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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는 왜 법조 시장으로 가게 됐을까
성폭력 가해자는 왜 법조 시장으로 가게 됐을까
  • 김보화
  • 승인 2023.12.06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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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61 성폭력 가해자 연구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는 법적 또는 제도적으로 
‘이겼을 때’를 해결의 순간으로 보지 않는다.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조건과 자원이 존재하고, 
해결을 위한 실천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고, 
그것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스스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성폭력 가해자 연구로 여성학 석사학위를 받은 나는 2016년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했다. 그 즈음 언론은 유명 남성 연예인들의 성폭력 사건과 그들에 의한 역고소를 연일 보도했고,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무고로 고소되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일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이거 고소했다가 무고로 역고소 되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피해자의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동안 여성학은 성폭력을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가해자 처벌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던 사회적 통념과 담론, 법적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성폭력의 판단기준 및 피해자 권리보장, 가해자 처벌과 관련된 법·제도적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국가와 법의 역할을 강화시킴으로써 성폭력을 사회구조적이고 공적인 문제로 위치시키고자 하는 실천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최근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에서 어떻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논리가 등장했는지, 어떠한 이해가 그 논리를 둘러싸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법적 해결의 구조를 바꿔가고 있는지를 다루지는 못했다. 이에 성폭력의 법적 해결 지형이 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비판적 분석이 절실했다.

“성폭행을 무죄로 이끌겠다”는 법무법인 광고가 논란이 됐다.(YTN 2017년 4월 3일자 기사) 오른쪽은 “감형 패키지 55만원” 불티…미투가 낳은 희한한 ‘성범죄 호황’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2023년 2월 27일자 기사다.

‘성범죄 전담법인’의 발견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지하철 교대역에 게시되었다는 한 법무법인의 광고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아동성추행, 강간 범죄, 기타 성범죄’ 등에 대한 ‘억울하도록 과중한 처벌’,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끕니다’라는 내용의 광고였다.

그동안 법과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스스로 피해를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꼬리표를 붙여왔고, 가해자에게는 온정적인 인식으로 낮은 형량을 부과해왔다. 그럼에도 그 광고는 가해자를 대변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과중할 뿐만 아니라 억울한 가해자가 많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당 광고판은 당시 여러 시민의 항의로 철거되었지만, 돌아보면 그 사건은 ‘가해자 전담변호사 시장’, 이른바 가해자 중심의 ‘성범죄 전담법인’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즈음 인터넷에 성폭력을 검색하면 법인들은 ‘성범죄 전담/전문변호사’, ‘무혐의, 무죄 받아드립니다’, 심지어 ‘무고 전문’ 등의 문구를 사용했고, 패키지 상품과 같은 형태로 고소 건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의 법적 대응 과정은 수임료가 높더라도 승소율이 높고 성공 후기가 풍부한 법인을 선택하면 이길 수 있는 것으로 시장화되고 있었다.

법조 시장에서 성폭력 가해자의 변호는 그 어느 범죄보다 돈이 되는 분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성범죄 ‘법조 시장’의 탄생 배경

성범죄 전담 법인이 탄생할 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일까? 이들은 변호사 온라인 광고 규정의 완화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과열된 경쟁으로 인한 불안정한 위치 속에서 형성되었다. 또한 전담법인은 성폭력의 법정형 및 부가처분 등의 강화,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의 시행이나 성폭력 친고죄 폐지 등의 변화를 사선 변호사 선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제로 활용했다.

더불어 이들은 가해자에게 무고나 명예훼손 등의 역고소를 제안하면서 사건 건수를 늘리는 기획적인 형태로 규모를 키워갔다. 최근 온라인을 통한 법률 자문이 많아지고 있지만 성폭력과 함께 강력범죄로 언급되는 살인·강도·방화의 가해자에 대한 법률 자문이나 홍보는 드물다. 

하지만 유독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를 위한 법률 자문과 홍보가 많은 것은 성폭력의 법적 위치를 드러내 보여 준다. 2020년 범죄백서 기준 4대(살인·강도·방화·강간) 강력(흉악)범죄에서 성폭력은 91.7%를 차지하고 있지만 기소율은 48.6%, 구속률은 6%에 지나지 않았다.

