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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따라할까봐 처벌해야 한다? 속마음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따라할까봐 처벌해야 한다? 속마음은 다릅니다
  • 이지은
  • 승인 2023.11.07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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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일곱 번째 주제 ‘법에도 마음이 있다’③ 잡범에 숨겨진 법심리학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 웰에이징 시대에 이어 일곱 번째 주제로 ‘법에도 마음이 있다’를 다룬다. 이지은 전남경찰청 총경의 세 번째 글이다. 

누군가 ‘법에 의해서’라고 할 때 
우리는 그 방식과 결과를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법에도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은 법을 악용하려는 
자들에게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시작, 잡범

최근 이재명 대표의 단식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잡범’ 발언이 화제였다. ‘(피의자가) 단식한다고 시스템이 멈추면, 잡범도 따라할 것’이라는 것. 과연 그럴지 궁금해졌다. 

우선 ‘잡범’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사전적 의미는 ‘자질구레한 범죄를 지은 자’이므로 강력범이나 지능·마약·경제사범은 제외될 테고, 절도나 폭행범 정도가 해당할 듯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절도·폭행범 총 25만4천327명 중 1.2%가 구속되었고, 특히 구속영장에 의한 구속은 1천 명 중 1명이다. 불구속 상태로 조사받는 기타 경미한 ‘잡범’들까지 합치면 이 수치는 더욱 낮아진다. 

22년 경찰 생활 중 구속을 피하려고 단식하는 잡범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자해를 시도하는 피의자는 가끔 있었다. 정신질환자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들인데 대부분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제압된다. 

그렇다면 법무부 장관은 진정 0.1% 미만 잡범들이 향후 이재명 대표를 따라 단식을 하고, 이를 통해 사법시스템이 멈출 것이 걱정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칼 스미스의 연구가 답이 될 것 같다. 그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형벌의 목적이 복수와 응징이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범죄예방을 위해 형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게 사회적으로 더 잘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은 복수가 목적이지만, 다른 사람이 따라할까봐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속마음이라 하겠다.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성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솔로몬. 법정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있고, 그 정보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 가운데 가장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니콜라 푸생, 「솔로몬의 재판」, 1649, 캔버스에 유채.

구체적 혐의사실 공개와 재판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현행범이 아니라면 회기 중에는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체포나 구금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행정권력에 의한 부당한 체포·구금으로부터 자유로운 국회 기능을 보장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번 체포동의안 결정 과정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법무부 장관의 혐의사실 설명이었다. 법무부 장관은 유례없이 길고 구체적인 범죄 혐의와 구속 필요성을 확신에 찬 어조로 읽어 내려갔고, 18페이지에 달하는 이 내용은 언론을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되었다. 야당에서는 피의사실 공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검경 등 수사 관련자들이 직무상 취득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했을 경우 성립하므로 법무부 장관의 행위는 일견 이에 해당하는 듯하다. 그러나 처벌 가능성은 낮다. 검찰에서는 법령 또는 업무에 따른 행위이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기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는 어떠할까. 피의사실공표죄의 취지가 무죄추정의 원칙 확립임을 감안한다면, 혐의를 확신하는 검찰 측의 피의사실 공표가 피의자의 인권과 명예를 침해하고 유죄 편견을 확산함은 분명해 보인다. 

많은 연구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언론보도가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보여준다. 피고인에게 적대적인 언론보도를 접한 배심원들은 공판에서 유죄 증거물에 대해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일부 배심원들은 언론보도에서 본 정보를 실제 공판의 증거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공판정에서는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만이 증거로서의 자격을 가지지만, 재판 전에는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도 언론에 넘쳐나게 되면서 국민들의 판단도 흐려진다. 

검사의 형량 제시와 재판

검찰은 이번 영장에서 이 대표의 범죄혐의는 36년 6개월 이하 또는 무기징역형에 해당한다며 특이하게도 형량에 대해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검찰은 판사의 선고 직전 ‘피고인을 몇 년형에 처해달라’라는 구형을 하게 되는데, 이 구형은 판사에게 인지 편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논쟁적인 주제다. 

사람은 주로 처음 주어진 초기값을 기준으로 판단을 하는데(예를 들어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묻는 질문에서 큰 수가 제시될수록 사람들은 그 추정치를 높게 예측한다), 법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이러한 소위 ‘앵커링(닻내리기) 효과’가 발생한다. 즉 동일한 혐의와 양형 요소를 가진 피고인이라 할지라도 검사의 구형에 따라 판사의 형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검사의 구형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 연구에서 폭행혐의 내용만 제시받은 배심원에 비해 검사의 구체적 구형까지 제시받은 배심원이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는 추상적인 범죄 내용만 들었을 때보다 00년형이라는 구체적 형량을 접했을 때 대상자가 더 잘못했다고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 로맨틱? 성공적!

체포동의 요청을 기회 삼아 형량까지 제시하며 공판 전에 피고인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검찰의 전략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국민에게 상당한 유죄 편견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내어야 하는 검찰로서는 체포동의안 부결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여 합법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비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재판을 연기하거나 관할을 다른 주로 이전까지 하는 미국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불체포특권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고, 특히 이번 사례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논점도 존재하지만, 피의자의 인권 및 무죄추정의 원칙과 관련해서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다시 잡범으로 돌아와서

누군가는 한동훈 장관이 과거 압수된 본인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수사기관에 알려주지 않은 것을 두고 잡범이 따라할 것을 우려했고, 실제 많은 경찰관도 앞으로 수사가 힘들어지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백하건대 경찰관들은 그들이 만나는 잡범이 자신의 권리를 잘 모르기를 바란다. 휴대폰을 압수하면서도 당연한 절차인 양 휴대폰을 들이밀어 얼떨결에 비번을 풀게 한다던가, 소위 미란다 원칙도 형식적으로 고지하는 등 말이다. 물론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미란다 원칙을 어떤 방식으로 고지하느냐에 따라 피의자의 선택은 완전히 달라진다. 체포동의안 절차도 모두 법에 따라 진행되었지만 그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누군가 ‘법에 의해서’라고 할 때 우리는 그 방식과 결과를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법에도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은 법을 악용하려는 자들에게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지은 전남경찰청 총경
경찰대 졸업 후 서울대 사회학 석사, 영국 캠브리지대 범죄학 석사를 마치고 한림대에서 법심리학 박사를 받았다. 한양대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 홍익 지구대와 화양 지구대 등 최일선에서 근무하며 경찰로서 현장감각을 익혔다. 중앙경찰학교 교무과장을 거쳐 현재는 전라남도 경찰청 112상황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법적 의사결정·경찰·젠더 연구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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