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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익숙한 ‘지방소멸’, 서울·지방 이분법은 그대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지방소멸’, 서울·지방 이분법은 그대로다
  • 권수빈
  • 승인 2023.10.16 08: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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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55 ‘서울·지방’ 프레임 바깥에서 지역 연구하기
권수빈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연구교수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나는 체현된 위치성을 바탕으로 상황적 지식의 구축을 전망한다. 
지역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지역의 경계 위에서 도전하는 지식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인식이자 우리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지역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역연구는 주로 개별 지역의 독특한 현상을 사례 연구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런 방식의 연구는 사회적 담론만큼 자연스럽고 어떤 때는 대중적으로 관심이 쏟아지기도 한다. 지역을 대변하는 대표성을 획득하게 되고, 지역의 삶이 특정한 것으로 재현된다. 그때마다 지역연구가 ‘재현 없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문제의식을 가진 건 박사학위 논문을 마칠 무렵이었다. 청년세대 담론의 문화정치와 실천을 연구하면서 인터뷰를 위해 매번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당사자 실천이 서울에 국한된 것이 아닐진대, 학위논문을 시작하던 시기의 나는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지방이라 칭해지고 있는’ 지역에 살면서 연구하는 나를 되돌아보며 이질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세대는 동질적으로 집단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집단의 표상은 매우 한정적이다. 한 세대 내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는 수많은 사회적 변수가 교차적으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교차성은 정상/비정상이라는 관념을 이끄는 이분법을 비판하고, 여러 차별과 억압의 요인이 맞물려 작동하는 것을 지적하는 개념이다.

내가 주목한 교차점은 지역이었다. 청년세대 담론에서 지역 청년의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고, 그런 위치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재현이 삶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에 지역이 어떤 이분법에 놓여 있으며, 한계를 넘어설 방법은 무엇인가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분법적 프레임 속의 지역

한국 사회에서 지역은 서울/지방, 중심/주변, 상부/하부, 도시/농촌 등의 이분법을 통해 배치되어왔다. 1970년대 발전주의적 국토개발계획 이후 위계적 이분법에 따른 국토 관계가 설정되었다. 지역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지역주의의 동원은 국토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재편되는지를 말해주는 사례다. 지역균형은 1970년대에도 등장했던 언어이며 지금도 지역분산이라는 말을 통해 지역 간 격차와 갈등에 관한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은 대개 신산업 또는 관광산업의 유치로 한정되어 있다. 지역은 성장이 ‘미완성’이거나 ‘미진한’ 공간으로만 읽히게 된다. 국가나 기업이 산업을 배치해줘야 하고, 숨은 자원을 발굴해 관광 산업화하는 것을 지역 격차의 해결책으로 제시할 때 지역은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아직 찾지 못한 수동적 공간이 된다.

더욱이 최근 지방소멸로 운위되는 지역 담론은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쇠퇴의 공간으로 지역을 재현한다. 수도권 인구는 50%를 넘어섰고, 지역 인구는 갈수록 감소한다. 지방소멸위험지수에 따른 소멸위험 지역은 118곳(2023년 2월)으로 지방소멸이 현실화되었다고 진단된다.

정부는 인구감소로 지역 소멸이 우려되는 시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거나, 성장촉진지역과 특수상황지역 등의 지정을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지원을 언표했다. 2023년 7월 이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곳곳에서 지방시대위원회가 발족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시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앞으로 주목해볼 일이다.

최근 지방소멸로 운위되는 지역 담론은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쇠퇴의 공간으로 지역을 재현한다. 지방소멸위험지수에 따른 소멸위험 지역은 2023년 2월 118곳으로 진단됐다. 그러나 지방소멸을 진단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며, 이 많은 지역이 ‘실제로’ 소멸한다는 논리는 한국사회 지방이 처한 현실을 상기시키기보다 지방을 소멸할 장소로만 여기도록 한다. 이미지=한국고용정보원 소멸위험지수.

지역의 ‘지방화’와 납작한 재현

나는 한국 사회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문제 삼고, 지역이 늘 수도권과 대비되어 인식되었음을 비판해왔다. ‘지역을 지방으로 만드는’ 지역에 관한 제한된 사회적 상상이 그 대표적 예다. 지역을 관광 소비나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거나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공간으로 여기는 한편, 낙후되고 쇠락하는 수동적 공간으로 보는 방식이다.

