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에서 남긴 명언이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길이로도, 수사로도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한 시간 동안 웅변을 펼친 다른 연설가와 달리, 링컨은 2분간의 짧고 쉬운 언어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드러냈다. 이는 노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대변약눌(大辯若訥, 큰 말은 오히려 더듬는 듯 소박하다)’의 역설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 원리는 예술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대교약졸(大巧若拙)’ 그러니까 ‘큰 기교는 서툰 듯 보인다’는 『도덕경』 제45장의 말처럼, 조선시대 서화 가운데는 과시적 기교를 버리고 담백함과 순수함으로 ‘도(道)’를 드러낸 작품이 있다.

이인상, 「구룡연도」, 1752년, 종이에 연한 색, 117.7x58.6cm, 국립중앙박물관
마음을 그린 그림, 이인상의 「구룡연도」
옛 그림 가운데 대교약졸의 이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으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구룡연도(九龍淵圖)」가 대표적이다. 노자에게 ‘교(巧)’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완전히 합일된 차원을 의미한다. 최고의 경지는 요란한 솜씨를 드러내지 않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투박하고 단순해 보인다는 철학이다. 폭포를 가운데 두고 아래쪽에 소용돌이치는 연못과 바위를 그린 이인상의 「구룡연도」는 단순하지만 가볍지 않다. 묘사의 완성이 아니라 정신의 완성을 요구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구룡연도」의 가장 큰 특징은 백묘법(白描法, 먹으로 윤곽선만 그리는 화법)이다. 가늘디가는 선묘를 위주로 그리다 보니, 채색도 없고 음영도 없다. 오직 마른 선, 즉 뼈대만 남김으로써 ‘미완성’ 혹은 ‘비어 있음’을 표현한 듯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압도적인 자연의 질서와 깊이가 흐른다. 이처럼 조선의 문인화가들이 추구한 것은 눈을 놀라게 하는 기교가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는 울림이다. 이 같은 정황은 「구룡연도」의 화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사년(1737) 가을에 삼청동 임씨 어른(임안세)을 뵈옵고 구룡연을 본지 15년 만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올립니다. 모지라진 붓에 그을음을 묻혀, 그 뼈대만을 그렸을 뿐 살집은 그리지 않았고, 색을 칠하지 않은 것은 감히 거만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한 것(心會)’에 뜻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 올림.
화제의 내용 가운데 ‘뼈만 그리고 살과 색을 윤택하게 베풀지 않은 것은 심회(心會)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구절이 주목된다. 대상의 묘사보다 마음을 담는 경지는 오랜 수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선이나 김홍도는 현장에서 본 구룡연을 사실적인 구도와 묘사로 눈에 보이는 ‘장엄함’을 재현한 반면, 이인상은 15년 전 기억 속의 구룡연, 그러니까 마음에 남은 구룡연을 그렸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추사 김정희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바로 이인상이라는 사실이다. 김정희가 이인상을 존경한 이유도 그의 작품을 마음의 흔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인상의 「구룡연도」는 절제와 생략의 미학으로 마무리된다. 노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바로 대교약졸이다. 여기에 김정희가 말한 ‘불계공졸(不計工拙,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를 따지지 않는다)’의 이념까지 겹치면, 이 그림은 산수화가 아니라 ‘도’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유근, 「괴석도」, 종이에 먹, 16.5x24.5cm, 간송미술관
귀한 것은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다
추사 김정희의 친구,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이 그린 「괴석도」 역시 대교약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화면 속 괴석은 예술적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바위의 형태는 어설프고, 균형은 불안하며, 선은 거칠다. 회화적 기교만 본다면 ‘잘 그린 그림’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 그림에서는 오직 바위가 지닌 기운과 성격을 갈필의 선으로 포착했다. 갈필로 거칠게 긁은 듯한 바위 표면은 기교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기교를 거부한 흔적에 가깝다. 서투른 듯한 표현 속에 노련함이 숨어 있으며, 그 지점이 바로 ‘큰 기교, 대교(大巧)’이다. 무엇보다 김유근이 그림에 남긴 화제는 『도덕경』의 사유와 닿아 있어 주목된다.
“귀한 바는 정신이 빼어남인데 어찌 형사(形似)를 구하리까? 같이 좋아할 이에게 드리노니 벼루 상 머리에 놓아두소서. 황산이 직접 씀.”
