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거나
피라미드식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공동체적 공감에서 비롯될 것이다.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 웰에이징 시대, 법에도 마음이 있다, 광고 심리학을 입다, 가족이 제일 어려워, ‘예술, 심리학을 만나다’, ‘심리학, 마음을 재다’, ‘잠을 잊은 그대에게’, ‘상담의 기술’, ‘심리학, 감정을 파헤치다’에 이어 열다섯 번째 주제로 ‘한국 청년들의 무기력’을 다룬다. 김인국 웰링턴 빅토리아대 응용비교문화 연구소 연구원의 네 번째 글이다.
‘청년세대의 무기력’에 대한 칼럼 제안을 받았을 때, 미래의 불확실성과 심한 경쟁에 무기력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박사를 마치고, 웰링턴 빅토리아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나는 올해 초 석사과정 때 지도교수님이 뉴질랜드로 여행을 오셔서 잠시 뵙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어서 진로에 고민이 많았다. “삶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마음 약한 소리를 했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럼 무엇을 할 것이냐?” 되물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의 의미’와 학문하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나 역시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을 조언하셨다. 현실의 문제를 못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 잠시 야속하기도 했지만, 교수님의 조언은 무기력을 극복할 힘이 되었다.
내적 동기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관점 자체가 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에 비춰 보면, ‘한국 청년의 무기력’은 단순한 일자리 부족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이번 글에서는 이를 사회·문화 심리적 맥락에서 조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문화와 청년세대의 무기력
한국에서는 위계질서가 개인의 인식과 일상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삼가는 굉장히 경직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타인을 평가하고 자신과 비교하여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습관적인 행동이다.
오늘날에는 나이와 계급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나 외모 등 다양한 요소가 위계적으로 인식된다. 출신 학교, 직업, 연봉, 거주 지역 등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로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결국 이러한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높은 사회적·경제적 위치를 향해 끊임없이 경쟁하게 한다.
이 경쟁과 비교 문화는 한국 사회를 역동적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비교 중심의 문화가 오히려 청년들의 무기력을 악화시키고 있다.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며, 3D 업종은 기피된다. 대기업과 특정 직업 선호로 인해 경쟁은 치열해지고 기회는 제한되며,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집값 상승으로 인해 개인 노력만으로는 내 집 마련이 어려워졌고,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기도 점점 힘들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기준이 중시되고 획일화되어 있는 문화 속에서 청년들은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고, 이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며 삶의 고유성과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청년 무기력 문제에 대한 정책은 주로 ‘양질의 일자리 제공’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는 중요하지만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변화도 필요하다. 이제는 누군가보다 더 잘나기 위해 경쟁하기보다는, 각자가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서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무엇에 마음을 쏟고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 가는지 그 자체를 중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만족감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서 느끼는 흥미, 몰입, 보람 같은 내적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로 가는 데 필요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① 타인을 쉽게 평가하지 않고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
우리 사회가 타인을 즉각적으로 평가하고 비교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한지 인식해야 한다. 평가와 편견의 언어를 줄이고,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무엇을 시도했는가’를 묻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창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역시 안 될 줄 알았다”가 아니라 “어떤 것을 배웠나?”를 묻고,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을 단순히 “성실하지 못하다”고 보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처한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함부로 그 사람의 문제로 귀인해서 판단하는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② 성과뿐만 아니라 의미와 과정을 인정하는 교육과 조직 문화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학습과 평가가 아니라 학생들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과정에는 시행착오가 따르며, 그것이 당연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인식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학생이나 직원이 낸 결과만이 아니라,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몰입했는지를 들여다보는 피드백 구조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창의적 대안을 제시했는지, 어떤 협업 능력을 발휘했는지, 어떤 문제 해결 과정을 거쳤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③ 사람을 경쟁과 순위가 아닌 고유한 이야기로 바라보는 미디어
대중매체는 최고, 최초 등의 성공사례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조명해주어야 한다. 특히 실패의 이야기와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어야 한다. 창업에 실패한 후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취업에 실패한 청년이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는지 등의 이야기들이다. 이를 통해 삶은 획일적인 트랙이 아니라 고유하고 다양한 서사임을 보여주는 시선이 필요하다. 많은 청년은 상대 평가에 익숙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은 각자의 방향과 속도가 다르며, 그 모든 것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우리는 독립된 개체지만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주변에서 물질적 성취를 추구하고 외적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내적 동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청년들이 무기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경쟁과 평가에 지친 나에게 어른으로서 따뜻하게 건넨 교수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 마음을 울리는 위로와 힘이 되었듯이, 우리 각자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무기력한 많은 청년 역시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해 줄 누군가가 필요할지 모른다.
결국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거나 피라미드식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공동체적 공감에서 비롯될 것이다. 서로가 위로되는 사회. 이것이 무기력한 청년들에게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이 아닐까.
김인국 웰링턴 빅토리아대 응용비교문화 연구소 연구원
뉴질랜드 소재 웰링턴 빅토리아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교 내 응용비교문화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문화 간 비교연구를 비롯해 다문화, 환경문제 및 사회통합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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