마(靑馬)의 만리장서(萬里長書)!” 오버라인에서는 극진히 사랑하고 뜨겁게 사모하는 마음이 만리장성을 쌓을 만큼 켜켜이 쌓였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썼을 법한 카피인데, 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암시하며 ‘만리장서’로 표현한 비유 감각이 탁월하다. 보디카피는 이렇다. “20년(年)토록 긴 세월(歲月)을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씨가 규수시인(閨秀詩人) 이영도 여사에게 하루같이 보낸 사랑의 편지(便紙)들. 구원(久遠, 멀고 오래됨)한 목숨의 명인(鳴咽, 흐느낌)이 성결(聖潔, 거룩하고 깨끗함)한 5천여운(千餘運)의 글발이 당신의 가슴에 그리움의 비를 내릴 것이다.”

4·6판 크기의 금박 제본에 370쪽이며 책값은 400원이라는 기본 정보를 알리며, 독서계를 석권해 단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고 소개했다. 광고 카피에서 말한 ‘그리움의 비’가 독자들에게 내렸던 것일까?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초판 표지 (중앙출판공사, 1967)

이근배 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편지 모음집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7년 봄, 청마 시인이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박성룡 시인이 청마와 정운 사이에 오간 편지가 5천여 통이 넘는다는 내용을 <주간한국>에 소개했다. 정운은 편지들을 모아 책을 내자는 출판사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여러 여성잡지에서 청마의 여성 관계가 복잡하다는 듯이 가짜 뉴스를 이어나갔다. 보다 못한 정운은 잡다한 소문을 잠재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대형 출판사를 물리치고 신생 출판사였던 중앙출판공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던 이근배 시인에게 연락했다.

그래서 시인은 정운의 집으로 찾아가 편지 다발들을 추려 “뼈를 추리고 살을 발라내”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이근배,  「문단수첩: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동아일보, 1991. 2. 8.). 책이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영원히 묻힐 뻔한 명시가 가짜 뉴스 때문에 새 생명을 얻은 격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사랑의 자취는 지금도 통영중앙우체국 앞의 행복 조각상으로 남아 있다. 통영여중의 국어 교사로 부임한 청마는 같은 학교에서 가사(가정) 과목을 가르치던 이영도 선생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다. 당시에 청마는 38살의 유부남이었고, 시조시인 이호우의 동생인 29살의 이영도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었다.

정운은 단호히 거절했지만 청마는 정운을 계속 흠모한 나머지,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서(戀書)를 써서 통영중앙우체국에서 부쳤다. 청마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정운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마음이 흔들려 둘만의 정신적 사랑이 시작됐다.

청마의 편지쓰기는 20여 년 동안 계속됐는데 6·25 전에 불탄 것을 제외하고도 5천여 통에 이른다. 이들의 플라토닉 러브는 요즘 세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행복 조각상은 너무 쉽게 만났다가 갑작스레 헤어지는 요즘의 플라스틱 사랑을 꾸짖는 것만 같다.

두 사람은 20여 년 동안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며 살았다. 죽음만이 그들을 갈라놓았는데, 그들은 내내 사랑 속에서 행복했다.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가 편지를 주고받던 무렵의 나이가 청춘 시절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 뜨겁고도 아름다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처럼, 사랑에도 나이가 없다. 두 사람은 신체 나이를 잊은 채 ‘열정적인, 너무나 열정적인’ 청춘의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는 연인들의 플라스틱 사랑을 꾸짖고, 사람들에게 육체적 사랑을 완전히 배제한 채 정신적인 사랑의 가치도 추구해 보라며, 플라토닉 사랑을 동경하게 하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누군가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흔히들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하지만 착각일 뿐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기에 그렇다. 사랑을 줄 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나이 먹을수록 더 느끼게 된다. 그래서 청마는 시의 첫줄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 더 행복하시고 플라토닉 사랑을 꿈꿔보세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까요. 지금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시간입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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