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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이 미치는 영향력 성찰하기 
내 일상이 미치는 영향력 성찰하기 
  • 이민재
  • 승인 2023.11.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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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59 어느 민속학자의 대혼돈 연구기
이민재 국립목포대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 전임연구원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한국의 민속학은 오랫동안 본질적인 민족문화 또는 민중문화의 틀 속에서 
다양한 관행이 일상화되고 다시 일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민속학계와 인류학계에서는 
기존 틀의 해체가 이뤄져 왔고 
최근에는 새롭게 일상화되는 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여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어민, 필름 카메라 이용자, 
농어촌과 도시 지역에서 공동체 운동 같은 분야의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최근 김은희 작가가 집필했던 「악귀」라는 드라마가 큰 관심을 끌었다.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이유로 이 드라마를 좋아했다. 대중매체에 처음으로 민속학 전공자가 주연급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악귀」에서 꼽는 최고의 명장면은 배우 오정세가 경로당에서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이야기하며 현지 조사를 하는 장면이다. 

내가 하는 민속학은 「악귀」에 등장하는 오정세 배우와 조금 다르다. 사실 민속학 내에도 무당과 굿, 동제 등을 포함한 민간신앙과 의례 관련 연구자도 많이 있지만 사회조직이나 설화·생업·축제·의식주 관련 연구자도 많다.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민속학 연구자로서 내가 던지는 주된 질문은 농사를 어떻게 짓고 곡물을 어떻게 도정하며 어떤 밥을 먹는가와 같은 일상적 이야기다. 그렇다면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민속학자의 연구와 나의 연구는 민속학이란 같은 학문 범주 내에 묶일 수 있을까. 

요동치는 민속학, 요동치는 연구자

잘 모르고 시작한 민속학이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민속학은 문헌과 현지 조사, 전근대와 근대, 합리성과 비합리성 등 여러 범주를 넘나들 수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다. 나도 민속학과 관계를 맺으며 석사, 연구생, 박물관 기간제 연구원, 객원연구원, 위탁연구원, 박사수료로 직위가 달라졌고, 또한 누군가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연구는 더 심하게 요동친다. 19세기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 인천 남촌동의 농업 변화를 다룬 연구로 시작해 일본 내 양파 도입과 보급에 관하여 오사카부 다지리정의 양파 재배를 중심으로 한 연구, 강원도 인제의 목재업과 길의 변화를 다룬 연구, 서울의 노인과 경로당에서의 생활을 다룬 연구,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조사한 연구 그리고 호미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연구도 했다. 

내 연구가 다양한 이유는 많은 연구자 동료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어떠한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채, 프로젝트 노동자로 살아온 것이 큰 이유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연구는 민속학 같지 않다는 평가도 자주 받았고 누군가는 일관성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사실 나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어 내 연구가 어떤 맥락에 있고 왜 민속학‘적’ 연구인지 구구절절하게 말하게 된다. 

다만, 현시점에서 나의 연구 활동을 돌아본다면 개인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였든 용역을 통한 연구였든 상관없이 일상화와 비일상화라는 역동적 변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개인 또는 집단의 일상과 일상이 상호작용하는 현상에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진행한 연구였다고 생각한다.

전남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의 9월 갯제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갯제는 대표적 생업인 김 양식과 바닷일의 풍년과 평안을 빌기 위한 의례다. 사진은 마을의 당산나무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대나무를 꽂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제공=이민재

일상과 비일상의 역동적 변화에 주목하다

남촌동 연구는 농촌이었던 남촌동이 공단 배후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영농방식은 소비자의 기호를 염두에 둔 방식으로 바뀌었고, 유통 방식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는 남촌동이 근교 농촌일 때와는 또 다른 영농과 유통방식이었다. 양파 연구도 일상의 변화를 중심에 둔 연구였다.

현대 일본 가정집에 양파가 상비된 배경에는 19세기 말부터 일본에서 점차 일상화하는 육류 요리에 양파가 곁들이는 채소로 자리 잡은 것과 관련 있다. 일본 내 양파 소비의 증가는 다시 다지리정을 양파 산지로 변화시켰고 이는 지역 내 농업과 경관 그리고 주민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동자 관련 조사에서는 한국의 육류 소비의 일상화라는 변화와 이를 지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축 전염병을 방역하고 도축된 육류를 검사하는 노동자를 조사했다. 즉, 육류 소비의 일상화라는 새로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노동자는 산업재해를 일상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은 나만의 특별한 연구방법이 아니고 민속학이란 학문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민속학이란 학문의 성립은 결국 근대화 과정에서 과거의 ‘일상’이 비일상화 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그 현상을 해석하면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의 민속학이 오랫동안 본질적인 민족문화 또는 민중문화라는 틀에서 일상화와 비일상화의 현상을 바라본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해체 역시 최근 20여 년 동안 한국 민속학계와 인류학계에서 이뤄져 왔다. 최근에는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새롭게 일상화되는 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어민, 필름 카메라 이용자, 농어촌과 도시 지역에서 공동체 운동 같은 분야의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송촌리에 있는 용진정미소는 1950년대부터 2009년까지 운영됐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용진정미소 이외에도 소규모 정미소가 여러 군데 있었다. 이 정미소들은 쌀 도정만이 아니라 미곡 유통, 각종 농산물 가공과 함께 이불 솜을 타는 일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했다. 현재 용진정미소는 마을기록관으로 바뀌어 운영 중이다. 사진 제공=이민재
용진정미소 내부 모습이다. 사진 제공=이민재