화제의 내용 가운데 ‘귀한 바는 정신이 빼어남인데 어찌 형사(形似, 비슷함)를 구하리까?’라는 말은 형태 묘사를 버리고 ‘도’를 취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외형보다 본질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미의식이자 『도덕경』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도덕경』 제19장에 나오는 ‘견소포박(見素抱朴, 소박함을 보고 다듬지 않은 바탕을 품다)’이라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노자가 말한 ‘박(朴)’은 깎지 않은 통나무, 즉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괴석은 다듬지 않은 자연물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인 형태이다. 하지만 문인에게 돌은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며, 우주의 기운이 모인 최고의 작품이다. 결국 김유근의 「괴석도」는 자연의 질서와 기운, 그리고 문인 정신이 응축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김유근은 정치적으로는 안동김씨 세도를 굳힌 인물이고,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 못난 돌 하나를 그려 벗에게 건넸다. 괴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존재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한다.
김유근의 붓질 역시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지만, “돌처럼 소박하라(珞珞如石)”는 『도덕경』 제39장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교약졸, 견소포박, 락락여석. 이 모든 노자 말씀은 그림 속 괴석 하나에 수렴된다. 서툴러 보이되 얕지 않고, 거칠되 가볍지 않으며,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오래 곁에 둘수록 깊어지는 존재. 김유근의 괴석은 단순한 돌이 아니다. 그는 친구에게 벼루 곁에 두고 보라며 ‘도(道)’를 보낸 것이다.

김정희, 「판전」 현판, 1856년, 77x181cm, 봉은사
삶의 끝에서 보여준 추사체의 본령, 김정희의 「판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봉은사 「판전(板殿)」 현판은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이는 대교약졸이 예술적으로 구현된 사례로 평가된다. 작고하기 사흘 전에 썼다는 「판전」의 글씨를 보면, 획은 삐뚤고 글자의 구조는 해체된 듯하며, 서예의 규범과는 멀어 보인다. 김정희는 평생 금석문과 고대 서체를 연구한 인물이다. 하지만 삶의 끝에서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초월’이다. 더 이상 잘 쓰려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김정희는 1848년, 8년간의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친구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북청에서 해배된 후, 1852년부터 선친에 대한 추억이 있는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에서 4년을 머물렀다. 작고하던 해인 1856년, 71세 봄에 봉은사로 거처를 옮겨 학예와 선(禪)에 몰두하다 생을 마쳤다.
김정희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칠십 평생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닳게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부적 재능에다 각고의 수련이 더해진 최고의 품격이 「판전」 두 글자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얼핏 어린아이가 쓴 듯 서툴러 보이지만, 마침내 도달한 그곳에는 맑고 순수한 정신이 드러난다.
김정희는 평생 삼백 개가 넘는 인장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불계공졸이라는 문자인(文字印, 글귀나 문장을 새긴 인장)도 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불계공졸이야말로 대교약졸과 더불어 추사체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경과를 장석주 시인은 「추사」라는 시로 읊었다.
“봉은사에 가면 판전(板殿)이라는 / 딱 두 자 현판 글씨를 보고 오너라. / 서툴고 졸렬하다. / 지독히 못생긴 저 글씨에 / 내 심장 그만 멎는다. / 붓 천 자루가 닳아 몽당붓이 되고 / 벼루 열 개가 닳아 구멍이 뚫렸다. / 이만한 수고도 없이 / 추사 솜씨 얻었겠나! ”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고 있다. 성과는 수치로 증명되어야 하고, 능력은 눈에 띄어야 한다. 하지만 대교약졸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한다. 진짜 실력은 드러내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으며, 진짜 깊이는 요란하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링컨의 연설처럼, 진정한 완성은 더함이 아니라 덜어냄에 있다. 조선의 서화가들이 그랬듯, 충분히 노력한 뒤에는 힘을 빼고 자기다운 자리에 서는 것. 이것이 우리가 대교약졸에서 본받아야 할 최고의 교훈일 것이다.
김정숙 박사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묵란화 연구」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 았다. 한국외대·고려대·한국문학번역원 등에서 강의했다. 고려대 에서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옛 그림 속 여백을 걷다』, 『그 마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림으로 읽는 논어』 등이 있다. 현재 한국저작권보호원 심의위원회 심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옛 그림의 의미와 감동을 대중에게 전 하고자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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