즉 성폭력은 강력(흉악)범죄 중 가장 발생율이 높지만, 현실과 괴리된 최협의설, 관행화된 감형, 무고에 대한 의심, 재판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판단 등으로 기소율과 구속률이 낮기 때문에 가해자가 감형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폭력 가해자 변호는 변호사 업계의 ‘틈새시장’으로서 위치를 점하며 더욱 확장되고 있다.

‘성범죄 감형 패키지’라는 상품의 등장

이들은 어떻게 의뢰인들을 모을까? 성범죄 전담법인은 가해자의 억울함을 강조하고 불안감을 증폭시키면서 ‘성공사례’를 홍보하고, 전직 형사, 판·검사, 고위공무원, 군인, 현직 세무사, 회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자문단으로 둠으로써 의뢰인의 관심을 이끈다.

특히 성범죄 전담법인의 홍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온라인 카페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가해자의 법적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연계·판매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서로 하소연하거나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통해 상호 연대감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자기서사의 행위자로서 사건을 낯설게 보고 임파워먼트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은 법조 시장에서 합리적 소비자로 위치되고, 반성/복수/억울함/하소연/무력/자책/합리성 등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이 형성되고 있다. 더불어 성폭력 가해자를 조력하는 업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부 업체는 ‘성범죄 감형 패키지’, ‘반성문·탄원서 대필’ 등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법적 정보의 판매와 전문성의 상품화는 성폭력을 경제적인 상품으로 재구성하고 시장 원리를 내면화한 주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 해결이라는 장을 자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문제로 전환시켜서 법적 공공성, 윤리, 책임의 가치를 삭제시키고 있다.  

필자의 박사논문은 『시장으로 간 성폭력』으로 출간됐고, 이 책으로 2023년 ‘이화-현우 여성과 평화 학술상’을 수상했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피해자는 법적 또는 제도적으로 ‘이겼을 때’만을 해결의 순간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조건과 자원들이 존재하고, 해결을 위한 실천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고, 그것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스스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책임감으로 신고·고소를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책임감은 성폭력이 다른 피해자들과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정치적 책임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피해자들은 공동체나 사회의 변화를 사건 해결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완성된 상태를 쟁취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건 해결의 ‘장(field)’들이 경합하는 과정에서 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해결과 치유의 의미를 연대와 투쟁의 언어로서 전유하는 페미니즘 투쟁의 장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인 것’으로서 성폭력 사건 해결을 사유하기

이처럼 현재 성폭력 사건 해결을 둘러싼 장이 신자유주의 통치질서 속에서 시장화·개인화·사법화되어 감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구성되고, 법적 해결은 특정 자원과 담론의 분배 과정에서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에 사적인 것으로 취급받았던 성폭력은 이제 경제적인 것으로의 이동을 꾀하면서 여성주의가 만들어 온 정치적 의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운동에서 본 것과 같이 피해자들은 법적 해결을 넘나들면서 개인적인 해결뿐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변화를 지향함으로써 해결의 장을 정치적 공론장의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에 성폭력 사건 해결을 둘러싼 장을 개인 간의 자원의 경쟁이나 합법/불법, 승/패의 영역이 아닌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정치의 공공성’이 구성되는 영역으로 분석하기를 제안하고 싶다. 

현장을 기반으로 한 여성학 연구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분석은 성폭력을 사회구조나 성별정치학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국가·법·시장의 이해관계가 구성되는 접점과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의 일부이다.

이 글에서는 연구에서 다루었던 내용 중 일부만 소개하였지만, 무엇보다 성폭력을 둘러싼 오늘날의 지형과 담론을 분석한다는 것은 그것의 개입 지점을 모색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연구를 하나의 여성주의적 실천으로 위치짓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구는 학술적 연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반성폭력 운동가의 투쟁의 기록이고,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록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곁에 서고 싶은 이들에게 부족한 연구이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의 말하기와 ‘함께 듣기’가 만나 격한 공감과 따뜻한 지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활동했고,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시장으로 간 성폭력 : 성폭력 가해자는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가』(휴머니스트)라는 책으로 출판됐고, 해당 도서는 2023년 ‘이화-현우 여성과 평화 학술상’을 수상했다.  그 외 지은 책으로 『페미니즘 교실』(공저),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공저),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공저) 등이 있다. kboh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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