나아가 혹자는 지역 사람에게 열등감이나 좌절감과 같은 정서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지방대생이 차별을 내재화하면서 지역에 적당히 안주하는 삶을 산다고 설명한다. 나는 2000년대 이후 지방청년, 지방대, 지방가족을 둘러싼 국내 학술 담론을 대상으로 지역 재현의 타자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지역에 관한 서술은 객관적 사실처럼 보이지만 구성된 재현에 가깝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지역을 특정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스테레오타입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연구·정책·언론 등 담론 주체가 지역을 진단하는 방식은 지역 격차라는 적확한 현실을 짚고 있는 듯 하지만, 한편 지역을 묘사하는 동시에 대표하는 재현의 이중 회합을 실행한다.

예컨대, 지방소멸은 지역의 위기를 말하는 듯 하나 해결이 시급한 비정상화된 공간으로 지역을 배치해 낙인찍는다. 하지만 지방소멸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언어가 되었듯 지역에 관한 언술은 일종의 징표처럼 지역을 상징한다. 이런 방식은 수도권/지방 이분법을 재생산하는 구조화와 단절되지 않았음은 물론 그러한 논리의 재생산을 돕는다. 

지역을 떠나거나 남는 ‘숫자’가 될 뿐

단순화된 재현 밖에 삶을 설명할 길이 없는 지역사람들에게 남는 건 실패의 얼룩이다.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제약을 실제로 경험하고, 내가 사는 공간과 자신이 부정적으로만 재현되는 상황에서 지역사람은 자기비하와 억하심정을 느낀다. 지역 청년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담론 앞에서 자신의 삶을 의심한다.

그러나 서울로 떠나거나 또는 지역에 남겨지는 선택지 앞에 놓인 지역사람의 복잡다단한 정동은 논의되지 않는다. 그저 떠나거나 남는 ‘숫자’가 될 뿐이다. 그런데 지역 청년의 떠남은 인구 유출로 인해 지방소멸을 촉발한다는 혐의를 받고, 특히 가임기 여성으로 환원되는 지역 여성 청년의 이동은 인구소멸을 야기하는 ‘문제적 대상’이 된다.

상황적 지식으로 한국 사회를 지방화하기

지역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지식화할 것인가는 연구자의 선택과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연구자의 성찰적 질문은 쉽게 생략되고 지역을 특정하게 묘사하는 연구자가 지역을 대변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연구자는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사유를 형성하며, 그런 점에서 장소와 지식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마치 장소를 초월하는 듯하는’ 지식의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지역에 대한 특정한 분석 결과가 보편타당한 것으로 주목받는 것을 계속 목격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연구자의 체현된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에서의 의미 있는 앎’이다. 이에 나는 자문화기술지를 통해 지역 연구자의 지역 연구 수행 경험을 해석하고, 지역 연구자의 체현된 위치성을 강조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나는 연구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예술인·디자이너를 만났다. 우리가 경험한 지역 안팎의 상이한 위치는 지역이 단지 중앙/지방이라는 이분법적 대당관계로만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나는 체현된 위치성을 바탕으로 상황적 지식의 구축을 전망한다. 지역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지역의 경계 위에서 도전하는 지식을 만드는 것이다.

도나 해러웨이의 말처럼 상황적 지식의 주체들로서 우리의 자리에서 보고 듣고 증언하며 묘사하는 것을 ‘해명하고 상처받으면서’ 지역에 관한 다른 앎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인식이자 우리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지역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말하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의 과제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 지역을 다시 말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 구성체를 형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권수빈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연구교수
지역과 교차성, 공동체문화/예술을 연구한다. 청년 담론과 미디어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 사회 ‘지역(지방)적인 것’의 재현에 관한 문제의식으로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재현의 비판을 넘어 지역-연구하기의 대안적 방법론을 고민 중이다. 「청년세대 연구에 지역이라는 교차로 놓기: ‘지방대학생/지방청년’에 관한 학술 담론 분석을 중심으로」(2020)와 「‘나’를 지방화하기: 지역-연구자의 지역성에 관한 물음」(2023)을 썼다. ksubi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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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진 2023-10-20 14:40:44
글이 많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