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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 중심 군대를 넘어라…여성부터 인공지능까지
이성애 중심 군대를 넘어라…여성부터 인공지능까지
  • 김수아
  • 승인 2024.03.15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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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기획 | 김엘리 외 6인 지음 | 서해문집 | 241쪽

남성이 갖는 군 복무에 대한 양가적 감정
이원화 젠더 구조 넘어 다층적 체계 분석

선거 시기에는 종종 “여성도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선거 기간이 끝나면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다음 선거에 다시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대에서 일어난 폭력과 사고, 억울한 죽음의 사연이 끊임없이 ‘단독’이라는 말머리와 함께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에서조차도 피해자의 존엄을 기리기 위한 노력 그리고 유가족의 슬픔에 대한 정당한 위로는 여전히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군대 문제는 소위 ‘젠더 갈등’의 가장 핵심적 주제이면서 남성만의 부당한 부담으로 여겨진다. 군대는 전쟁이라는 폭력을 대비하는 조직인 것 같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가장 폭력적인 조직이기도 하다. 이 공간에 대한 논의에는 사실 여러 가지가 빠져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는 군대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특히 군대와 관련되어 있음에도 남성으로만 상상되기에 누락돼 있는 주체들 즉 여성, 성소수자와 동물 그리고 인공지능을 불러내어 현재의 이성애 중심적 군대 제도가 갖는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에 대한 사유를 요청한다.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군대에 대한 내적·외적 재현 양상을 검토한 두 편의 글은 우리 사회에서 군대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너머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허윤은 군대에서 복무 중인 연예인의 팬을 동원하여 상업적 연예 엔터테인먼트를 제작하는 국방 엔터테인먼트가 갖는 정치적·문화적 의미를 질문한다. 조시연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인과 남성성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그려져 왔는지를 검토하면서 이 재현들이 ‘하드 보디’와 첨단 기술을 통해 ‘군사화의 전지구화’에 초점을 두는 최근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백승덕은 우리 사회 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자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추지현은 군형법 상의 추행 죄를 둘러싸고 “내 아들을 보호하라”는 부모의 목소리가 대표되면서 은폐되는 차별과 혐오의 구조를 드러낸다. 심아정은 비인간 존재가 전쟁에 동원되거나, 화학물질을 이용한 전쟁에서 비인간 존재가 식품으로서의 가치로만 셈해지는 상황을 보이고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전쟁 문제는 비가시화돼있다는 것을 다룬다. 장박가람은 인공지능과 무기 체계의 결합이 젠더·인종 차원의 차별을 강화하고 있으며 더 인도적인 전쟁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환상이 폭력의 원격성과 추상성을 강화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두 명의 글은 전쟁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더 이상 ‘인간/남성/군인’이라는 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들이 이미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다. 

김엘리는 여성의 징병을 둘러싼 남성의 불만과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문제가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공정과 성평등을 전유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결국 이 군대 문제가 몸의 성별화와 위계화에 따른 차별 구조에 따라 생겨나며, 우리 사회가 이러한 차별의 구조에 의해 구성되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 군대는 남성성이 제일의 상징이고, 나머지는 배제된다. 사진=픽사베이

한국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 조건 때문에 당연시되는 ‘국방’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 구성의 핵심 기제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주체들을 소외시키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군대가 어떻게 작동하면서 우리 사회의 젠더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 폭력의 문제에 도전하고 자명해 보이는 군대라는 권력을 바꾸어 내기 위한 다양한 주체들의 연대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 남성들이 갖는 군 복무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원화된 젠더 구조를 넘어서는 그 너머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대에 대해 말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새롭게 구성해야 함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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