일본인이 원했던 백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쌀을 선택했다. 원래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일본에서 연구했던 양파를 확장해 다뤄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도교수님께 족발집에서 나의 결심을 말씀드렸다. 저는 양파로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려고 합니다. 지도교수님은 묵묵히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마디를 하셨다.

“양파도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그걸로 박사논문을 쓴 뒤에 어떻게 할거냐?” 결국 양파 관련 논문을 써서 어느 방향으로 취업을 할 것이냐는 말씀이었다. 그렇다. 박사학위 취득을 꿈꾸는 학생에게 박사논문은 곧 나의 생업과 긴밀히 연관된 연구이다. 그래서 결국 가장 확장성이 넓다고 생각되는 쌀을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잡았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쌀이라고는 하지만 쌀이 한국인의 역사와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인의 일상 속 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고 주제를 좁혀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던진 첫 질문은 19세기 조선과 현재 한국의 쌀 재배와 소비의 여러 변화 중 근본적 변화는 무엇일까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자신이 먹는 쌀을 대부분 직접 재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부터 쌀은 중요한 곡물이었지만, 쌀을 생산하는 측의 욕구와 맥락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그랬던 쌀에서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욕구와 맥락을 반영한 쌀을 생산한다는 것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의 ‘쌀’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의 근현대 쌀 생산에 있어 소비자라는 존재를 처음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가, 일본에 조선의 쌀이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1890년 이후로 설정한다. 그리고 1890년 이후 일본에서 조선의 쌀이 상품으로써 판매 권역을 넓히고 일본인의 식생활에서 일상화되는 과정과 함께 대량의 쌀이 일본으로 판매되면서 필연적으로 조선인의 일상에 생기는 변화에 주목했다. 특히 조선인의 쌀 가공과 소비 관행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의 변화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쌀은 조선인의 일상 속 수많은 사상(事象)과 연결된 물질이었다. 그 물질이 일본인이 원하는 쌀이 된다는 것은 식민지 조선인의 일상을 뒤바꿔 놓는 변화였다. 그 가운데 상품화와 긴밀히 연결된 쌀 가공·소비 관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재래 농기구가 아닌 발동기·증기기관·가스터빈·모터 등을 이용한 정미기가 들어와 개항장을 중심으로 대형 정미소를 정점으로 한 정미업이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쌀의 도정 정도 역시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백미, 즉 쌀눈과 쌀겨를 완전히 제거한 형태의 백미 소비가 식민지 조선의 도시를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나의 하루가 누군가의 일상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변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용하는 도구가 달라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상을 구성하는 망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나는 제국과 식민지, 계급, 가족 내 질서에 따라 일상 변화에 따른 이익과 고통의 불가능한 분배가 이뤄졌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이뤄진 변화는 식민지 시기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 변화한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변용된 형태로 확산하여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점차 한국인의 일상으로 자리 잡아 현재 한국인의 일상에도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음을 밝혔다. 

식민지기의 소비자인 일본인의 일상 변화가 쌀을 매개로 조선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쳤듯, 현재 수많은 농산물을 수입하고 그 농산물을 소비하는 한국인의 일상은 지구 어느 편의 누군가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장, 한국인이 소비하는 국내산 농산물도 농촌 비닐하우스와 축사에서 일하는 고령의 노인과 이주노동자가 만들고 있고, 그들의 일상은 도시에 사는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일상과 비일상화라는 과정에 주목하고 이를 해석한다는 것은 각기 분리되어 있는듯한 우리의 일상이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게끔 한다.

앞으로도 너무 잔잔해 보여서 「악귀」 같은 K드라마에는 나오지 않겠지만, 일상과 비일상의 변화 과정을 “원래 그런 거지” “다 그렇지”라는 말로 지나치지 않는 그리고 내 일상이 미치는 영향력을 성찰하는 민속학 연구자가 되어 보고자 한다. 

이민재 국립목포대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인류학·민속학(민속학 전공)이라는 복잡한 전공으로 석·박사를 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1890~1961년 쌀 가공·소비 관행의 변화 : 상품조선미에서 ‘백미’로」를 썼다. 주요 관심사는 일상화와 비일상화라는 관점에서 곡물·도구 등 물질이 인간과 맺는 관계이고, 이 관계를 문자·통계·구술·관찰 등 여러 자료를 넘나들며 살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목포대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에서 도서 연안 공동체 관계 문서의 수집과 DB구축을 중심으로 바닷가를 조금씩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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